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올 한 해 인수합병(M&A) 시장은 여느 해보다 뜨거웠다. 삼성은 혁신기업들을 장바구니에 쓸어 담으며, 4차 산업혁명 대응력을 키웠다. SK와 LG는 지주사가 적극적인 M&A 전략에 나서 그룹 전반의 새로운 성장 퍼즐을 짰다. 반면, 주력 사업이 부진에 빠진 현대차는 여유를 잃었다. M&A 시장에서도 잔뜩 위축된 모습이다.
1990년대 후반까지 추진됐던 국내 기업들의 해외 M&A는 외환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사장됐다. 이후 국내 기업들에게 해외 M&A는 기피 대상으로 전락했다. 그러다 2007년 두산이 미국 잉거솔랜드의 3개 사업부를 국내 해외 M&A 사상 최대규모인 49억달러에 인수, M&A 발전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남겼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오디오 명가인 하만을 80억달러에 인수하며 역사를 새로 썼다.
삼성은 M&A를 IT 디바이스의 경쟁력 강화와 4차 산업혁명 대응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5년 핀테크 업체 루프페이를 인수해 삼성페이를 출시했으며, 지난해에는 인공지능(AI) 업체 비브랩스를 사들여 모바일에 AI 비서 빅스비를 심었다. 같은 해 하만 인수는 차세대 시장인 커넥티드카용 전장을 노린 야심찬 출사표였다. 삼성전자는 올해도 기술력을 갖춘 벤처를 다수 인수하며 혁신의 DNA를 수혈했다. VR콘텐츠 업체 VRB, 음성기술 업체 이노틱스, AI 챗봇 스타트업 플런티를 인수했고 반도체 소재기업 솔브레인과 동진쎄미켐에 지분을 투자하며 기술협력 생태계도 보강했다. 특히 9조3000억원에 달하는 역사적인 하만 인수 성공 여부는 다른 그룹들의 해외 M&A 전략 지표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SK와 LG는 올해 지주회사가 M&A 전략의 키를 잡았다. SK는 반도체 웨이퍼 업체 LG실트론을 인수하고, 카셰어링 업체 쏘카의 전환사채에 투자했다. SK종합화학이 다우케미칼 2개 사업부를 인수하고, SK바이오텍이 BMS의 원료의약품 공장을 사들이는 한편, SK하이닉스가 도시바 메모리반도체 사업부 인수에 참여하는 등 그룹 전체가 M&A에 열중했다. LG는 LG실트론과 루셈을 매각해 실탄을 확충하고 LG상사를 편입해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LG 역시 계열사들의 공격적 투자가 이어졌다. 지난해 동부팜한농과 GS 양극재사업 등을 인수하며 변신을 꾀했던 LG화학에 이어, 올해는 LG하우시스와 LG생활건강이 다수의 인수 건을 성사시켰다. 지주사와 사업회사가 일제히 M&A 투자에 나서며 지배구조의 시너지도 제고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현대차는 M&A 시장에서의 등장 빈도가 드물었다. 실적 부진 여파로 투자 여건이 악화된 탓이다. 올해 현대글로비스가 선박관리업체 유스에스엠을 110억원을 주고 사들인 게 유일했다. 현대차는 2014년 한전의 서울 삼성동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인수한 이후 줄곧 투자실적이 저조했다. 무리한 투자라는 지적 속에 후유증에 시달리는 모습이다. 당시 투자 결정도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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