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이명박 정부 당시 국가정보원 자금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김 전 기획관의 가담 정도 등을 고려해 방조범으로 기소했으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판단해 공소장에 적시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김 전 기획관을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국고손실)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5일 밝혔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관계자로부터 2차례에 걸쳐 2억원씩 총 4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기획관은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비서실 총무담당 보좌역을 시작으로 총무비서관, 총무기획관을 역임하는 등 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4월과 5월 사이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에게 특수활동비 상납을 요구했고, 김 전 원장은 김주성 전 기획조정실장에게 이를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 예산관이 청와대 부근에서 만원권으로 2억원이 들어 있는 여행용 가방을 김 전 기획관에게 직접 전달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 무렵 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에서 돈이 올 것이니 받아두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실장은 이후 유우익 대통령실장에게 이 전 대통령과의 독대를 요청해 국정원 자금 전달을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조언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2010년 7월과 8월 사이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에게도 특수활동비 상납을 요구했고, 원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예산관이 청와대 부근에서 김 전 기획관의 부하 직원을 만나 오만원권으로 1억원이 들어 있는 쇼핑백 2개 건네준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관계자는 이날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따른 것이란 명확하고 구체적인 진술을 했다"며 "뇌물의 주범을 이 전 대통령으로 보고, 김 전 기획관을 방조범으로 기소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뇌물의 사용처와 공여자 등 나머지 관련자에 대해 계속해서 수사를 이어 나갈 방침이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기획관이 구속된 지난달 17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강하게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제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책임은 저에게 있다"며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물어라' 이게 제 입장이다"라고 주장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 4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특정범죄가중법 위반(뇌물)·업무상횡령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김 전 비서관은 2011년 4월 민간인 사찰 사건으로 기소된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주무관에게 전달하기 위해 국정원에 요구해 5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전 비서관이 받은 5000만원은 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류충열 전 국무총리실 공직복무관리관을 거쳐 장 전 주무관에게 건네진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장 전 비서관에 대해 직권남용·장물운반 등 혐의로 지난달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강부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그달 25일 "주요 혐의에 대한 소명의 정도, 피의자의 지위와 역할, 증거인멸 가능성이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점, 피의자의 직업과 주거가 일정한 점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장 전 비서관의 증거인멸 우려 부분에 대해 보강 수사를 진행한 후 지난달 31일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했다. 검찰 조사에서 장 전 비서관은 류 전 관리관이 자금 출처를 허위로 진술하도록 직접 협의하고, 지난달 21일 참고인으로 출석하기 전 외국에 체류하던 류 전 관리관에게 과거 진술을 유지하도록 종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오민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는 이달 3일 "피의자의 지위와 역할,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춰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또다시 기각을 결정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사무실에서 검찰의 특수활동비 수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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