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심수진 기자] 한 병원에 진료를 기다리는 여성들이 모여 앉아있다. 그들은 모두 가면을 쓴 채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우스꽝스럽지만 태국의 한 산부인과에서 실제로 일어난 상황이다. 부인과 세포검사를 불편해하는 여성들을 위해 서로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도록 환자도 의사들도 가면을 쓰고 검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 필요한 단계이지만 부인과 검사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다른 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약 25만명이 자궁경부암으로 사망하고 전세계 여성 암 사망률 2위가 자궁경부암이다. 자궁경부암은 조기 발견 시 완치율이 90%에 달하지만 기존 세포 검사 방법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자궁경부암 검진 수검률은 매우 낮다. 분자진단 및 체외진단기기 연구개발 전문기업 TCM생명과학은 병원 방문이 필요한 기존 검사 방식 대신 자가채취로 해결이 가능한 자궁경부암 진단키트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자궁경부암 진단 패러다임을 바꿔 자궁경부암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다.
지난 2009년 설립된 TCM생명과학은 분자(유전자)진단 기반의 체외진단 전문기업으로 2015년 10월에 코넥스시장에 상장했다. 체외진단분야는 기술에 따라 임상화학과 면역학, 혈액학, 병리학, 분자진단, 임상미생물학, 현장검사, 자가혈당검사 등 8개로 나뉜다. TCM생명과학은 이 중 분자진단 분야에 기반해 세포·조직·유전자 병리 및 임상진단검사를 하는 진단 서비스 사업과 체외 진단 의료기기 장비 및 시약 개발, 메디컬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프로스트앤설리번(Frost&Sullivan)에 따르면 글로벌 체외 진단시장 규모는 지난 2016년 616억달러에서 연평균 7.8%로 성장해 오는 2025년에는 1214억달러 규모로 확대될 전망이다.
TCM생명과학은 지난 2009년 신종플루가 유행했을 당시 신종플루와 조류독감, 계절성 독감을 6시간 만에 진단하는 '멀티플렉싱' 기술을 개발해 주목 받았다. 신종플루는 48시간 내에 병을 진단해 처방 해야 하는데 신종플루와 조류독감, 계절성플루 모두 증상이 비슷해 진단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기도 판교 TCM생명과학 본사에서 만난 박영철 대표이사는 "TCM생명과학이 개발한 멀티플렉싱 기술은 검체 하나로 6시간 만에 세 개의 병을 진단할 수 있어 소위 '대박'을 경험했다"며 "하루에도 수천건의 검체가 들어왔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TCM생명과학은 이 진단기술을 바탕으로 '진단키트'와 '시약' '프라이머기술' 등을 개발했다. 이후 2014년에는 액상기반 세포검사용 표본가공기 '셀스퀘어'를 개발했다. 셀스퀘어는 세포검사로 암을 진단하는 장비로,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에 이어 2015년에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유럽 CE인증까지 받아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해외 시장에 수출중이다.
TCM생명과학 연구원들이 분자진단키트 개발을 위한 유전자 클론 선별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심수진기자
미충족 수요 해결한 새로운 방식의 자궁경부암 진단키트
현재 TCM생명과학이 집중하는 사업은 자궁경부암 진단키트 '가인패드'다. 가인패드는 TCM생명과학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HPV(인유두종바이러스), STI(성병) DNA 검사용 패드형 질분비물 검체 자가채취키트로, 기존에 없던 새로운 형태의 진단키트다.
기존 자궁경부암 검진 방법은 브러시를 이용한 세포 검진 방법으로, 의사가 질 분비물을 채취해 검사를 진행했다. 오랫동안 유지된 자궁경부암 검사 방법이지만 진료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자궁경부암은 조기 발견 시 완치율이 90%에 달함에도 불구하고 수검률이 매우 낮다. 실제로 지난 2016년 기준 20~70세 여성 1800만명 중 자궁경부암 국가검진을 받은 사람은 전체의 5.3% 수준인 218만명에 그쳤고, 이 중 20대의 수검률은 26.9%로 80대(13.3%) 다음으로 낮았다.
가인패드는 여성들이 심리적인 불편함을 느끼지 않고 특수필터가 부착된 패드를 통해 간편하게 자궁경부암 검사를 할 수 있는 제품이다. 박 대표는 "가인패드는 '여성을 위한 검사'를 모토로 만든 제품"이라며 "패드를 4시간 이상 착용한 뒤 필터를 떼어내 동봉된 병에 담아 병원에 보내는 '자가채취'방식으로, 검사방법의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말했다.
가인패드를 통해 채취한 검체와 기존 방식의 검체 결과를 비교한 결과 그 정확도는 97.9%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존 검진이 '침습적'이라는 단점이 있는 반면 패드는 비침습적 방법을 통해 균일한 검체를 채취할 수 있다. 미충족 수요(Unmet Needs)를 해결했다는 점에서도 사업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박 대표는 "아무도 뛰어들지 않았지만 분명히 수요가 있었던 분야로, 의료계에서도 제품의 효과를 인정하고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며 "가인패드를 통해 자궁경부암 검진 수검률을 높이고 나아가 조기 발견을 통해 자궁경부암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TCM생명과학은 국내 약 700개의 병원과 협약을 맺었고, 대형 수탁기관인 녹십자랩셀과 가인패드의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해외시장 진출도 진행중으로, 미국의 경우 대형 약국체인을 통해 공급하고 현지에서 진단 결과를 받을 수 있도록 현지 진단서비스 기관과 협의중이다. 무슬림국가는 문화적 제약으로 부인과 검사 수진율이 2%에 불과한데,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대형투자전문기관 달라그룹(D'Allah)이 이 사업에 1200만달러를 투자했다. 인도네시아 최대 제약사와도 독점계약을 진행하고 정부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TCM생명과학의 자궁경부암 진단키트 '가인패드'. 사진/TCM생명과학
계열사간 시너지로 시장지배력 확대
TCM생명과학은 계열사간 시너지를 통해 체외진단 전문기업으로서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신약개발업체
바이오리더스(142760)를 인수했고, 올해 초에는 헬스케어 제품 개발 및 유통기업
넥스트BT(065170)의 경영권을 인수해 의약품 GMP(우수의약품 및 제조관리기준) 설비를 확보했다. 진단과 신약개발, 제약, 건강기능식품 생산, 바이오메디컬 사업까지 수평계열화를 갖춘 것이다.
TCM생명과학의 매출은 최근 3년간 빠르게 증가했다. ▲2015년 12억3700만원 ▲2016년 17억4000만원 ▲2017년 25억1400만원을 기록했다. 반면 영업손실규모는 ▲2015년 18억3000만원 ▲2016년 21억6000만원 ▲2017년 28억2800만원으로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는 가인패드를 통해 새로운 매출이 발생하는 만큼 실적개선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박 대표는 "지난해에는 진단서비스 분야의 매출이 확대되면서 전체 매출이 크게 늘었는데 올해는 가인패드를 통해서 더 큰 성장이 예상된다"며 "가인패드 매출 예상액(95억원)을 포함해서 올해 전체 매출 목표는 174억원"이라고 말했다.
코스닥 이전상장도 추진중이다. 박 대표는 "올 하반기 기술특례상장을 준비중으로, 지정감사는 이미 완료했고, 기술에 대한 평가도 확보했다"며 "이전상장 준비는 꾸준히 해왔고 하반기에는 상장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철 TCM생명과학 대표이사. 사진/심수진기자
심수진 기자 lmwssj072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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