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세준 기자] 오는 25일 예정된 현대자동차 3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시장에서는 부정적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상 최악으로 불렸던 지난해보다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쟁력 위기론마저 고개를 든다.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투자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양적 성장 중심인 과거의 체질을 바꾸지 못한 게 현재 어려움의 근본 원인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안팎으로는 정의선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의 인적 쇄신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에서 전망하는 현대차의 3분기 컨센서스 실적은 연결 재무제표 기준 매출액 24조4000억원, 영업이익 9500억원 수준이다. 이대로라면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20.8% 감소한다. 현대차는 지난해 4분기부터 4개 분기 연속 1조원 미만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올해 내수와 해외를 합한 글로벌 판매대수 예상치는 467만5000대다.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연평균 6.9%의 성장률을 기록했던 판매량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2%로 역주행했다.
과거 글로벌 경쟁사들이 리콜 이슈로 무너지는 동안 현대차는 반사이익을 누렸다. '값은 싼데 품질은 괜찮은 자동차'로 인식되면서 판매량이 늘었다. 토요타는 2009년부터 2010년까지 전 세계 시장에서 1000만대의 차량을 리콜했고, 폭스바겐은 2015년 디젤 엔진의 배출가스량을 조작한 이른바 '디젤게이트' 파문으로 각 국에서 판매정지 처분을 받았다. 현대차로서는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올라설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시기 현대차의 잘못된 판단과 전략이 현 위기를 불러오는 불씨가 됐다는 지적이다. 판매량 증가에만 몰두하면서 고급화와 미래차 투자에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는 것. 연구개발(R&D)에 사용했어야 할 자금을 부동산 매입에 쏟아 부으면서 투자 적기를 놓쳤다는 쓴소리도 나온다. 현대차는 지난 2014년 계열사들과 함께 총 10조5500억원을 들여 서울 삼성동 소재 한전 부지를 매입했다. 정몽구 회장의 숙원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를 짓기 위해서였다. 시장에서는 '그 돈이면 외국 완성차 기업을 인수하고도 남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GBC는 아직 첫 삽도 뜨지 못했다.
현대차는 2015년 11월에야 고급차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출범시켰다. 같은 해 그룹 차원에서 '2018년까지 81조원 투자'를 발표하고 친환경차 개발에 11조3000억원을 집행하겠다고도 했으나, 2020년까지 친환경차를 14종 이상 출시하겠다는 구체적인 로드맵은 지난해 1월에야 나왔다. 경쟁사들보다 한참 늦었다. 토요타가 이미 1997년 하이브리드카인 '프리우스'를 선보였고 2012년 닛산 리프, GM 볼트 등 전기차도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였다. 현대차는 올 들어 1회 충전 주행거리 400km 이상인 전기차 '코나EV'와 600km 이상인 수소전기차 '넥쏘'를 선보이며 친환경차 분야에서 과시할 만한 성과를 냈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제네시스의 경우 올 2월 미국 컨슈머리포트가 선정한 자동차 부문 1위 브랜드에 올랐지만 판매량이 부진하다. 올 1~8월 누적실적은 8490대로, 전년 동기 대비 36.4% 감소했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7일 "지속적인 투자를 하려면 매출과 수익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현대차의 지금 상황은 최악이다. 과거 (상황이 좋을 때)10조5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 돈으로 땅을 사선 안 되는 거였다"며 "시장 패러다임은 급격히 변하고 있다. 당장 중국이 내년부터 친환경자동차 의무판매제를 실시하고 2021년에는 유럽이 이산화탄소 배출량 기준 미달 차량에 대한 벌금제도 시행한다. 여기에 자율주행차 시대도 다가온다. 현대차는 상당히 장기간 성장 정체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대차가 내놓은 전략도 한 박자 늦다.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으로 가는 건 글로벌 기업 누구나 목표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북미에서 SUV, 중국에서는 현지 특화모델을 앞세우는 전략으로 실적 회복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북미에서 인기 있는 픽업트럭 시장 등은 여전히 난공불락이다. 중국에서는 사드 여진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이 혈투를 벌이는 유럽의 경우 아직 제대로 된 명함도 내밀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현대차가 그동안 이어왔던 DNA를 근원적으로 바꾸는 특단의 쇄신을 하지 않으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정 수석부회장 스스로 올 초 CES에서 "가솔린과 디젤 엔진에서 전기차와 수소차로 가게 되면 일하는 방식이 많이 바뀔 것이다. 정보통신기술 기업보다 더 정보통신기술 기업이 돼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지만 쇄신은 더디기만 하다.
시장에서는 정 수석부회장이 당면 과제인 지배구조 개편을 정부와 시장의 공감을 얻는 방향으로 마무리하는 동시에, 연말 인사에서 과감한 물갈이를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정 수석부회장 승진이 발표된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14일까지 한 달 간 현대차 주가가 12.4% 하락한 것은 새로운 리더십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측면도 반영돼 있다는 지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빠른 의사결정과 명확한 업무 프로세스를 위해서는 지배구조가 한시바삐 정리돼야 하고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나이든 임원들이 많아 새 패러다임에 맞는 의사결정이 어렵다. 조직이 빨리 ES(정의선 수석부회장) 체제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윤정구 이화여대 교수는 "단기적 이득을 염두에 두고 있는 주주에게는 시장 가치에 기반한 지배구조 청사진을 설득하고 가치투자에 관심을 가지는 국민연금 등에는 미래 비전을 중심으로 설득해서 우군으로 끌어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경직된 노사문제에서 비롯되는 고질적인 고비용 구조도 해결 과제로 꼽힌다. 범현대가인 현대중공업의 경우 해양플랜트 세계 1위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고비용 구조로 수주전에서 외면을 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중 무역분쟁 위험, 한국 성장률 전망 하향조정 등 대내외 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노사가 서로 협력해 선제적으로 기업 생산성을 높이고 비용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황세준 기자 hsj121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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