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기자]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스티브 발머는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처음 나왔을 당시 이렇게 얘기했다. “아이폰이 유의미한 시장 점유율을 차지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10년이 지난 현재, 그의 말과는 정반대로 전세계 인구 중 절반은 스마트폰을 보유하게 됐다.
발머의 발언은 개인용컴퓨터(PC) 시장의 예측 실패와 궤를 같이 한다. 1977년 세계에서 가장 큰 컴퓨터회사를 운영하던 켄 올슨 디지털이퀴프먼트 회장은 “개인들이 가정에 컴퓨터를 구비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몇 년도 채 되지 않아 MS와 애플의 컴퓨터는 전 세계 가정 곳곳에 스며들었고 세상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행시키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기하급수적인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사고를 앞섰던 이러한 사례들은 차고 넘친다. 모스 부호를 창시했던 새뮤얼 모스는 전화기를 보고 “전기를 사용한 장난감”에 지나지 않는다 했고 뤼미에르 형제는 시네마토그래프라는 ‘살아있는 사진’을 만들어 놓고 정작 그것이 영화산업이 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100년 전 에디슨 역시 자신이 발명한 축음기를 음악 감상에 쓰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주장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오늘날까지 무한히 반복되는 걸까.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 소장 조이 이토와 미디어랩의 연구원 제프 하우가 함께 집필한 ‘나인’은 그 문제의 근원을 우리의 퇴행적인 사고 체계에서 찾는다.
저자들에 따르면 인간 발달사의 각 기간은 당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던 가정과 신념 체계의 집합으로 이뤄져 왔다. 그 일련의 굳건한 체계가 새로운 아이디어와 충돌하면 과학 ‘혁명’ 내지 ‘전환’ 전의 혼돈기가 나타난다. 그것을 미셸 푸코는 ‘에피스테메’, 토머스 쿤은 ‘패러다임’의 대전환기라 명명했다.
이러한 대전환기엔 앞선 사례들이 증명하듯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 하지만 인류는 오랜시간 동안 바로 직전의 사고 체계에 갇힌 채 어쭙잖게 ‘예언자 놀이’를 하는데만 치중해 왔다. 소규모 해커 집단이 미국 정부 데이터베이스에 잠입하거나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하는 현실을 목도하는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인류는 ‘석탄과 철 시대’의 사고방식에서 기술의 장밋빛, 회색빛 전망을 살피는데 시간과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그래서 저자들은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사고 원칙을 세울 것을 주문한다. 그 원칙은 지휘 통제식 경영 시스템과 위계질서로 대표되는 산업시대적 사고관과의 작별을 의미한다. ‘네 발 짐승이 뒷다리로 서는 법’을 배우는 수준에 육박하는, ‘근본적인 인식의 탈바꿈’이기도 하다. 그들은 현재에 있지만 미래를 먼저 살고 있는 창조적인 기업들과 MIT미디어랩의 사례를 중심으로 이러한 원칙들을 하나하나 구체화 시켜 나간다.
소수의 사람이 갖춘 권위보다 다수 의견의 창발(출현)로 만들어진 위키피디아는 오늘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보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지식의 보고’가 됐다. 시스템 내의 모든 개인이 집단 전체에 이익이 되는 정보를 갖춘 이 플랫폼에선 서로가 지식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혁신을 만들어 나간다. 마치 뇌 속 뉴런들이 서로 연결되면 부분들의 합보다 큰 네트워크 효과가 생성되는 자연 원리와 흡사하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대지진이 일어났던 시기, 저자 조이 이토는 지원자들과 함께 ‘세이프캐스트’를 결성한다. 방사능 측정기기인 가이거 계수기를 제작해 일본 전역의 시민 과학자들에게 뿌리고 자발적인 참여를 이끌어 낸 프로젝트였다. 그 결과 정부가 시행했던 대책보다 지역의 정확한 방사선 분포와 기준치 정보를 효과적으로 얻고 공유할 수 있었다. 저자들은 이를 “필요할 때 참가자의 네트워크에서 자원을 끌어오는 ‘풀’의 원칙”이라고 설명하며 “플레이어나 팬의 아이디어로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게임업체 블리자드 또한 이에 속한다”고 한다.
‘의식 있는 불복종’을 추구해야한다는 저자들의 주장도 곱씹을만 하다. 시키는 대로 해서 노벨상을 탄 사람은 아무도 없었듯, 법을 준수하는 선에서 과감한 시도들을 해야한다는 논리다. 지난해 7월부터 MIT 미디어랩에선 ‘금지된 연구’라는 이름의 콘퍼런스로 이러한 원칙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주로 유전자 조작 생물을 야생에 방사하는 문제를 논의하거나 표절 논문 사이트 운영자를 초청해 의견을 듣는 등 불편한 주제를 가감없이 토론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저자들은 ‘능력보다 다양성’, ‘안전보다 리스크’, ‘이론보다 실제’, ‘대상보다 시스템’ 등 MIT 화이트보드에 적혀 있는 총 9가지의 생존원칙들을 들려준다. 드라마 ‘로스트’를 만든 J. J. 에이브럼스과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를 포함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경영 블로거, 미술관 큐레이터 등이 공감했다는 점을 볼 때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적용 가능한 실천법들이다.
책 '나인'. 사진제공=민음사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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