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낯익은 구도의 작품이 눈에 띕니다. 그런데 인물들의 모습이 어딘지 이상합니다. 벌거벗은 채 한결같이 실없이 웃고 있습니다. 두 눈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 고야의 '1808년 5월3일의 학살'을 재해석한 '처형'. 1995년 그려진 이 작품은 자본주의와 충돌하는 중국 사회주의의 몰개성성, 획일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두눈을 질끈 감고.입을 활짝 벌리며 웃지만, 이것은 작가의 자조적 웃음이자 절망적인 사회에 대한 허무와 풍자, 역설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웃음.' 오늘날 코로나로 웃음기가 사라진 시대에 묘한 울림을 줍니다.
지난 연말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유에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대표작부터 최신작까지 그의 그림 30여점을 통해 작품 세계를 한 눈에 조망해볼 수 있습니다.
"(NOMA 엑스큐브인터내셔널컴퍼니 아트디렉터 겸 미술작가)유에민쥔은 중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중국 현대미술 가운데서도 차이나 아방가르드라는 전위적 그룹의 리더이고, 중국 현대미술 4대천왕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현대미술과 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아니키즘과 아방가르드 정신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와 개인의 성찰과 비판은 문화의 가장 큰 핵심적인 요소이고 유에민쥔 작가는 냉소와 죽음이라는 두 가지 주제를 가지고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과 살아있는 시대 정신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에민쥔은 1990년대 이후 두각을 드러낸 중국 현대미술의 대표 작가입니다. 허연 이를 드러낸 채 실없이 웃는 얼굴 캐릭터를 내세워, 중국 개혁·개방 뒤 중국인들의 혼돈과 고뇌를 대변한 작품들로 유명합니다. 국내외를 통틀어 최대 규모인 이번 전시에는 작가가 20여년 간의 결과물들을 선보입니다. 웃는 얼굴 이미지들이 자화상, 군상그림, 미술사의 명화 패러디, 청동조각상 등으로 변주된 양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NOMA 엑스큐브인터내셔널컴퍼니 아트디렉터 겸 미술작가)이번 전시의 큰 섹션 구성은 총 5개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 중 핵심적인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첫째는 유에민쥔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끊임 없이 웃고 있는 얼굴이고 두번째는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 시리즈가 있습니다. 웃는 얼굴은 유에민쥔의 트레이드 마크이며 전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며, 해골 이미지는 후기를 대표합니다. 두 요소를 통해 인생에 대한 생노병사 희로애락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전시 중반부로 넘어서면 해골 작품들이 보입니다. '死의 찬미'라 이름 붙은 작품들입니다. 삶은 죽음을 전제로 하지만, 죽음으로부터 역산하면 지금 이 순간이 제일 빛나는 청춘이다. 작가는 죽음을 기억하며 늘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외칩니다. 이 작품에서는 캐릭터가 해골 문양의 눈을 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그림 전체에 걸쳐 유일하게 눈을 뜬 작품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 공개입니다.
전시는 개막 직후, 유명인들의 관람으로도 입소문이 났습니다. 지난해 12월 유에민쥔 작품 콜렉터로 알려진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도 방문한 바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웃음마저 통제된 오늘날, 웃음이 주는 묘한 역설 덕에 관람객들이 많이 찾고 있습니다.
"(NOMA 엑스큐브인터내셔널컴퍼니 아트디렉터 겸 미술작가)일단 코로나라는 팬데믹 상황이 오면서 많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고립됐다고 생각합니다. 조심해야 하는 부분도 생기고 갇혀지고, 그러다 보니 우울감도 생깁니다. 방역수칙 지키면서 관란하시다 보면 아마 작품에서 오는 작은 감정들이 있을 겁니다. 오늘날 고립상황을 통해 그런 미세한 감정들이 조금 더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문화적인 것들을 접해서 힘들고 우울한 감정을 해소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전시는 다음달 9일까지 계속됩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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