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후면 전광판 푸른 빛은 활처럼 굽어 종말 직전의 지구 같았고, 3개의 데스크는 가동을 앞둔 유에프오처럼 보였다. 컴퓨터가 찍어내는 드럼 비트가 홀에 가득 찰 무렵, 그가 마이크에 입을 댔다.
'우린 서로의 눈을 응시해…갈까마귀처럼, 큰까마귀처럼…지반이 열리면 우리를 삼킬 거야…바로, 즉시'(오프닝 곡 'Interference')
지구 바깥 세계에서나 떠돌법한 음절들이 전자음 사이를 부유했다. 어둠을 가르던 푸른 빛은 곧은 불기둥이 되더니 이내 오로라처럼 하늘거렸다. 쌩뚱맞게 인공지능으로 다듬은 한국어가 인사를 건넸다. "저는 채식주의자예요. 영어할 수 있어요? 화장실이 어디예요?"
지난 28일 서울 올림픽홀에서 열린 톰 요크(Thom Yorke·52)의 첫 단독 솔로 내한공연. '크립(Creep)'이나 '노 서프라이시스(No Surprises)'에 대한 시절의 기억을 접고, 그는 저 먼 우주 세계 어디쯤으로 완전히 걸음을 옮긴 듯 보였다.
톰 요크 단독 내한공연. 사진/에이아이엠
현란한 레이저 빛 사이로 기존 자신을 해체시킨 전위적인 음악들이 흘렀다. 가장 실험적이라고 평가받던 라디오헤드의 최신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순 없었지만, 솔로로서 짙고 독보적인 그의 색채를 느끼기 충분한 음악들이었다.
무대 위 악기 구성은 눈을 감으면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데스크 3대 위에 올려진 노트북과 프로그래밍 장비, 전자 기타와 키보드가 전부. 단촐하기 그지 없었으나, 사운드는 홀의 바닥까지 진동시킬 듯한 우주 굉음처럼 느껴졌다. 세 연주자 중 톰 요크는 전자 기타를 멨다가 키보드에 앉고, 또 프로그래밍 장비를 두드리면서 '해체된 자신'의 조각들을 무대 위에서 껴맞췄다. 댄서블한 비트가 일렁일 때는 흐느적 거리며 줄곧 춤을 췄는데, 흡사 바다 속을 유영하는 연체동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총 21곡으로 채운 120분 간의 이날 공연은, 2006년부터 시작해온 그의 솔로 여정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블랙 스완(Black Swan)', '심발 러시(cymbal rush)' 등 초기 곡들부터 지난 6월 낸 3집 '아니마(ANIMA)'까지 아울렀다. 초현실적이고 영적이며 무거운 흐름의 연속에도 3600여 팬들은 오히려 그의 작은 동작 하나에 웃고, 박수치며, 환호했다. 전위적이고 자기해체적인 음악들이 오히려 교감을 더 진하고 깊게 만들었다.
톰 요크 단독 내한공연. 사진/에이아이엠
톰 요크 전위에 맥을 못추던 이날, 올림픽공원역에서 남서쪽으로 11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더욱 파괴적인 해체의 음악이 수백명도 채 안되는 관객들 앞에서 들려지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시민의 숲역 인근에서 열린 '서울세션즈' 헤드라이너 '아르카(Arca)'의 무대.
비요크, 카니예 웨스트 등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프로듀서로 이름을 알린 그는 이날 자신은 물론 전 세계 음악씬을 해체시킬 듯한 무시무시한 음악 세계관을 보였다.
대형 화면에는 벌레들이 기어다니거나 성기가 등장하는 파격적인 이미지들이 카메라 플래쉬처럼 반짝였고, 성소수자인 아르카는 치마를 입고 무대를 패션쇼 런웨이장처럼 걸었다. DJ셋 위에서 트는 음악들은 마치 강렬한 록 사운드를 듣듯 내리 꽂히는 연쇄적이고 노이즈가 심한 전자음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그는 어릴 적 성 정체성이 흔들리는 자신과 사회적 시선에 대해 끝없는 부정과 물음, 아픔을 거쳤다고 한다. 이 같은 세계에서 느낀 공포와 광기, 때론 미묘한 서정이 그의 예술 세계를 구축한 것은 아니었을까 짐작됐다. 이날 이 정돈되지 않은 불규칙의 혼돈 세계들은 톰 요크 만큼이나 아찔한 자기 해체적 미를 품고 있었다.
여러 의미로 실험적이고 충격적인 공연이었으나, 관객을 향한 그의 태도는 따스했다. 자연스럽게 무대 아래로 내려 오더니 관객들의 손을 하나씩 잡아주며 말했다. "뷰티풀"
일요일 밤, 전위에 물든 수백 관객들이 열광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일렉트로닉 뮤지션 아르카.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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