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10월29일은 '반도체의 날'이다. 한국의 반도체 수출이 처음으로 100억달러를 넘어섰던 1994년 10월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됐다. 24년 사이 한국 반도체 산업은 국가경제 절반을 책임지는 주력 산업으로 성장했다. 수출 규모는 10배 이상 증가했고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도 절대강자의 지위를 점하고 있다. 한국의 메모리반도체가 없으면 전 세계 산업 현장이 멈춰 선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수출은 지난 16일 기준 1000억달러를 달성했다. 11월과 12월이 남은 만큼 연간 수출은 최대 12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단일 품목으로 한 해 수출이 1000억달러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외 사례를 뒤져봐도 1000억달러 달성은 드물다. 완제품으로 한정했을 때, 미국이 2013년 항공기 1000억달러를 수출했고, 중국은 2008년과 2010년 컴퓨터·유무선통신기기 수출 1000억달러를 일궈냈다. 독일과 일본도 각각 2004년, 2007년 자동차에서 수출 1000억달러 고지를 넘었다. 단일부품(HS4단위) 기준으로는 한국의 반도체가 첫 기록을 남기게 된다.
박성욱 한국반도체산업협회장은 지난 25일 열린 '제11회 반도체의 날 기념식'에서 "1994년 당시 한 해 수출 기록을 지금은 월간 단위로 달성하고 있다"며 "세계 금융위기와 업계 재편 전쟁 속에서도 반도체 강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는 16만 반도체인의 열정이 빚어낸 자랑스러운 성과"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말대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오늘은 10여년 전 혹독한 치킨게임을 이겨낸 결과다. 2000년대에는 10여개의 D램 제조사들이 있었지만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대형 메모리 기업들이 연이어 도산했다. 2009년 독일 키몬다가 쓰러졌고, 2012년 일본 엘피다도 파산 신청을 했다. 엘피다는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됐다. 현대전자가 전신인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것도 이 때다. 글로벌 D램 시장에서 20%대 점유율을 갖고 있던 대만 난야도 출혈경쟁을 버티지 못하고 메모리 업계의 변방으로 밀려났다. D램 시장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빅3'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치킨게임에서 살아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선제적 설비 투자와 미세공정 기술의 초격차 전략을 바탕으로 메모리 업계의 최강자로 입지를 굳혔다. 때마침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되며 모바일 시대가 열린 점도 두 기업의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PC가 중심이 됐던 메모리 수요가 스마트폰 등 모바일로 확대됐다. 스마트폰이 받쳐주던 메모리 수요는 현재 데이터서버, 엣지컴퓨팅 등이 이어받았다. 4차 산업혁명이 고도화되면서 인공지능(AI), 자동차용 메모리 수요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의 화려한 이면에는 과도한 쏠림이라는 그림자가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성과를 찾기 힘들다. 무엇보다 산업의 근간이 되는 장비·부품·소재 등의 기초가 부실하다. 중국의 위협을 경계하면서 반도체 초호황의 끝도 준비해야 한다. 전체 반도체 산업의 70%를 차지하는 비메모리 영역에서의 취약한 경쟁력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꼽힌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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