(위기의 600만 소상공인)③소비절벽·김영란법 '이중고'
화훼 경매 실적, 전년 대비 70% 수준 그쳐
매출 감소와 김영란법 상관관계 부족해…"보완책 마련해야"
2017-03-22 06:00:00 2017-03-22 06:00:00
[뉴스토마토 임효정·정재훈기자] #.서울 서초구 양재동 꽃시장. 꽃소매점을 운영하는 70대 김모씨는 20년째 이곳에서 꽃을 팔고 있다. 양재동 꽃시장에 터를 잡기 전 27년간 남대문시장에서 꽃을 팔았던 그는 "인생의 대부분을 꽃과 함께 했다"고 회상했다. 수십년간 기업, 공공기관 등과 거래를 해오며 안정적인 수익 기반도 다졌다. 졸업시즌, 기업 인사시즌 등 '대목'에는 하루 매출액 2000만원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달사이 거래선의 주문이 뚝 끊겼다. 지난해 9월 시행된 김영란법의 여파다. 이후 지금은 하루 매출 30만원을 올리기도 버겁다. 그는 "50년 가까이 꽃장사하면서 여러 악재들도 겪었지만 요즘같은 경기불황은 처음"이라며 "근처 현대차그룹은 물론 여러 대기업의 행사에 납품을 많이 했었는데 법 시행 이후 공공기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주문이 딱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김씨의 아들이 가업을 잇고 있지만 부활이 쉽지 만은 않다. 오프라인 장사 만으로는 수지를 맞추기 어려워 온라인 쇼핑몰로 판매 채널을 확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는 "김영란법 시행 전에는 오프라인 매출 비중이 높았지만 이제는 온라인 쇼핑몰 비중이 80%까지 높아졌다"며 "이제는 온라인 판매가 가장 중요한 판매 채널이 됐다"고 말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김영란법)의 시행 여파로 소상공인들이 그 어느 때보다 힘겨운 시기를 겪고 있다. 현재 전체 소상공인들의 매출 감소와 김영란법과의 상관관계를 명확히 밝힐 수는 없어, 법의 폐지를 주장할 수 조차 없다. 다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김영란법 시행이후 내수경기 불황이 더욱 심화된 데는 이견이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생계에 직격탄을 맞은 소상공인을 살릴 수 있는 보완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속속 제기된다.
 
김영란법은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청탁과 금품 수수, 향응문화 등의 악습을 근절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식사 기준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이상일 경우 부정청탁을 위한 금품으로 간주된다.
 
오는 28일이면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된다. 법 시행 이전부터 큰 타격이 우려됐던 화훼업계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김영란법 후폭풍에 화훼업계 종사자들은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로 내몰리고 있었다. 문상섭 한국화원협회 회장은 "업계는 우려했던 것 이상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며 "특히 연말연초에 대기업 등 인사발표가 몰려 있어 수요가 많은 시기인데 지난 연말과 올 초는 거의 영업이 중단된 상태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가장 심각한 것은 '난'이다. 법 시행 이후 반송되는 난도 수두룩해서 허탕치는 일도 잦다"고 말했다.
 
aT화훼공판장 월간 실적을 살펴보면 지난해 9월 난 경매금액 실적은 17억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13% 증가한 규모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 이후인 10월부터 실적이 곤두박질쳤다. 지난해 10월 난 경매금액 월간실적은 16억원으로 전년 같은 기간의 82%를 겨우 유지했다. 이어 11월(15억원), 12월(18억원) 모두 전년 동월 대비 67% 수준으로 떨어졌다. 올 1월(22억원), 2월(19억원)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9% 수준에 머물고 있다.
 
양재동 화훼공판장에서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두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난 경매가 지난 12월부터 월요일 단 한 차례로 줄었다. 양재동 꽃시장 분화매장에서 난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소매점 주인은 "법 시행 직후 곧바로 매출이 반 토막 났고 현재는 30~40% 매출 감소가 지속되고 있다"며 "그나마 우리는 주요 거래선이 공무원들이나 대기업 상대가 아니라서 피해가 이 정도다. 공무원, 대기업 중심으로 거래선 가지고 있던 가게들은 90%까지 매출이 줄었다고 들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영란법 시행 이후 화훼, 외식, 한우 업계를 포함한 소상공인들은 판매와 소비가 위축됐다고 입을 모은다. 문제는 매출 감소와 김영란법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때문에 매출 절벽에 가까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법의 폐지와 개정을 요구하는 데 한계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상공인의 비즈니스 실태조사(3000개 전국 소상공인 대상)에 따르면 지난해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는 소상공인 비율은 55.2%에 달했다. 매출감소의 이유로는 ‘경기침체로 인한 고객 감소'(72.6%)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이어 ‘김영란법 시행'(53.3%)을 꼽았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의 매출 감소는 장기화된 경기침체와 맞물려 나타나면서 김영란법 여파로 단정지을 수 없다는 게 다수의 의견이다.
 
이에 대해 관련업계에서는 법의 취지를 살리돼 생계에 직접적으로 위협받는 업종에 대해선 보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용희 한국외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김영란법 시행 후 외식산업에서 매출이 상당히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매출 감소가 단순히 김영란법 때문이라고 단정해서 말하기는 어렵다"며 "때문에 현재는 법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하기보다는 지원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원장은 "경기가 계속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법 시행으로 '엎친데 덮친격'으로 더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이다. 3만원 이하 메뉴만 파는 식당도 어려워졌다는 것은 김영란법이 전체적으로 소비를 위축시킨 측면이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라며 "'어떤 부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허용해준다는 식'의 네거티브 시스템을 도입을 해서 소상공인의 타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양재동 꽃시장. 지난해 9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사진=뉴스토마토
 
임효정 ·정재훈 기자 emyo@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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