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선 본인이 가장 제일 두려웠을 것이다. 연기에 대한 것도, 상대역에 대한 부담도, 스토리에 대한 무게감도, 캐릭터 분석에 대한 압박감도 아니었다. 그 두려움은 정말 의외였다. 필모그래피에서 영화 출연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이 정도로 극 자체를 끌고 가던 배역은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배우로서 굉장히 단순한 논리였다. 그런데 바꿔 말하면 그건 제일 두려운 지점이 될 수도 있었다. TV를 주 활동 무대로 삼아왔던 자신의 배경이 그 두려움의 이유였다. 자칫 자신의 모습이 커다란 스크린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어떨까. 또 그 두려움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목격했을 때의 두려움이 공포감이 되진 않을까 싶었다. 이 모든 걸 배우 서현진이 고민했다고 하니 정말 의외이긴 했다. 또래 배우 가운데 서현진 정도의 깊이감을 드러내는 연기자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서현진이 이 정도 고민을 했다면 영화 ‘카시오페아’ 속 본인이 연기한 초로기 치매환자 ‘수진’의 캐릭터 깊이감도, 상대역이 국민 배우 안성기란 점도, 부녀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의 깊이를 전하는 스토리도 문제가 되진 않았단 얘기다. 솔직히 그건 본인이 노력하고 본인이 극복해야 할 지점인 것이다. 다만 서현진이란 배우가 스크린을 통해 봤을 때 ‘어울리지 않는 배우’라고 판단된다면 그건 본인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게 두려웠다.
배우 서현진. 사진=트리플픽쳐스
‘카시오페아’가 언론 시사회를 통해 처음 공개된 뒤 가장 놀라웠던 점은 극중 배역과 캐릭터들이다. 우선 포스터에는 서현진과 극중 아버지로 등장하는 안성기가 있다. ‘잊어도 괜찮아, 내일 또 얘기해 줄께’란 카피. 그런데 두 사람의 표정이 묘했다. 보통 이런 설정에선 나이가 더 많은 아버지가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포스터 속 표정은 딸 서현진이 충혈된 눈으로 슬픔을 억누르고 있고, 아버지 안성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딸을 바라봤다.
“생각 못했었죠. ‘내가 치매 환자역이구나’라고 알게 된 뒤 더 다르게 얘기가 보였어요. 사실 알츠하이머가 낯설지는 않아요. 외할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으셨어서 행동 패턴이나 말투 시선 처리 등이 기억에 남아 있었어요. 거리두기가 엄격할 때라 요양원이나 실제 환자 분들을 만나보진 못했고 제작사와 감독님이 보내 주신 영상과 제 경험 그리고 기억을 많이 참고해서 캐릭터를 만들었죠.”
경험과 기억 그리고 영상을 통해 공부를 하고 인물을 만들어갔다. 하지만 당연히 걱정이 됐었다. 가장 큰 걱정은 배역이 가짜처럼 보이지 않을까였다. 일반적인 배역은 다른 인물을 만들어서 그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배역은 실제 존재하는 질병을 표현해야 했다. 무엇보다 극중에서 서현진이 연기한 ‘수진’은 점차 병세가 진행되는 과정까지 세밀하게 등장한다. 미세한 차이가 드러내야 했다.
배우 서현진. 사진=트리플픽쳐스
“진짜 제일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 제 연기가 ‘가짜처럼 보일까’ 였어요. 다른 연기가 아니라 진짜 질병의 진행 상황을 고스란히 담아내야 하잖아요. 미세한 차이조차 드러날 경우 전체의 흐름이 무너지는 현상이 벌어질 것 같았어요. 세밀한 감정 변화나 목소리까지도 감독님과 일일이 상의를 하면서 변화를 주고 거기에 맞춰서 연기를 했어요.
이런 이유들도 있었지만 그는 ‘카시오페아’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고민을 최대한 덜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극중 상대역인 안성기를 꼽았다. 서현진의 실제 표현을 빌리자면 ‘완전 꿀 같은 캐스팅 제안’이었단다. 자신의 연기 인생 가운데 ‘안성기’란 대선배와 언제 한 번 이렇게 같이 연기를 주고 받으며 호흡할 기회가 있을까 싶었단다. 이번 아니면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 같아 고민의 시간을 최대한 줄일 수 있었다고.
“‘상대역이 안성기 선생님?’ 이건 완전 꿀이죠(웃음). 제가 언제 선생님과 함께 연기를 해보겠어요.선생님과는 당연히 처음이었고, 제가 감히 마주하기도 힘든 대선배님이라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에요. 저희 아버지하고도 몇 살 차이 안 나세요(웃음). 정말 아버지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서 제가 먼저 살갑게 다가섰고 선생님도 많이 편하게 해주셨어요. 농담도 되게 잘하세요. 하하하.”
배우 서현진. 사진=트리플픽쳐스
안성기와의 호흡에서 서현진은 묘한 경험도 해봤단다. 연기자로 데뷔 이후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며 이유를 여전히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함께 연기했던 안성기가 ‘연기자이자 자신의 상대역’인지 아니면 극중 배역처럼 자신의 실제 아버지인지 본인도 잠시 착각을 했었다고.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됐다. 서현진의 당시 상황은 이랬단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극중에서 제가 치매가 많이 진행된 뒤 차를 타고 가면서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장면을 찍는 데, 사실 그 장면 촬영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내가 아기 목소리로 해야 하나? 그냥 멀쩡한 목소리를 할까? 분간이 잘 안됐는데. 아무튼 촬영 전까지 고민을 진짜 많이 했는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제 눈앞에 선생님이 갑자기 ‘누구지? 난 수진이고 우리 아빠 인우인가?’란 생각에 진짜 잠시 혼란스러웠어요. 그 순간 제가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저한테서 나오더라고요. 정말 신기했던 경험이었어요.”
‘카시오페아’는 촬영 전 그리고 촬영 중 나아가 개봉 이후에도 서현진에게 꽤 많은 스트레스를 줄 것 같은 작품이란다. 우선 개봉을 하고 극장 상영이 끝난 뒤 반응을 종합해 자신의 이미지가 영화가 맞을지에 대한 고민과 평가가 정말 중요하게 다가올 듯하단다. 사실 그게 제일 지금도 걱정이라고. 스크린을 통해 보여지는 배우 서현진의 연기가 TV 드라마에서만 어울린단 평가를 받을지 걱정이라고.
배우 서현진. 사진=트리플픽쳐스
“제가 TV드라마에 노출이 정말 많았던 배우잖아요. 그래서 이 작품 자체가 저한테는 너무 큰 도전이에요. 만약 관객 분들이 평가하시기에 ‘서현진은 스크린에 적합하지 않은 배우’라고 판단하실 수도 있으니. 시사회에서 본 제 연기는 지금도 만족이 안되죠. 물론 그때로 돌아가도 지금 결과보다 잘할 수 있을까 싶긴 해요. 전 최선을 다해서 뽑아냈는데 그 평가가 어떨지 너무 떨려요. 제일 떨려요.”
우연찮게 서현진은 비슷한 시기에 영화 ‘카시오페아’ 그리고 SBS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를 동시에 선보이게 됐다. 워낙 감정적으로 어둡고 깊은 장르 얘기를 담은 ‘카시오페아’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조금은 가벼운 TV드라마에 집중하게 됐다. 본인이야 하던 일이라 ‘잘 하기만 하면’ 되지만,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겐 조금 죄송한 마음이란다.
배우 서현진. 사진=트리플픽쳐스
“‘카시오페아’ 촬영 끝나고 3일 뒤에 ‘왜 오수재인가’ 대본 리딩에 들어갔어요(웃음). 진짜 ‘카시오페아’ 감정에서 정말 억지로 빠져 나와야 했어요. 너무 감정적으로 딥(deep)한 얘기였는데 반대로 그보다는 조금 가벼운 얘기를 해야 하니 쉽진 않았죠. 공개 시기가 이렇게 겹칠 줄도 몰랐어요. 이게 득이 될지 독이 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여전히 관객 분들과 시청자들 분들의 평가가 제일 기대되고 또 무서워요.”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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