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통계 무죄, 정치 유죄
2018-09-04 06:00:00 2018-09-04 06:00:00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통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많은 현상을 이해하는 데 지표가 되고 기준이 된다. 개인에게 주는 영향도 적지 않지만 국가 경영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국가의 3요소는 영토, 주권, 국민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국민이다. 국민이 없는 국가는 존재 의미가 없다. 국민이 몇 명이나 되고 국민들의 생활환경이 어떤지를 파악하는 기준이 인구통계다. 국민들로 구성된 국가의 경제가 어떤 상태인지를 파악하는 각종 경제 지표들도 통계의 산물이다. 유럽, 미국, 영국을 포함해 서구 국가들은 국가 경영에 있어 통계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통계 선진국이다. 이런 통계에 대한 인식은 더 빨리 현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이 한국을 강점한 후 가장 먼저 시작한 일도 인구, 토지, 산업, 자원 등을 망라한 각종 측정사업이었고 통계 작업이었다.
 
지금 대한민국 통계가 흔들리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흔들림을 당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통계 후발주자다. 산업화 성장을 하는 시기에 통계에 눈 뜬 이후 1990년에야 독립된 조직인 통계청으로 발족했다. 그 이전까지는 정부 재정부처의 외청에 불과했다. 통계청으로 개편된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과 밀접한 ‘가계동향조사’ 때문이다. 분기별로 가계소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를 보는 지표다. 정부와 여당에서 통계청의 조사가 합리적인 기준으로 통계 분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통계표본’과 ‘시계열 비교’를 문제 삼았다. 논란 와중에 ‘문제의 조사’ 발표를 했던 통계청장이 물러나고 신임 통계청장이 임명되었다. 청와대는 ‘조직의 활성화’를 위해서 새 청장을 임명했다고 설명했지만 통계청 노조에서 정부 조치에 반발하는 성명서를 내놓으면서 청와대 설명은 궁색해졌다. ‘조직 활성화’라면 며칠 뒤 발표된 문재인 정부 2기 차관급 인사 때 단행해도 되었다는 지적까지 쏟아진다.
 
통계는 정부 정책의 기본이고 국가 운영의 지표다. 통계청은 전문성이 있는 인력으로 독립적이고 공정한 업무를 수행하는 중앙행정기관이다. 국가 통계와 국가 통계를 총괄하는 통계청 모두 편향된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 국가 통계가 자의적으로 해석된다면 통계로부터 비롯된 어떤 설명이나 국가 정책도 불신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국가 통계 업무는 철저하게 전문성, 독립성, 공정성 속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먼저 전문성이다. 국가 통계 업무를 다루는 통계청은 전문가 조직이다. 다른 국가 공무원 조직과 달리 통계 업무는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한다. 희망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업무가 아니다. 자격과 경험을 동시에 갖추어야 한다. ‘가계동향조사’에 대해 정부에서 의문이 있다면 전문적인 설명과 토론을 요청할 일이지 논란을 삼을 일이 결코 아니다.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기관에 정치적 대응은 마땅치 않다. 통계청에 필요한 다음 조건은 독립성이다. 이번 논란에 통계청과 통계청 임직원들은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손사래 치겠지만 심리적 부담감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통계청을 국회 산하에 두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견해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공정성이다. 어떤 정부에서는 이런 기준에 맞추어야 하고 또 어떤 정부에서는 저런 기준에 따라야 한다면 통계의 공정성은 사라지고 만다. 모든 정부에 시계열적으로 추이를 비교해 보는 지표는 살려두고 추가로 필요한 지표는 새롭게 만들어 더 풍부한 통계를 만들면 될 일이다.
 
통계 논란이 발생하자 말자 통계청장이 교체되고 신임 통계청장은 현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던 인물이라면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통계청의 신뢰와 직결되는 문제다. 소득주도성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의 설명대로 성과를 더 기다려야 하는 정책이다. 한국갤럽이 자체조사로 지난달 28~30일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휴대전화RDD조사 표본오차95% 신뢰수준±3.1%P 응답률13% 자세한 사항은 조사기관의 홈페이지에서 확인가능)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 방향에 대해 찬반’을 물어본 결과 ‘찬성’이 60%로 압도적이었다. 국민 다수의 여론대로 정책 방향을 잡아 진행하고 일정한 시간 뒤 성과를 기대하면 될 일이다. 통계에 조급할 이유가 없다. 정치가 통계에 개입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지고 만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거짓말에 세 가지 부류가 있다.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라고 통계의 신뢰를 흔들었다. 전문성, 독립성, 공정성을 갖춘 인물의 설명이라면 몰라도 그는 정치인이다. 정치적 성격이 강한 발언이다. 정치가 통계를 뒤흔드는 참사는 없어야 한다. 이번 ‘통계 논란’은 아무리 보아도 통계 무죄, 정치 유죄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jcbae@randr.co.kr)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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