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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가짜 과학, 가짜 뉴스
2017-03-14 06:00:00 2017-03-14 06:00:00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도착한다면 가장 바빠질 사람은 누구일까? 군인이라면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무기를 먼저 찾는다. 정치인이라면 그들이 무슨 목적으로 지구에 왔는지 알고 싶다. 과학자라면 그들이 어느 별에서, 어떻게 왔는지가 가장 궁금하다. 언어학자는 그들의 언어를 해석하려고 애쓸 것이다. 누가 가장 바빠지겠느냐는 질문에 쉽게 답하기는 어렵다. 다만 최근 개봉했던 영화 '컨택트(원제 Arrival)'에서 우리는 하나의 실마리는 찾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의사소통이다. 그들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언어학자가 가장 바빠지지 않겠냐고 생각하기 쉽지만(실제 영화에서도 언어학자가 주인공이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그들의 언어와 문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구에서 사용하는 빅 데이터를 총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대과학으로도 끝내 해석 불가, 혹은 판명 불가로 끝날 수 있다. 그렇게 대화와 소통이 실패했을 때 기다리는 결과는? 상상하기 싫다.
 
전제가 있다. 대화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진솔해야 한다는 점이다. 주고받는 모든 정보는 진짜여야 한다. 그들을 속이기 위해 가짜 정보를 전달하고, 가짜 정보를 통해 지구를 이해했을 때 그들은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우리를 속이기 위해 가짜 정보를 전달하고, 가짜 정보를 통해 그들을 이해했을 때 우리는 과연 외계 생명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많은 SF 영화에서 다뤘듯 가짜 정보를 통한 서로의 이해는 결국 파국을 불러올 뿐이다. 그 결과는 참담하다. 영화 '컨택트'에서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 실패했지만,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은 이유는 주인공 루이스(에이미 애덤스) 박사의 진솔함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해석한다.
 
과학의 기본적인 속성이 사실과 진실이라는 점은 그나마 다행이다. 외계 생명체와 조우하더라도 지구가 멸망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은 지구상의 첨단무기에서 오는 게 아니다(핵무기를 사용하면 되지 뭐가 걱정이냐는 사람에게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군사적·정치적 접근은 어떨지 몰라도 과학적 접근만큼은 그들도, 우리도 속이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의 과학은 그들의 가짜 정보를 곧바로 걸러내고, 우리보다 진보했을 가능성이 높은 그들의 과학은 우리의 가짜 정보를 아예 입력하는 순간 걸러낼 것이다. 오로지 진짜 정보만 통용되는 세계. 우리는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른다.
 
물론 과학이 늘 진솔했던 것만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황우석 사건이나 일본의 만능세포 조작 사건과 맞먹는 가짜와 표절, 속임수가 횡행했다. 1903년 프랑스의 르네 블롱로라는 물리학자가 새로운 광선 'N선'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물리학계는 흥분했다. N선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실험 보고가 뒤따랐고, 300편의 관련 논문이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짜였다.
 
1981년 일본 역사학계가 발칵 뒤집혔다. 후지무라 신이치라는 고고학자가 4만 년 전의 석기를 발굴한 것이다. 그가 발굴하는 곳에는 항상 유물이 나와 '신의 손'으로 불릴 정도였다. 일본의 역사가 5만~7만 년 전, 심지어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그야말로 역사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2000년 유적 발굴지에서 구석기 유물을 파묻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모든 게 가짜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학기술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이 사건은 지금도 학계의 대표적인 가짜 사건으로 회자된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친다. 탄핵 정국 초기부터 고개를 들었던 가짜 뉴스는 헌재 판결 뒤에도 기승을 부린다. 가짜 과학과 달리 가짜 뉴스의 문제는 그것을 걸러낼 수 있는 시스템이 없고, 있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 생산자나 공급·유통자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하다. 그들의 일차적인 노림수는 간단하다. 가짜 뉴스를 믿게 하거나, 진짜 뉴스를 믿지 못하게 하거나.
 
가짜 뉴스의 더 큰 문제는 가짜 뉴스를 믿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끝내 소통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가짜 뉴스가 가짜로 판명 나도 그것을 믿었던 사람의 견해는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헌재 판결과 헌법, 민주주의 제도를 부정한다. '지속가능한' 갈등. 그것이 가짜 뉴스 생산자와 유통자가 진정으로 바라는 일인지도 모른다. 섬뜩한 일이다.
 
그 섬뜩한 광경을 우리는 지난 일요일 목격했다. 대통령 탄핵이 끝이 아니다. 헌법과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가짜'를 우리 사회에서 걷어내야 한다. 그래야 나라도 살고, 과학도 산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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