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밴드씬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를 가득 메우는 대중 음악의 포화에 그들의 음악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아마도이자람밴드의 정규 앨범 작업의 호흡은 꽤나 긴 편이다. 정규 1집 ‘데뷰’는 결성한지 8년 만에 발매됐고, 지난달 발매된 정규 2집 ‘페이스(FACE)’는 그로부터 6년 만에서야 나왔다.
주로 곡의 뼈대는 프론트맨인 이자람이 짜고, 편곡 과정에서 멤버들이 의견을 보태는 식으로 완성된다. 한 곡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기간은 빠르면 한 달, 길면 일년. 이들 역시 서로 다른 음악적 길을 걷다 만난 사이니, ‘밴드의 언어’가 같아지는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온유)밴드는 한 팀이니, 모여서 의견을 내고 합의를 봐야 하는 건 필연적인 부분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요즘은 편곡의 빠른 진행 속도만이 좋은 완성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고, 결과물이 늦게 나온다고 해도 성장 속도가 느리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정민)제가 처음 밴드에 들어왔을 때 연주한 곡이 ‘빈집’이에요. 당시 합주가 잘 안되니까 자람씨가 곡에 대한 해석과 시점을 장문의 텍스트로 설명해주면서 점차 이해가 갔던 기억이 나네요. ‘밴드의 언어’가 같아지는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난달 발매된 2집 ‘FACE’ 역시 이런 사고의 시간이 축적돼 나온 결과물이다. 멤버들 각자의 사운드가 영역을 벗어나지 않는 자신 만의 테두리에서 선을 지키고, 그것이 또 색다른 조화를 이뤄 낸다. 앨범 커버에 네 사람의 모습을 동등한 크기와 위치로 그린 이자람의 그림은 이를 명징하게 묘사한다.
아마도이자람밴드 정규 2집 'FACE'. 사진/유어썸머
장식적인 요소들을 최대한 배제한 미니멀 사운드 위로는 이자람의 순수하고 담백한 가사가 춤을 춘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소재들을 뻔하지 않은 상상력으로 기워 이야기화 시킨다. 유머를 과일에 빗대 ‘목이 마를 땐 유머나무 아래로 달려라’(‘유머’)거나 사랑의 교감을 곤충의 더듬이에 빗대 ‘조심스레 살피고 예민하게 움직이고’(‘FACE’)라 노래한다.
가사를 따라가는 노래의 흐름은 붓으로 그려가는 그림을 보는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하게 한다.
“(자람)평소에 언어가 나올 때 제한을 두지 않는 편인 것 같아요. 사물을 사물로서 말하게 한다거나 문법에 구애 받지 않는 언어들이 불현듯 생각나면 적어두는 편이에요.”
“(정민)실제로 자람씨가 작업할 땐 그림을 그려주세요. 폭죽이 터지고, 여기엔 어떤 색의 강이 흐르고 하는 식의 그림을요. 그럴 땐 사운드에 대한 이해가 조금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온유)그래요? 제 경우는 이 분이 정말 순수한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또 이걸 악기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하는 부담감도 들어요. 하지만 결과물을 놓고 보면 항상 그래서 저희 노래가 직관적으로 들리는 게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아마도이자람밴드. 사진/유어썸머
11개의 수록곡들은 크게 두 개의 축으로 나뉜다. 만남과 사랑, 타인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개인이 삶을 살며 느끼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개인에 대한 커진 고뇌는 앨범 말미에 이를수록 다양한 삶의 군상, 세상을 보는 것으로 나아간다.
“(자람)1집은 개인에 관한 이야기였고, 2집은 사회에 섞여 있는 개인으로 지점이 살짝 이동한 차이가 있어요. 세상을 바라보거나 노래를 하는 화자의 관점이 그렇게 이동을 한 것 같아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제가 고민이 많아졌나 봐요.”
사운드를 층으로 겹겹이 쌓아 화려하게 장식하는 밴드들과 달리, 이들은 정반대의 소박한 방식을 추구한다. 베이스나 기타의 이펙터를 과하게 쓰는 법도 없고, 오케스트라를 넣는 식의 시도를 하지 않는다. 1집에 비해 유일하게 시도한 점이라면 키보드를 투입시켰다는 점이다. 전자음을 넣음으로써 단조롭게 흘러가는 어쿠스틱한 소리 파형에서 벗어나고, 사운드의 공간감을 조금 더 채울 수 있었다.
“(자람)본인들이 가진 악기의 기본적인 소리에서 방법을 찾아가는 게 저희 팀의 특징인 것 같아요. 이제 네 명이 2집을 같이 만들다 보니 사운드에 자신감이 붙었어요. 다음 앨범은 조금 더 일찍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오는 5월12일 홍대 웨스트브릿지 라이브홀에서는 2집 발매 기념 단독 공연도 갖는다. 낮과 밤, 두 번의 공연을 서로 다른 콘셉트로 진행할 계획이다.
“(자람)2집 수록곡들은 모두 하겠지만 곡의 순서가 다르고, 일부 셋리스트 구성도 다를 것 같아요. 낮에는 세게 시작해서 조용한 흐름으로, 밤에는 그 반대로 진행하려 해요. 셋리스트가 다르면 공기, 흐름도 달라지니 뭐가 더 재밌는지 오셔서 봐주세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아마도이자람밴드와 있는 그대로의 '날 것' 같은 이야기를 나눴다. 베이스 이정민과 보컬 이자람은 수산시장 경매장을 보며 신기해 했고, 노란박스를 배경으로 찍어보고 싶다고 깜짝 제안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이번 앨범 발매를 앞두고 밴드는 앨범 소개글에 ‘낯설지만 아름다운 곳으로, 가보지 못한 곳으로의 여행이 됐으면 좋겠다’는 글을 썼다. 이를 구체적으로 멤버들은 어떤 여행지로 생각하고 있을까.
“(민기)맛집을 좋아하는 저희 팀처럼, 각자가 맛있는 음식을 찾아가는 듯한 느낌의 여행!”
“(자람)결국 기승전 맛집인거야?”
“(정민)저는 여유로운 날에 가는 박물관이나 사진관이요. 작품들 하나, 하나를 차근 차근 보듯이 한 곡, 한 곡 들여다 보면서 이곳 저곳을 보셨으면 좋겠어요.”
“(온유)저는 사실 여행을 별로 안 다니긴 하지만, 그래도 가야 한다면 같이 가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이 갔을 때 함께 있는 것만으로 좋은 사람처럼 그런 노래가 됐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자람이 낯설지만 아름다운, 가보지 못한 여행지를 들려줬다.
“(자람)저는 바다 속. 평소 일상에서 만나지 못하는 새로운 곳이잖아요. 굉장한 드라마가 있고, 잠깐 어디로 다녀오는 휴식 같기도 할 거고요. 음악은 그렇게 정확하게 현실과 다른 어떤 세계를 구축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 앨범을 듣고 다들 잠깐 쉬셨으면 좋겠어요. 일상은 너무 지치니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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