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누군가의 글을 ‘모방’하는 행위는 일종의 금기로 여겨지곤 한다. 말을 꺼내는 것조차 터부시될 때도 있다.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앞서기 때문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연설비서관이었던 강원국씨는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모방을 글쓰기에 활용한다고 당당히 말한다. 모방에서 기쁨을 찾고 두려워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 왜?
프랑스 문학비평가 르네 지라르의 말처럼 인간은 모방욕을 타고 나기 때문이다.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에게서 말과 글을 배운다. 그렇게 지식을 축적해왔다. 그 안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신간 ‘강원국의 글쓰기’에서 “모방에 돌팔매질할 사람은 ‘태초의 창조자’ 말고는 없다”며 “누군가가 전매특허를 낸 글은 세상에 없다. 흉내내는 것에 당당해지라”고 조언한다.
그가 모방을 활용하는 법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형식에 관한 것이다. 글의 구조를 채집하는 방법이다. 타인의 좋은 글에서 시작과 마무리 등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그 틀에 내용만 바꾸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내용을 따라하는 방식이다. 조금 더 까다롭다. 쓰고 싶은 주제와 관련된 글을 여러 편 읽는다. 동영상 강의나 책의 목차를 볼 수도 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도 된다. 머리 속에서 여러 정보가 뒤섞이는 ‘숙성’ 과정이 진행되면 ‘영감’이 떠오른다. 이 때 쓰는 글은 재창조된 ‘나만의 글’이 된다.
단, 주의할 점은 글이나 말을 그대로 가져와선 안 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아는 단순 표절이나 카피의 개념과는 구분된다. 원본에서 영감을 얻고 변주하며 자신의 것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패러디나 리메이크, 오마주의 개념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내 글’을 쓰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쓰기 노력도 병행돼야 한다. 특히 저자는 “쓰기와 관련된 자신 만의 습관을 정립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면 된다. ‘필일오(하루 필히 원고지 5매 쓴다)’를 규율로 삼은 김훈이나 하루 한 쪽 소설을 쓴 존 그리샴이 그랬다.
갖춰두면 좋은 습관들은 많다. 아리송한 단어가 나오면 사전을 찾아본다. 좋은 문장을 만나면 메모한다. 사람이나 사물을 볼 때는 유심히 관찰한다. 자신 만의 새로운 생각을 만들겠다는 마음으로 독서한다. 그렇게 습관들이 축적될 때 저자는 ‘나를 표현하는 글’이 나온다고 강조한다.
“글 잘 쓰는 방법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 쓰고 싶은 글을 쓰면서 글쓰기 근육을 키운다. 그리고 써야 할 글이 있을 때 단련돼 있는 근육을 사용한다. 나무에 빗대 얘기하면, 평소 글을 쓰는 것은 뿌리를 내리는 일이고, 써야 하는 글을 쓰는 것은 꽃과 열매를 맺는 것이다. 꽃과 열매를 잘 맺기 위해선 먼저 뿌리부터 굳건히 내려야 한다.”
저자 역시 처음부터 글을 잘 쓴 건 아니었다. 30대 중반까지는 증권 회사 홍보실 사원으로 열심히 저녁 약속을 쫓아다니며 글을 배웠다. 대우그룹 회장의 연설을 쓰다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연설비서관이 됐다. 청와대와 기업에서 1000편에 가까운 연설문과 기고 글을 다듬으며 나름의 노하우를 축적한 셈이다.
청와대연설비서관으로서의 생생한 경험담은 글쓰기 이론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한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 ‘말하다’의 유의어 30개를 준비해 간 사례를 들며 어휘력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참여정부 시절 행정관들과 함께 모여 글을 쓰고 고친 경험을 들어 ‘글동무’를 가져보라고 권한다. 피가 되고 살이 된 글쓰기 경험들이다.
최근 저자는 이런 애정 어린 질책을 받기도 한다. “이제 대통령은 그만 팔아먹지?” 그는 순순히 인정한다. 고맙게 여기고 받아 들이고 있다. 청와대 경험을 녹인 ‘대통령의 글쓰기’도, 기업에서 겪은 얘기를 담은 ‘회장님의 글쓰기’도 사실 ‘관찰기’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이번 책은 28년 간의 글쓰기 인생을 썼다는 점에서 온전한 ‘그 만의 글’이다. 1000번 이상의 강의 내용을 비롯해 글쓰기에 관한 책 100여권을 읽고 책 구석 구석에 녹였다. 평소 인감 심리와 뇌 작용을 글쓰기 방법론과 연결해 온 관심도 충분히 반영됐다. 읽다 보면 첫 문장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글쓰기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려는 행동 등 글쓰기와 관련된 공감 포인트가 많다.
그는 글쓰기를 ‘암중모색’으로 정의한다. “한 번도 자신 있게 시작한 적이 없다. 그러나 한 번도 못 쓴 적은 없다. 못 쓰면 안 되니까. 써야 하니까. 쓰다 보면 써진다. 시간이 걸리지만 깜깜하던 방이 환해지는 순간이 온다. ‘왜 이제야 이런 순간이 찾아온 거야.’ 짜증과 반가움이 교차하면서 글이 써진다.”
‘글쓰기의 프로’로 알려져 있지만 그는 여전히 벽에 봉착할 때가 많다. 이 책도 2년 전에는 출간됐어야 했다. 써둔 원고를 다시 볼 때마다 ‘허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나올 수 있었다.
'강원국의 글쓰기' 사진/메디치미디어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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