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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박 전 대통령 구속에서 자유로울 자 누구
2017-04-04 06:00:00 2017-04-04 06:00:00
3월의 마지막 날, 또 하나의 부끄러운 역사가 대한민국 정치사를 수놓았다.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파면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다시 13일 만에 구속되는 치욕을 안았다. 짧은 대한민국 현대사 속에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 국민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를 놓고 ‘친박(박근혜)’은 파면당한 대통령에게 수갑을 채우는 것은 부관참시라고 비유했고 “여인에게 꼭 사약을 내려야 하는가”라며 항변했다. 청와대는 박 전 대통령에게 수의를 꼭 입혀야 하냐고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우리 국민 대부분은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사필귀정으로 보고 있다.
 
분명 이 비극은 박 전 대통령 스스로가 자초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우리 국민과 언론은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혹자는 이번 촛불혁명이 프랑스혁명을 뛰어넘는 민주시민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자화자찬한다. 그러나 과연 그러할까? 조금만 더 냉철히 반성해 보자. 우리가 지난 역사를 제대로 정리했다면 촛불혁명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국민이 감내한 커다란 희생은 불필요했다.
 
비극의 역사 굽이굽이에 우리 국민은 냉철하지 못한 채 감성에 치우치기 일쑤였고 언론은 역사를 왜곡하는데 언제나 앞장섰다. 이에 따라 우매한 역사는 무한 반복되었고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번만큼은 부디 과거와 달리 나쁜 역사를 쓴 장본인을 제대로 단죄해야 하건만 그렇게 될지는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요즘 한국 언론의 행태를 보면 과거와 한 치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구속된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가십성 보도에 주력하고, 또한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장면들을 부각시킨다. 구속 전 박 전 대통령이 세 번 눈물을 흘렸다느니, 이제 올림머리를 할 수 없다느니, 아침 메뉴는 어떻다느니, 식사는 얼마짜리라는 등 시시콜콜 나열하기 바쁘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반성하고 변화해야 할 언론은 아직도 자신의 잘못을 모른다. 특히 종합편성채널은 변호사들을 불러 박 전 대통령이 머무는 구치소 내부구조를 일일이 설명하며 박 전 대통령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방을 크게 늘릴 것이라는 보도마저 하고 있다. 그런 프로그램에 나와 미주알고주알 떠드는 변호사들도, 이런 내용을 방송이라고 진행하는 사회자들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이제 박 전 대통령은 ‘수인번호 503번’을 단 미결수 신분이다. 언론은 이런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왜 하루 종일 보도하고 있는 것인가? 언론은 박 전 대통령이 감옥에 체험하러 들어간 견학생 정도로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식사 메뉴를 일일이 보여주고 하루 일과를 보도한다.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은 더 이상 특권이 없다. 그런데 왜 언론은 아직도 그녀의 특권을 인정하는 듯한 보도들만 일삼는 것인가.
 
어디 이래서 우리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할 수 있겠는가? 범죄를 저지르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치소에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을 우리 언론은 왜 이다지 관심을 쏟고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민주 국가에서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모든 죄인은 감옥에서 평등하다. 그러나 왜 박 전 대통령은 특별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것처럼 보도하는 것인가. 박 전 대통령은 다른 범죄자들보다 어쩜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국정농단의 주역이 아니던가.
 
프랑스는 우리와 달리 전·현직 대통령이 불명예스러운 구속을 당한 적이 없다. 정치인도 구속된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굳이 찾자면 자크 시라크 대통령 시절 수상을 지낸 알랭 쥐페가 형을 선고받아 떠들썩한 적이 있다. 쥐페는 공화국 연합당(RPR) 사무총장 시절 저지른 배임과 공금유용, 그리고 위법적 이익수수로 1999년 기소되었고, 2004년 1월30일 징역 1년6개월에 10년 간 피선거권 박탈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항소했고 고등법원에서 최종 집행유예 1년2개월을 언도받았으며 1년간 피선거권도 박탈당했다. 쥐페는 “자기의 책임을 감당한다”며 법원의 판결을 받아들였고, 결국 지롱드 국회의원과 보르도 시장 자격을 박탈당했다. 이후 쥐페는 8개월 간 참회의 시간을 가졌으며 나머지 기간은 퀘벡으로 떠나 국립행정학교에서 ‘국가와 세계화’라는 강의를 함으로써 집행유예를 면제 받았다. 이러한 쥐페에 대해 프랑스 언론도 한국 언론처럼 일거수일투족을 가십거리로 삼고 보도했을까? 프랑스 언론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작년, 쥐페가 차기 대선 유력 주자로 물망에 올랐을 때 그에 대한 책이 출간되기는 했다. 여기자 갸엘 차칼로프(Gaël Tchakaloff)는 베일에 싸인 쥐페의 참모습을 찾아내기 위해 그의 곁에서 일 년 반 동안 밀착생활하면서 쥐페의 측근들과 가족들을 일일이 인터뷰하고 증언들을 모아 ‘토끼들과 불가사의(Lapins et Merveilles)’라는 책을 지난해 4월 펴냈다. 차칼로프는 정치부 기자가 아닌 초상화가 입장에서 쥐페의 마음, 영혼, 생각, 원동력, 걱정 등을 악착같이 찾아내고 세밀히 묘사했다.
 
박 전 대통령의 뒷담화로 날 새는 줄 모르는 한국의 일부 기자들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새로운 역사를 쓰기 위해서는 첫째 언론이 바뀌어야 한다. 방송으로 가치가 없는 사실을 계속해서 보도한다면 우리의 역사는 바뀔 수 없다. 이런 언론을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의 감시와 질타가 필수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을 그녀의 일이 아닌 우리의 일로 통감할 때, 촛불혁명은 민주시민의 위대한 업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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