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성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와 함께 북미 실무진이 20일부터 정상회담 핵심의제 및 합의문 작성을 추진하는 등 회담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북미는 양국 관계정상화를 위해 '상호 연락사무소' 개설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한미정상 통화는 문 대통령 취임 후 양국 정상이 갖는 19번째 통화다. 마지막 통화는 지난해 9월 이뤄졌다. 당시 문 대통령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방북관련 내용을 공유한 바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통화내용에 대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동안 북미 사이의 실무협상에서 진행된, 진척된 내용을 두 정상이 공유했다"면서 "그리고 정상회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미국이 북한에 제안할 '상응조치'를 설명하고 우리 정부의 협조를 요청했을 것으로 보인다. 18일(현지시간) 미국 CNN은 복수의 고위급 소식통을 인용해 북미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하기 위한 사전 단계로 연락관을 서로 파견해 '연락사무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연락사무소는 국가 간 정식 수교 전 설치되는 상설연락기구다. 미국과 리비아의 경우 2004년 6월 연락사무소를 설치했고, 2년 뒤 이를 대사관으로 격상해 완전한 외교관계를 맺은 바 있다. 북미도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연락사무소 설치를 추진했지만, 1998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등으로 무산된 사례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를 발표한다면, 이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채택한 '북미 새로운 관계 수립'을 구체화하는 조치로 평가할 수 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평양에 상주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체제보장' 성격도 띈다.
일각에선 연락사무소 개설 논의 자체가 북미 간 '단계적 비핵화', 향후 이어질 '스몰딜(small deal)'의 시작에 해당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는다. 북미 상호 신뢰가 부족한 상황에서 '빅딜(big deal)'을 성사시키기 어렵고, 설령 빅딜에 합의해도 북한 비핵화 검증과 미국 상응조치 이행에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현실론에 기반한다. 불확실한 하나의 빅딜이 아닌 확실한 여러 스몰딜로 비핵화를 구속력 있게 진행한다는 구상이다.
결국 북미가 완전한 비핵화를 포괄적으로 합의하면서 일종의 로드맵을 도출하고, '비핵화 워킹그룹' 등을 구성해 단계적으로 비핵화-제재 완화(혹은 체제보장)를 이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힘을 얻는다. 상호 신뢰를 높이고 협상을 이어가기 위한 액션으로 북한은 영변 핵시설과 동창리 미사일시설 폐기·검증을, 미국은 종전선언과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남북 경협재개 일부 허용을 맞바꿀 가능성이 제기된다. 만약 북한이 영변을 뛰어넘는 수준의 비핵화를 약속하고 이행할 경우 미국의 제재 완화 수준도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북미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조율과 합의문 초안 작성을 위해 이르면 20일부터 실무협상을 진행한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는 19일 오전 평양에서 출발해 중국 베이징을 경유, 하노이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티브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도 하노이로 곧 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위원장의 '집사'로 알려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도 현지에서 미국·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의전준비에 한창이다. 지난 16일 하노이에 도착한 김 부장은 5성급 호텔들을 둘러보며 김 위원장의 숙소를 검토했고, 17일에는 삼성전자 생산공장이 위치한 박닌성 등을 방문해 김 위원장의 현지 '경제시찰' 일정 가능성을 시사했다. 같은 날 저녁 하노이 오페라하우스에서 미국측 대표단과 만나는 장면이 외신의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18일에는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을 방문했다. 김 부장이 사흘 연속 방문한 호텔은 메트로폴 호텔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져, 김 위원장의 숙소로 낙점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 19일에는 베트남 외교부를 방문했다. 김 위원장의 국빈 방문 일정과 경호 등을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부장의 카운터파트인 대니얼 월시 미 백악관 부비서실장도 15일 하노이에 도착해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로 유력한 JW메리어트 호텔 등을 점검하는 등 숙소와 경호, 동선 등을 체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집사로 알려진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18일 오후(현지시각)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숙소로 거론되는 베트남 하노이 메트로폴 호텔을 방문한 후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성휘 기자 noirciel@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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