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기종 기자] 제약·바이오산업이 난립하며 갈수록 공급과잉 양상을 띤다. 신약 개발에 투자금이 모이는 것은 긍정적이나 투기성 자본 유입이나 수익성 높은 의약품에만 기업이 몰리는 등 부작용도 나타난다. 이에 업계는 기업간 안정적 시너지를 모색하는 '오픈이노베이션(개방형)'에 주목한다. 협업에서 나아가 인수합병(M&A)까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합종연횡이 활성화되도록 정책적 지원에 대한 목소리도 높이고 있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통 제약사가 바이오사업에 진출하며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바이오시밀러에 무게를 싣는 종근당과 LG화학을 비롯해 바이오 의약품 주력 의지를 밝힌 안국약품 등이 대표적인 예다.
화학합성의약품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의약품은 그 비중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 사람이나 다른 생물체 유래 원료를 사용해 세포 배양 등의 공정으로 생산되는 바이오의약품은 기존 합성의약품에 비해 생산 과정이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하지만 그만큼 높은 효과와 적은 부작용으로 신사업으로써 각광받고 있다. 기술적 장벽만 넘어선다면 제약사에게 안겨주는 이득도 크다.
이에 따라 최근 10년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신약 가운데 40% 가량이 바이오의약품이었고, 지난해 세계 10대 블록버스터 의약품 가운데 8개가 바이오의약품이었다. 한국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7년 약 306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시장 규모는 오는 2023년 500조원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이 같은 바이오의약품의 높은 잠재력 때문에 전통제약사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을 영위하던 기업들도 신규 사업으로 낙점하고 있다. 이에 따른 시장 난립에 대한 우려도 고개를 든다. 일례로 수익성 높은 미용 관련 의약품에 투자가 몰리며 소모성 출혈경쟁이 나타난다. 최근 공급자가 급증하며 각종 특허 소송이 번지고 있는 보톡스가 대표적이다. 또 수요가 높은 항암이나 혈관 질환 분야에만 신약개발이 집중되며 희귀성 질환 환자들이 소외받는 것과 관련 임상 과정에서 증시가 출렁이며 투기 시장이 조장되는 현상도 포착된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한 선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다. 제약·바이오업계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최선으로 꼽는다. 오픈이노베이션은 기업이 연구·개발 및 상업화 과정에서 내부 자원을 외부에 공개 또는 공유하면서 혁신을 위해 필요로 하는 기술과 아이디어를 외부와 협업하는 개념이다. 기업 간 경계를 허무는 개방성이 특징이며 기술혁신 경쟁이 치열해지는 최근 산업계 동향에 따라 더욱 각광받고 있다. 특히 독보적 기술력을 통한 혁신 신약 개발이 곧 산업 경쟁력에 직결되는 제약·바이오 특성과 잘 맞물린다는 평가다. 자본은 있지만 모든 영역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수 없는 대형 제약사와 기술력은 보유했지만 자본이 부족한 바이오벤처 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국내 제약사들도 오픈이노베이션 성과를 거두고 있다. 그동안 R&D 성과가 취약점으로 꼽히던 유한양행은 국내 바이오벤처 제넥신과 제노스코 등의 기술을 도입한 신약 후보물질로 최근 1년 여간 3조원 이상의 기술수출 성과로 이뤄냈다. 안트로젠과 LSK바이오파마 등 유망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기업의 지분 투자를 통해 투자 수익을 거둔 부광약품 역시 성공적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로 꼽힌다. 이밖에 보령제약은 지난달 증권시장에 입성한 국내 벤처 라파스와 마이크로니들을 활용한 패치형 치매치료제를, 일동제약은 올릭스와 함께 신규 황반변성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정부도 이를 돕는다. 기업 간 협업을 위한 윤활제로 제도적 장치가 필수적인 만큼 적극적 지원책 마련에 고삐를 당긴다. 지난 5월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제약바이오산업을 비메모리 반도체, 미래형 자동차와 함께 차세대 3대 주력산업 분야로 중점 육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정부는 기술개발부터 인허가, 생산, 시장 출시에 이르는 산업 전주기의 혁신 생태계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그 속에 오픈이노베이션은 중추적 역할이다.
정부는 오픈이노베이션 촉진 차원에선 민간 벤처투자와 공동으로 우수 물질을 선별 투자하는 투자연계형 R&D 신설 및 범부처 R&D 협업 및 공동기획, 초기 창업 및 기술사업화 등을 위한 실증연구 공간 및 장비 제공, 멘토링 등의 전문가 지원, 산·학·연·병 컨소시엄 확대 등을 통해 선도기업과 창업·벤처기업 협력체계 구축 기반을 다진다는 방침이다.
이홍주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팀장은 "기존의 합성의약품 시장에서 바이오 의약품 시대로 넘어오면서 소규모 연구소나 회사들도 혁신 신약의 후보 물질 개발이 가능해져 이런 회사를 찾는 것이 혁신 신약 개발의 지름길로 자리 매김했다"라며 "선진 시장에서는 이미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여러 바이오 클러스터를 포함한 제약바이오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한 다방면의 지원책이 마련되길 희망한다"라고 말했다.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고재인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