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한 윤희숙 국민의힘 의원의 연설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윤 의원은 “임대차법의 계약갱신청구권과 임대료 상한규정을 보고 마음을 놓았을까. 그렇지 않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여권에서는 윤 의원이 다주택자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마치 없는 살림에 평생 임차인의 호소처럼 이미지를 가공하는 건 좀 그렇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어찌 됐든 2년마다 쫓겨날 걱정, 전세·월세금 대폭 올릴 걱정은 덜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집을 소유해본 적이 없는 필자는 2016년 쯤 살고 싶은 곳을 알아본 적이 있다. 그때 시세가 8~9억 원 이어서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여 엄두도 못 내고 시간이 지나갔다. 얼마 전 살펴본 그 아파트의 매매가는 17~18억 원에 육박했다. 4년 사이에 가격은 두 배가 오른 셈이다. 그 때 당시에도 매수할 수 없는 형편이었지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을 받다)을 해서라도 샀어야 했나 하고 후회를 한다.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세입자의 마음은 집값이 더 올라 (현재도 그렇지만) 영영 집을 살 수 없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과 두려움이다. 그리고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이제 전셋값 시장 불안까지 겹쳤다.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은 "상당수의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그대로 계약을 연장해 사는 분들의 숫자가 늘어나 자연스럽게 공급량이 줄었다"고 말했다. 김 장관은 법 시행 전에 57.2%였던 전월세계약 갱신율이 10월에는 66.2%까지 높아졌다는 것을 근거로 들면서 “10명 중 7명은 전셋값 부담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70%의 사람들이 ‘부담 없이 살던 집에 계속 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곧 전세 시장은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찌 됐든 2년마다 쫓겨날 걱정, 전세·월세금 대폭 올릴 걱정은 덜은 것”이라는 앞에서 한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과연 세입자는 쫓겨날 걱정과 전·월세금이 대폭 올라갈 걱정에서 벗어난 것일까? 정부 관계자가 생각하는 세입자는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가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세입자가 그들이 이해하는 것과 같을까? 그리고 과연 그들은 (우리는) 살던 집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필자는 매우 회의적이다.
신혼부부가 17평에 살다가 쌍둥이를 출산해 더 큰집으로 옮기고자 하는 경우, 아이들이 성장함에 따라 더 넓은 평형으로 이사하고자 하는 경우를 상상해 보자. 낡은 아파트에 살면서 불편해 신축 아파트로 이사하고자 하는 경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으로 좋은 학군으로 이사하고자 하는 경우 등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이사하고자 하는 바람이 꺾여버렸다. 매물은 사라지고, 가격은 급등했다.
세입자들은 불안한 전세 시장에서 일단 살던 집에 머무르게 됐다. 그러나 그들은 급격히 오르는 전셋값을 보며 2년 후가 걱정되고 두려워진다. 전셋값은 너무 급격하게 오르고 있다. 서울 전셋값만 봐도 74주 연속 상승했다. ‘2년 후에는 오른 전셋값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물량은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는 걱정을 할 수밖에 없다. 계약갱신 시기에 세입자가 감당해야 할 비용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일까? 이미 내가 사는 곳과 인접한 집의 갱신 비용은 감당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이제 더 나은 곳이 아니라 오히려 2년 뒤에 지금 정도의 주거를 유지하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고 힘들게 모아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우리는 2년 동안 돈을 벌어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하든지 혹은 올라간 금액을 부담하면서 같은 집에 머무른다. 그런데 지금의 가격 오름세는 2년 뒤에 현재에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이사해야 할 확률이 높아져 버렸다.
옛날에는 대중교통에 관한 기사가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기자들이 전부 자가용이 있어서 대중교통 기사가 줄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세입자 이야기를 쓰면서 오래전 들은 그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 것은 부동산도 마찬가지 아닌가 싶어서이다. 정책을 담당하는 이들과 국회의원들이 세입자의 마음과 상황을 알까? 혹시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우리를 위한 게 아니라 그들을 위한 게 아니었을까? 그것이 면피용이었든, 예전부터 그들의 머릿속에 있었던 것이었든, 그 무엇이었든 간에. 결과는 오롯이 세입자가 지는데 말이다.
김한규 법무법인 '공감' 변호사·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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