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아침에 일어나 CNN 을 켰을 때 오늘 남북한에 무슨 일이 있는지를 보게 됐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말 놀랐습니다.”
공연 도중 미 록밴드 원리퍼블릭(One Republic)의 보컬 라이언 테더가 말하자 일제히 환호성이 쏟아졌다. 노란 조명이 켜진 무대에서 멤버들이 태초의 소리 같은 배경음을 연주하는 가운데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작년에 돌아가신 제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용사셨습니다. 1947~1948년 한국에 계시면서 DMZ 를 지키셨습니다. 한국은 그 분이 가보셨던 유일한 외국이었죠.”
“그리고 오늘, 이런 날 여기에서 공연 한다는 게…이 밤은 우리 밴드에게도 지금까지 가장 멋진 공연을 한 날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을 빌고 축복합니다. 그리고 오늘이 앞으로 100년 1000년간의 평화의 시작이길!”
지난 27일 서울 방이동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11년 만에 남북이 하나되던 날, 원리퍼블릭이 데뷔 11년 만에 첫 내한 공연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밴드와 관객들은 희망찬 내일의 한반도를 꿈꾸며 평화와 화합을 다짐했다. 공교롭게 ‘하나의 공화국’이란 밴드명조차 그날 모인 4500명을 완벽하게 축하하는 듯 했다.
원리퍼블릭의 보컬 라이언 테더. 사진/현대카드
공연은 예정 시간이었던 8시를 12분쯤 넘어선 시각에 시작됐다. 무대 위의 삼각형 파란 LED 조명이 꺼지고 잔뜩 껴있던 연기가 더 뿌예질 즈음이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음악에 맞춰 백색 섬광의 껌벅대는 빈도가 높아졌고, 관객들의 환호도 점진적으로 커졌다. 이내 거대한 피아노 앞에서 보헤미안처럼 페도라를 쓰고 연주하는 테더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도시가 더 차가워졌어, 우릴 싫어하는 거 같아/이제 움직여야 할 때야, 난 녹을 털어버리지’
사색적인 가사가 테더의 서정적인 목소리에 입혀졌고 피아노와 첼로의 울림은 그 잔향의 깊이를 더해주었다. 감미로운 첫 곡이 끝난 뒤에는 ‘시크릿(Secrets)’, ‘굿 라이프(Good life)’, ‘웨어에버 아이 고우(Wherever I go)’ 등 웅장하고 신나는 노래가 이어졌다. 테더는 시원한 고음을 뽑아내며 관객들의 떼창을 유도하는가 하면, 360도를 도는 춤을 추며 탬버린으로 흥을 계속해서 끌어 올렸다.
원리퍼블릭 공연 모습. 사진/현대카드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프로듀서로도 활동하는 테더는 자신이 작곡했던 곡들의 데모 버전을 들려주는 시간도 가졌다. 비욘세의 ‘할로(Halo)’와 에드 시런의 ‘해피어(Happier)’를 피아노를 치며 ‘생목’으로 부르는가 하면, ‘웨이크 미 업(Wake me up)’을 부르며 최근 세상을 떠난 DJ 아비치를 추모하기도 했다.
“원래 내가 준 데모곡은 피아노 버전이지만, 곡에는 기타 버전으로 실렸어요, 제기랄. 저는 피아노 버전을 더 선호하는데 그걸로 해볼게요.” “다음에 할 곡은 에드 시런의 곡인데, 저도 따라서 영국식 엑센트로 해볼게요. 아 칸두잇 (웃는 관객들) 잇츠 굿?” 미국식, 영국식 농담들이 뒤섞이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원리퍼블릭 공연 모습. 사진/현대카드
무엇보다 이날 공연에선 밴드가 보여준 ‘한국 사랑’이 엄청났다. 남북 평화에서 시작된 한국에 대한 애정은 “좋아요”, “감사합니다” 등 미리 배워둔 한국어를 적절히 활용할 때 더 빛났다. LA, 뉴욕 등의 도시명을 ‘서울’, ‘코리아’로 바꿔 부르는가 하면, ‘Seoul’이란 문구가 써진 모자를 쓰고 나와 관객들의 흥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공연이 말미를 향하면서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는 테더의 능력 또한 돋보였다. 특히 ‘썸띵 아이 니드(Something I Need)’ 때는 객석으로 돌진하더니 1, 2층 둘러 쌓인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관객들의 핸드폰을 건네 받으며 사진을 찍고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친근함이 유감없이 발휘됐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카운팅 스타스(Counting Stars)’와 ‘Love runs out’로 구성된 앙코르 무대. 카메라를 들고 “예쁘다”를 외치며 나온 테드의 목소리에서 ‘마법’은 다시 시작됐다. 에디 피셔의 폭발적인 드러밍과 잭 필킨스의 화려한 기타 연주, 그 사이를 촘촘히 채우는 건반과 첼로, 그리고 탬버린 소리.
‘우리는 별을 세게될꺼야. 우리는 별을 세게될꺼야’ 돈에 얽매이기 보단 별을 세며 살아가자는 '카운팅 스타스(Counting Stars)'의 후렴구를 모두가 따라 불렀다. ‘우리는’이라는 가사의 1인칭 표현이 모두를 '하나'로 엮어 내고 있었다.
그 웅장함에 이끌려 눈을 서서히 감았다. 모든 이들이 자신 만의 '별'을 목놓아 읊어대는 소리가 홀 전체에 천둥처럼 쩌렁 쩌렁 울려댔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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