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집 안의 TV와 공기청정기, 냉장고 등 가전끼리 데이터를 주고받는다. 밖으로 나가면 자율주행차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실시간으로 데이터가 쌓인다. 다른 자동차나 장애물과의 거리와 노면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안전운행을 담보한다. 자율주행차는 탑승자의 건강상태까지 체크해 필요한 경우 가까운 병원의 예약까지 진행한다.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사물들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발생시킨다. 5세대(5G) 통신이 가져올 머지않은 미래의 모습이다.
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데이터가 오고 가기 위한 '길'이 필요하다. 기존 LTE로는 비좁다. 기존보다 훨씬 많은 양의 데이터 실시간 송수신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5G가 필요한 이유다. 이동통신사들은 빠르고 안정적인 데이터 송수신이 가능한 넓은 통신 길을 미리 닦아놔야 한다. 큰 부담이지만 이통사들은 망 개발 및 유지보수 비용을 감내해야 한다. 전세계 LTE 보급률 1위인 한국은 5G의 표준도 주도하고 있다. 2019년 세계 최초 5G 상용화를 선언한 KT가 가장 선두에 있다. 5G 인프라 구축과 국제 표준 제정에 앞장서고 있는 전홍범 KT 융합기술원 인프라연구소장(전무)으로부터 KT의 5G 전략에 대해 들었다.
전홍범 KT 융합기술원 인프라연구소장. 사진/KT
ITU, 5G 표준 승인 '쾌거'…"국산 통신기술 글로벌 진출 계기"
KT가 자체 개발한 '5G 네트워크 슬라이스 오케스트레이션'은 지난 10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5G 표준의 하나로 최종 승인됐다. 네트워크 슬라이스 오케스트레이션은 5G의 핵심으로 꼽히는 가상화 기술을 기본으로 한 통신 인프라 최적화 운용 기술이다. 기존 기술로는 자율주행차 전용 통신설비와 개인방송용 통신설비를 각각 구축·운용해야 한다. 하지만 네트워크 슬라이스가 도입되면 하나의 통신설비를 필요한 시간대에 따라 자율주행차용이나 개인방송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처럼 5G 서비스용 통신설비나 망을 필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용하는 기술이 오케스트레이션이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5G 통신망뿐만 아니라 기존 유선 통신망의 기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어 이통사는 구축 및 운용 비용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글로벌 통신장비 업체인 에릭슨은 이 기술을 활용할 경우 5G 인프라 운용 비용을 기존보다 40%가량 절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전 소장은 이번 ITU 표준 승인이 국산 기술과 장비가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LTE 보급률을 자랑하지만 정작 이동통신 서비스를 위한 기술과 장비 시장은 에릭슨·노키아·화웨이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국내 이통 3사들도 글로벌 기업들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다. 일부 국산 통신장비 업체들이 글로벌 강자들을 대상으로 고군분투하는 정도다. 전 소장은 "이번 표준 기술을 기반으로 국내 중소기업들과 각종 5G 관련 서비스를 구현한다면, 한국 통신산업계의 글로벌화를 위한 상생협력의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소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통신 인프라와 서비스 구축 및 운영 경험을 KT를 비롯한 한국 이통사들의 강점으로 꼽았다. 한국의 LTE 보급률은 97%로 세계 1위다. 전 세계적으로 90% 이상의 LTE 보급률을 기록한 나라는 한국와 일본이 유이하다. 전 소장은 "전 세계가 LTE망 구축을 위해 애쓰고 있지만 우리는 그보다 앞선 5G 네트워크 기술 검증을 이미 완료하고 노하우를 쌓고 있다"며 "KT도 국내 시장을 비롯해 글로벌 5G 시장으로 적극 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KT 직원들이 5G 기지국간 핸드오버 기술을 검증하기 위해 평창 일반도로에 설치된 5G 기지국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KT
"2025년 데이터 트래픽 20배 증가…무선망 용량 40배 늘린다"
5G 시대가 열리면 UHD(초고화질)와 VR(가상현실)·AR(증강현실) 등의 새로운 미디어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쏟아지게 된다. 자율주행차와 로봇, 드론 등 네트워크에 연결되는 새로운 단말기가 수많은 센서들과 연결되면서 데이터 사용량 역시 폭증할 전망이다. 전 소장은 "2025년의 데이터 사용량은 올해에 비해 약 20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KT는 이 같은 데이터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무선망의 용량을 기존 LTE에 비해 최대 40배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또 무선망의 근간이 되는 유선 백본 전송망의 용량도 최대 100Gbps 이상으로 늘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트래픽을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충할 방침이다.
KT는 네트워크에 인공지능(AI) 기술을 결합하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KT는 지난달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TU-T 13연구그룹 정기총회에서 '5G 인공지능 네트워크 표준화 그룹' 의장단으로 참여했다. 5G AI 네트워크 기술 개발과 국제 표준화에 앞장설 예정이다. 5G 네트워크에 AI가 가미되면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여러 트래픽을 분석해 사전에 장애를 예측하고 미리 대응할 수 있다. 전 소장은 "AI 네트워크가 도입되면 이통사는 통신망의 안전성을 높여 끊어지지 않는 무결점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내년 2월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무선통신분야 공식 파트너로, ICT 올림픽을 주도한다. 기반은 역시 5G다. 전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되는 올림픽에서 씽크뷰·옴니 포인트 뷰·360 VR·자율주행차 등 다양한 5G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경기장 밖에 있더라도 5G 망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경기장 곳곳의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다. 원하는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즐길 수도 있다. 특히 올림픽 경기장 일대를 누빌 자율주행차를 통해 관객들에게 5G 초저지연 서비스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차량간 통신, 차량과 도로 인프라, 차량과 각종 단말기 간의 실시간 통신이 가능한 자율주행차는 5G를 비롯한 최첨단 기술력의 완성체로 꼽힌다. 전 소장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5G가 단순히 속도만 빨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 ICT와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변화라는 것을 고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KT는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5G 네트워크 검증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달 자동 '핸드오버' 기술을 개발해 3km에 달하는 일반도로에 5G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전 구간에서 이동성 검증을 완료했다. 핸드오버란 단말기가 연결된 기지국에서 다른 기지국으로 이동해도 끊기지 않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제한된 공간에서 일부 기지국을 수동으로 설정해 단말기의 이동성을 시험하는 방식이 아닌, 3km에 달하는 일반도로 전 구간에서 핸드오버를 시험해 성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5월에는 최고속도 110km/h로 달리는 서울-인천간 공항철도 객차에서 5G를 통한 기가급 데이터 전송을 검증했다. 9월엔 고속도로에서 100km/h 이상으로 달리는 차량에서 5G 네트워크에 연결해 5G SLT(스카이라이프LTE) 서비스 시연에도 성공했다. SLT는 KT스카이라이프에서 선보인 이동형 방송 서비스다. 위성신호로 고속버스 등 이동체에서 방송을 하다가 신호가 약해지면 수신방식을 LTE로 변경해 화면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방식이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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