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바로 문턱 앞까지 갔던 1994년의 위기를 비롯하여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영변 폭격론이 불거진 2002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이 벌어진 2010년, 개성공단이 폐쇄되던 2016년은 한반도에 전운이 감돌던 때였다. 이런 위기 때마다 세계는 한반도 전쟁을 걱정했을지 몰라도 한국의 주가는 폭락한 적이 없다. 비가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기초가 튼튼한 한국 경제는 위기를 잘 버텨냈을 뿐만 아니라 그 뒤에 더 단단해졌다. 2024년 1월에 조성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그 이전의 전쟁 위기에 비해서는 한참 강도가 낮다. 이상하게도 북한이 백령도와 연평도 근처에 포를 쏘던 1월 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의 주가가 7.6%나 폭락했다. 기업의 실적 부진과 중국 경제 침체가 그 원인으로 거론되기는 했지만 미국과 일본의 주식이 역대급 호황이고 대만과 인도와 같은 나라도 괜찮은 편인데 유독 한국만 추락했다는 거다. 그제야 시장은 남북관계 경색으로 인한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가 경제에 민감하고도 치명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분명 지금의 군사적 긴장은 과거 전쟁 위기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읽혀진다.
먼저 전쟁 위기는 주로 미국의 전문가들이 경고하고 있다. 1월 11일에 로버트 갈루치 전 국무부차관보가, 16일에는 가장 한반도 문제에 정통한 로버트 칼린과 지그먼트 해커 박사가 한반도 전쟁 위기를 거론하고 나섰다. 그 시기에 외국인들은 대량으로 주식을 매도하고 한국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26일에도 뉴욕타임즈가 북한이 “향후 몇 달 내 치명적 군사행동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매체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이 전쟁하기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세계가 이처럼 민감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미국의 전쟁 예방과 위기관리 능력이 현저히 약화되었다. 과거 위기에서는 아무리 긴장이 고조되어도 미국이 해결사로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아프가니스탄과 우크라이나에 이어 중동과 서아프리카에서 벌어지는 분쟁에서 미국의 영향력은 예전에 비해 약해 보인다. 둘째, 중국과 러시아가 더 이상 한국 편이 아니다. 과거 전쟁 위기는 호전적인 북한의 일시적인 일탈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뒷배로 버티고 있다. 구조적으로 더 불리해진 한국은 상황을 주도할 레버리지가 없다. 셋째, 남과 북의 지도자가 모두 호전적이다. 서로 상대방을 향해 주적이라며 건드리면 폭발할 것 같은 두 정권은 절대 전쟁을 마다하지 않을 것 같다.
세계가 전쟁으로 이미 몸살을 앓고 있는 시기에 한반도에서 조성되는 긴장은 과거와 달리 매우 민감하며 치명적인 비극의 예감으로 다가온다. 외톨이가 된 한국은 G20 국가 중에 주식 상승률 꼴찌에다가 중국과의 무역이 중국 경제 침체로 인한 영향보다 더 크게 감소했다. 이런 한국에 매력을 잃은 외국 투자자들이 떠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문제는 이런 지정학적 위기를 정부가 진정시키는 커녕 더 확대시켜 왔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의 탈중국 성향은 올해 하반기에 중국에 의존하는 제조업의 원자재 대란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형국이다. 이런 처지에 어쩌자고 미국과 일본보다 더 강경하게 중국을 대하다가 대중국 외교관계가 거의 단절되는 지경에 이르렀는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한반도 지정학은 지난 30년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심각한 위기라는 걸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20대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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