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지난 9일 남북 고위급회담과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참가를 위한 후속조치가 이어지면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모처럼 훈풍이 불고 있다. 그러면서 지속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선 조속히 논의의 틀을 넓혀 경제협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부소장은 16일 “우리 정부가 한반도 신경제지도 등을 국가도약 목표·비전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경제협력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동해권(에너지·자원벨트)과 서해권(산업·물류·교통벨트), 비무장지대(환경·관광벨트) 등 3대 벨트 구축으로 한반도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북방경제와 연계를 추진한다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문재인정부 100대 국정과제로 제시되고 있다.
북한의 풍부한 자원과 값싼 노동력은 여전히 매력적인 요소다. 남한의 기술·자본과 합쳐질 경우 그 효과는 커진다. 변재용 중소기업중앙회 통일경제정보센터장은 “북한 근로자는 우리와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하고 근면성실하다는 장점도 있다”며 “물류비용까지 감안하면 북한에서의 사업은 여전히 유리하다. 기업인들이 남북경협을 계속 요구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안보 측면에서도 경제협력 필요성은 크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정세현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은 책 ‘정세현의 정세토크’에서 “군비 통제를 하기 위해서는 군사적 신뢰가, 그에 앞서 정치적 신뢰가 형성돼야 한다”며 “정치적 신뢰는 비정치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이 활성화돼야 한다는게 국제정치학자나 분쟁 전문가들의 공통견해”라고 말했다. 냉전시절 미국과 소련도 동서진영의 경제·사회·문화 교류를 촉진하는 ‘헬싱키 프로세스’를 통해 정치적 신뢰를 쌓은 후 마지막에 전략무기감축 협상을 진행했다. 조봉현 부소장도 “경제협력을 통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는 향후 북한의 비핵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바라봤다.
남북 경제협력은 중국·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교류 과정에서도 좋은 도구가 된다. 문재인정부는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에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중이다. 주변국 전력망을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축, 러시아산 천연가스 도입 등은 북한 땅을 거치지 않고서는 추진할 수 없는 사업들이다. 정부 관련부처의 청사진에는 향후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상정한 스케줄이 설정되어 있다.
다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유효한 상황에서 섣불리 나서기는 쉽지 않다. 이태호 청와대 통상비서관은 지난달 북방경제협력위원회 회의 브리핑에서 “역대 정부가 여러 가지 형태의 북방정책을 해왔지만 북한문제 때문에 진척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문재인정부에서도 북한이 필수적인 참여자가 되는 형태의 정책을 폈다가는 진전이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지금은 러시아 등 주변국과의 양자협력을 진척시키는데 집중하고 향후 여건이 조성되면 북한의 참여를 반영하는 식으로 정책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도 지난해 7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제3차 동방경제포럼 기조연설에서 “동북아 국가들이 극동에서 경제협력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 북한도 이에 참여하는 것이 이익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엔 대북제재를 이유로 교류협력에 손을 놓고 있으면 안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 북한전문가는 “유엔 제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며 “민생 차원의 인도적 개발협력 사업이나 농업협력 등을 찾아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 역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경제 교류협력 증진과 궤를 같이 해왔다. 특히 노태우정부 시기인 1988년 7월 발표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 후 경제교류는 남북 화해분위기를 보여주는 징표가 됐다. 1994년 10월 북미 간 제네바합의로 1차 북핵위기가 해결국면에 들어서자 우리 정부가 위탁가공교역을 위한 시설 재반출과 식음료·제조업 등 소규모 시범 경협사업 추진에 나선 것이 그 예다. 김대중정부가 내세운 ‘정경분리 원칙 하의 남북경제협력 적극추진’ 방침은 개성공단 가동·금강산 관광 등으로 이어졌다.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린 지난 9일 오전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비롯한 대표단을 태운 차량이 경기 파주 통일대교를 지나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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