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당장 오늘 잠잘 곳도 없었는데…머물 곳이 생기니 가족들이 안정을 찾아 너무 좋습니다.” 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성산로4길의 한 연립주택의 반지하, 이긍정(가명·41)씨가 이 집에 들어온지도 벌써 일주일을 넘겼지만, 이씨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얘기를 하다가도 문득 물끄러미 집안 곳곳을 바라봤다. “반지하인데도 채광이 너무 좋다”, “환기가 잘돼 곰팡이가 없다”고 말하며 피어오르는 미소는 감출 수 없었다.
이씨는 마포구의 마포하우징 1호 입주자다. LH에서 마포구에 무상임차한 빈집을 마포구에서 민간과 함께 개보수해 기본적인 집기와 함께 6월까지 무상, 7월 이후 저렴한 가격에 이씨에게 제공한다. 이곳에서 머물며 심신을 추스려 공공임대주택 등으로 이동할 수 있는 디딤돌인 셈이다. 이씨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지난달 25일 이곳으로 이사했다.
2011년 두 살 연하의 아내와 결혼하고 연년생의 두 딸을 낳을 때까지만 해도 이씨는 학원강사로 일하며 강서구의 한 아파트에서 자칭 ‘보통의 삶’을 살았다. 그 ‘보통의 삶’이 무너진 건 2016년이 시작이었다. 아버지를 하늘로 보내드리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던 빚을 떠안았다. 갑자기 흔들린 생활에 학원도 그만두게 되고, 생계를 책임지려고 물류센터에서 일당 6만원짜리 일용직을 해봤지만, 남겨진 건 왼쪽 어깨 파열이 전부다.
2018년 6월 네 가족은 결국, 월세가 밀려 보금자리를 나왔다. 지난 10개월간의 이씨네 집은 마포구와 영등포구 일대 여관·게스트하우스·찜질방·고시원이었다. 이씨가 일용직으로 겨우 방값과 밥값을 벌어오면 며칠 지내고, 방값이 떨어지면 다른 고시원이나 게스트하우스로 옮겨다니던 시간이었다. 한 곳에 평균 4~5일 머물렀으며, 가장 오래 지낸 곳은 낮 시간 동안 공공시설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마포중앙도서관일 정도다.
유독 추웠던 겨울이 가고 ‘무척 따뜻했던 날’로 기억하는 지난 3월28일, 그날도 다음 거주지를 찾아다니던 이씨는 주머니에 단 돈 1만2000원만을 쥔 채 연남동주민센터를 들어갔다. 다른 지역에서 여러 번 이미 외면당했지만, 어디서 생겨난 용기에 이날만은 구걸이라도 할 심정이었다. 절박한 마음에 두서없이 한참을 얘기한 그의 얘기가 와닿았는지, 주민센터에선 긴급지원신청제도를 거쳐 당일 고시원에 찾아와 한 달치 주거비를 지불했다. 그리고 그 연남동 고시원은 이씨 가족의 마지막 고시원이 됐다.
집이 생기자 무엇보다 아이들이 눈에 띄게 안정을 되찾았다. 첫째 딸은 초등학교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겠다고 벼르고 있고, 유치원도 못 다니던 둘째 딸은 유치원에 다닐 마음에 부풀어있다. 넓직한 집에 침대도 TV도 컴퓨터도 없지만, 두 자매는 “책상이 생겨 좋아요”라며 몇시간을 책상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려울 땐 작은 거 하나에도 다투기만하던 가족관계가 집 하나에 이렇게 달라지다니 이씨가 놀라는 요즘이다.
이씨는 이제 주위의 도움을 받아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예전처럼 학원강사도 좋고, 아니 가릴 것없이 얼른 착실하게 돈을 모아 이 다음 보금자리를 가고자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리고 ‘주경야독’을 해서라도 복지공무원이 돼 어려운 사람을 돕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이씨는 “힘든 것은 제 잘못이라고해도 나락으로 떨어질 땐 아무리 노력해도 고리를 끊을 수가 없더라”며 “가족을 위해 하루하루 버텼는데 이제 이렇게 희망이 주어졌으니 가족과 함께 힘을 내 다시 일어서겠다”고 말했다.
마포하우징을 고안한 유동균 마포구청장도 이날 이씨네 가족을 찾아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마포구는 올해 자체매입과 SH·LH 협업을 통해 20호의 마포하우징을 지원하는 등 2022년까지 95호의 거주공간을 마련할 계획이다. 유 구청장은 “밥도 옷도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지만, 돈 없어 거리로 내몰리는 일만은 막고 싶다”며 “웃음을 잃지 않고 네 가족이 주거안정 속에서 일어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마포하우징 1호 입주자 가족이 마포구 성산동의 1호 주택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박용준기자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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