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회주택 산다)“우울증도 스토킹도 해결해주는 우리집…고향 집보다 편해요”
'자몽하우스' 이화점 입주자 김도윤씨
여성전용에 안전하고 쾌적...보증금 300만원ㆍ월 26만5천원
고향 부모님도 만족..."이곳이 이젠 진짜 내집 같아요"
2021-05-31 06:00:00 2021-05-31 09:00:28
[뉴스토마토 박용준 기자] “중국 교환학생 갔다가 돌아올 때 다른 데는 생각도 않고 여기로 다시 왔어요. 여기가 진짜 제 집같아요. 부산 집에 갔을 때에도 빨리 가고싶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을과집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쉐어하우스형 사회주택 자몽하우스 이화점에 2018년 2월부터 사는 김도윤(21·여)씨는 부산 출신이다.
 
대학 새내기 맏딸의 첫 독립생활을 앞두고 김씨나 김씨 부모님이나 걱정이 많았다. 자취생활하면 원룸을 떠올리지만, 원룸은 하나뿐인 맏딸의 안전문제도 걱정되고 무엇보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김씨 부모님은 여성전용이라 안전한 자몽하우스를 찾아 보증금 300만원, 임대료 26만5000원으로 저렴한 2인실을 김씨에게 제안했다.
 
김씨는 “2인실이 방값도 10만원이나 싸고 수납공간도 많은 건 좋은데 ‘룸메 언니’랑 생활패턴이 안 맞아 힘들더라고요. 처음엔 어색하기도 해서 잠자는 공간으로만 썼어요. 부산이 그리워 2~3주에 한 번은 내려갔어요”라고 말했다.  
 
마을과집이 운영하는 자몽하우스 이화점 입주자 김도윤씨가 쉐어하우스 생활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용준 기자
 
처음은 어려웠지만, 밝은 성격의 김씨가 쉐어하우스 생활에 적응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안 맞을 것만 갔던 룸메 언니랑은 시험기간에 함께 밤새 공부하고 배달 음식을 같이 시켜먹으며 친해졌다. 무엇보다 같은 층에 사는 언니들이랑 가까워지면서 쉐어하우스에 머무는 시간이 갈수록 길어졌다.
 
김씨는 “사람 만나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데 혼자 살면 독백이라도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여기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층에 10명이 사는데 지나가다 마주칠 때마다 10분씩 얘기하면서 사회성도 좋아졌어요. 예전에 술 마시는 거 좋아하는 언니들이랑은 맨날 같이 술 마시고 해장하고 심심하면 또 만나서 얘기하고 그랬어요. 여기 살면서 한 번도 외롭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라고 말했다.
 
다른 사회주택에서 커뮤니티 활동이 개개인의 독립생활 속에서 느슨한 관계를 맺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쉐어하우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마주치며 보다 끈끈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주로 20대 대학생·취업준비생들이 사는 이화점에선 자연스럽게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연애상담, 진로상담, 취업상담 등이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김씨는 “여성들끼리 모여살면서 서로 허물없이 어울리는 분위기에요. 샤워하고 대충 입고 나와도, 속옷을 공용공간에 널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아요. 남자친구 만나거나 헤어지면 다 같이 얘기하고, 한 번은 헤어져서 축하한다고 케이크를 사주는데 위로가 많이 되더라고요. 하소연하려고 굳이 누굴 찾지 않아도 얘기할 사람이 언제든지 있어요”고 말했다.
 
마을과집이 운영하는 자몽하우스 이화점 전경. 사진/박용준 기자
 
2019년 김씨가 스토킹을 당했을 때에도 언니들이 김씨를 지켜줬다. 언니들은 김씨에게 해코지당하면 바로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했고, 김씨가 피해내용을 얘기하면 함께 분노했다. 남성이 집 앞까지 찾아왔을 때에는 든든한 언니들이 지켜봐 준 덕분에 상황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재외국민인 룸메 언니는 힘든 타국생활에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우연히 알게 된 김씨는 수시로 룸메 언니와 대화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챙겨주려 노력했고, 한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던 룸메 언니도 점차 웃음을 되찾으며 모임도 나가고 연애도 하기 시작했다. 몇 달 전 집을 옮긴 룸메 언니는 김씨에게 “이제 괜찮아졌다. 여기가 편해 나중에 다시 오고 싶다”고 얘기했다.
 
현재 ‘층장’을 맡고 있는 김씨는 갈등을 줄이고 머물고 싶은 집을 만들기 위해 규율을 꽤나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기나 샤워 후 머리카락 정리 등은 필수다. 늦은 시간에 세탁기를 사용하면 5000원, 음식물쓰레기를 안 치우면 5000원 벌금도 매긴다. 걷힌 벌금은 커뮤니티비용에 더해 함께 치킨을 시켜 먹거나 무선청소기 등 필요물품을 구매한다.
 
김씨는 “저는 혼자 사는 게 아니라 같이 산다고 생각해요. ‘주인아주머니 없는 하숙집’이라고 주변에 얘기해요. 자취하면 외롭다고 하는데 여기는 사람이 있죠. 지금 4학년 졸업반인데 멀지 않으면 취업 후에도 여기서 살 생각이에요. 출퇴근이 멀면 다른 자몽하우스라도 가려고요”라고 말했다.
 
마을과집이 운영하는 자몽하우스 이화점 거주공간 모습. 사진/마을과집협동조합
 
박용준 기자 yjunsa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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