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출판사가 아닌 개인 저자가 스스로 펴내는 주문형 출판 방식이 각광을 받고 있다. 기존의 최소 수백 부 이상 대량 인쇄에서 주로 쓰이는 오프셋 인쇄 제작과 달리 원하는 부수를 소량으로 빠르게 제작할 수 있어서 경제적이기 때문이다. 재고 보관의 필요성이 없고 절판에 따른 판매 기회 상실의 위험도 낮다.
이를테면 교보문고의 피오디(POD : Print On Demand, Publishing On Demand) 서비스 ‘퍼플’의 올해 상반기 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신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퍼플은 ‘작가의 꿈을 키우는 세상’을 표방한다. 사업을 처음 시작한 10년 전보다 매출 규모가 9배 정도 성장했으며, 지금까지 2만 4187종의 책을 이 서비스로 제작해 공급했다(<매일경제> 2022.7.20. “출판사 없어도 나 혼자 책 낸다” 참조). 올해 상반기에만 327명의 개인 저자가 710종을 발행했다고 하니 상당한 수요를 짐작할 수 있다. 교보문고 ‘퍼플’의 장점은 단지 제작만 대행해 주는 것이 아니라 ISBN 발급,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판매 대행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출판사와 온라인서점 기능까지 대신해주는 것이 경쟁력으로 꼽힌다. 이 분야의 원조 격인 미국 아마존닷컴의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KDP)과 가장 유사한 국내 사업 모델이다. 교보문고 외에도 개인출판을 피오디 방식으로 대행하는 곳은 여럿이다.
이와 같이 개인출판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자비출판 형태로 독립출판물을 펴내는 활동이다. 기존에 출판사들이 펴내던 책에 비해서는 콘텐츠의 완성도나 편집 품질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지만, 종종 기존 출판사의 상업출판물을 능가하는 대중적인 히트작들이 나오면서 ‘마이너리그’라는 인식도 차츰 희미해지고 있다. 새로운 저자와 출판시장의 출현이다.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인 ‘텀블벅’을 통해 작품을 세상에 알린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달러구트 꿈 백화점』(원작은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의 성공 사례가 대표적이다. 바야흐로 만인 저자의 시대다. 이를 뒷받침하는 편리한 디지털 기술과 크라우드 펀딩, 아웃소싱의 발달이 개인출판의 성장세에 박차를 가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광주광역시에 본거지를 둔 독립출판물 전문 플랫폼 ‘인디펍’은 현재 독립출판 제작자 707명의 독립출판물 1272종을 취급하며, 독립서점 449곳과 거래한다. 국내 전체 서점 수의 삼분의 일 정도와 거래하는 셈인데, 이러한 비약적인 성장세는 다른 나라에서 찾기 어렵다. 인디펍은 독립출판물 입고에 어려움을 겪는 독립서점 운영자들이 보다 손쉽게 독립출판물을 공급받고 개별적인 정산 업무 없이 서점을 운영하도록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을 소량으로 입고할 수 있고, 5부 이상 주문 시 샘플 도서를 제공한다. 공급률과 적립금을 포함해 정가 대비 40%의 판매 수익 제공, 반품 업무 일원화, 온라인서점(알라딘) 및 도서관 판매를 위한 ISBN 부여도 강점이다. 이 플랫폼의 커뮤니티 카페에는 3646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개인출판 또는 독립출판물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출판물의 생산-유통-판매 및 출판산업 정책에도 진화가 요구되고 있다. 생산 측면에서는 기존 출판사들이 신인 작가를 적극 발굴하고 개인출판을 지원하는 영역으로 활동 반경을 넓힐 필요가 커졌다. 다양한 개인출판 플랫폼이나 크라우드 펀딩 단계에서 인기가 높은 콘텐츠를 발굴하는 것만이 아니라, 보다 선제적으로 출판사의 특성을 반영해 개인출판의 콘텐츠 저수지를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다. 독립출판물 발행 정보를 관리하는 공공 데이터베이스도 필요하다. ISBN을 부여하지 않는 독립출판물이 적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고, 독립출판물 발행 정보를 기반으로 홍보·마케팅과의 연동을 고려한 정보관리 시스템이 구축되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이외에도 독립출판물 발간 지원 제도, 우수 독립출판물 선정 제도, 독립출판물 취급 서점 마크의 제정·활용, 독립출판물의 유력 출판사 출간을 지원하는 저작권 페어 개최도 추진할 만하다. 개인출판이 출판 자체에만 의미를 두던 단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판시장과 출판문화로 성장하도록 촉매제가 필요하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출판평론가(bookclub2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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