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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공수처, 더 미루면 또 무산 위기
2018-09-07 06:00:00 2018-09-07 06:00:00
이강윤 칼럼니스트
여야 모두 새 대표가 선출되면서 진용개편이 마무리되고, 정기국회가 시작됐다. 필자는 이번 국회에서 다음 세 가지가 꼭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신설, 개헌, 선거법개정을 필두로 하는 정치개혁이다. 이 중 공수처는 나머지 둘에 비해 정치권 이해관계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개헌이나 정치개혁은 정파별로 계산 속에 빠져 협상 자체에 긴 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공수처는 국민여론을 반영하는 의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공수처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이미 상당 수준 형성돼있다. 적폐청산 차원에서 검찰개혁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늘 앞 자리에 거론됐지만, 아직 실행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무소불위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다. 그 논의의 핵심에 공수처가 있다. 공수처 신설 없는 검찰개혁은 반 쪽 짜리다. 왜? 검찰의 정치적 독립과 기소권 독점에 대한 제도적 해법이기 때문이다. 연내로 공수처 신설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지난 ‘98년 참여연대의 첫 제기 이후 20년에 걸친 공수처 논의과정을 미뤄보건대, 그리고 21대 총선국면으로 돌입할 내년 정치상황을 상정컨대, 유야무야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공수처 신설의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다.
 
그동안 특검이 십여 차례 활동했으나 한계가 분명했다. 대선자금을 파헤친 안대희특검과, 박근혜국정농단을 맡은 박영수특검 정도를 빼고는 대부분 용두사미였고, 늘 특검무용론이 제기됐다. 최근의 ‘드루킹특검’ 역시 기존 특검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 출발부터 정치적 공방이 깔려있기에 특검은 정치적 중립논란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갖고 시작되는데다, 논의부터 활동개시까지 최소 두 달은 걸리는 까닭에 사건 관련자들의 증거인멸이나 말맞추기를 피할 수 없었다. 공수처는 수사대상 범위가 명확한데다, 법으로 정치적 독립을 못박고 있기에 특검의 한계를 제도적으로 뛰어넘는다. 공수처를 놓고 공룡 규모니, ‘상왕 검찰’이니 하는 말은 기존 사법기관 기득권세력의 저항이자 흠집내기에 불과하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참여연대’가 펴낸 <입에 풀칠도 못 하게 하는 이들에게 고함>이라는 책에서, “한국 검찰은 ‘준 정당’처럼 작동한다. 검찰은 자신들의 권력을 제한하려는 정치권력과는 싸우고 유리할 것 같으면 협조한다”고 지적했다. 검찰개혁 당위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진단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렇게 서술한다. “정치적 독립과 정치적 중립은 다른 문제였다. 검찰 자체가 정치적으로 편향돼있으면 정치적 독립을 보장해줘도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다. 제도를 개혁하지 않고 검찰중립을 보장하려 한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공수처장 임기와 조직규모를 법으로 정하고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을 임명한다면 관련 범죄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중립성공방과 국민적 의혹을 구조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점이 공수처의 최대 의의이자 확실한 필요성이다. 현재 검찰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의혹을 수사중이지만, 검찰의 영장청구는 번번이 기각되고 있다. 법원이 명분없는 자존심을 내세워 검찰이라는 ‘기관’에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공수처는 이런 점에서 검찰보다 유리하고 효율적일 것이다.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찰미투사건, 강원랜드사건 등에서 검찰 상층부가 의혹을 받았을 때 특별수사팀을 만들어 독립적 수사를 장담했지만, 조직 내 불편한 분위기와 구성원 간 불화 등으로 힘들어했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수사결과에 대해 축소-왜곡이라는 국민적 불신을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하략)”이라고 적었다. 현실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다.
 
공수처 입법과정은 오래 걸릴 문제가 결코 아니다. 이미 여러 의원입법안이 국회에 계류중이고, 법무검찰개혁위와 법무부도 안을 제출해놨다. 이를 토대로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은 시간 문제다. 문제는 국회다. 작년 12월 출범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를 무력화시킨 자유한국당은 촛불의 시대적 요구라는 위중함을 깊게 되새기고 자신들의 집권시기 과오를 바로잡는 첫 걸음으로 공수처 신설에 임해야 할 것이다. 한국당이 회생 기회로 벼르고 있는 총선은 불과 20여 개월 앞이다. 시민들은 촛불 이후 한국당의 일거수일투족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다. 심판의 날은 멀지 않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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