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전직 대법원장으로서는 헌정사상 처음 피의자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수사 대응 전략을 사실상 ‘묵비권 행사’로 변경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지난 11일 첫 조사에서 일단 성과를 얻은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사법농단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 11일 밤 검찰 조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를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최정숙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 등 변호인 측은 13일 사법농단 의혹 사건과 양 전 대법원장의 입장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기소 전에는 사건 내용에 대해 말할 수 없다”면서 “소명할 부분은 재판 과정에서 하겠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현재 취재기자들 연락을 받지 않고 있다.
그러나 앞서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검찰 출석 하루 전까지 “진술을 거부하지 않겠다. 기억나는 대로 말하겠다”고 밝혔다. 사회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강행한 ‘대법원 기자회견’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은 “자세한 사실관계는 오늘 조사 과정에서 기억나는 대로 가감 없이 답변하고, 오해가 있는 부분은 충분히 설명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검찰이 양 전 대법원장과 공모관계에 있다고 보고 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비슷한 전략을 썼다. 지난해 10월15일 검찰에 처음 출석한 임 전 차장은 조사 전 포토라인에서 "법원이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임 전 차장은 자신의 결백함을 적극 소명했다.
그러나 추가 소환조사가 이어지고 같은 달 27일 구속된 이후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임 전 차장 변호인 측은 “법리보다는 정치적 고려가 우선된 부당한 구속”이라고 주장하고 “이 때문에 검찰수사에 일절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이 ‘적극 소명’에서 ‘묵비권 행사’로 태도를 바꾼 이유는 구속 전 조사에서 검찰에 불필요한 빌미를 제공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잘 아는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이 준비를 많이 한 것으로 안다. 이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소명한 것이 오히려 허점을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검찰은 수사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계속 설득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앞의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으로서는 일단 구속을 피하는 것이 급하다. 묵비권을 행사하면서 시간을 끌다 보면 결국 불구속 기소로 갈 것이고, 법정은 양 전 대법원장의 홈그라운드기 때문에 유리하면 유리했지 결코 불리하지 않다”고 말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14시간여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기 전 '검찰에서 어떤 점을 소명했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함구했다. 검찰은 설 연휴 전 사법농단 의혹 사건 수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양 전 대법원장을 1~2회 추가로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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