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범죄와 중대사고·재해 막을 새로운 패러다임
2021-06-22 06:00:00 2021-06-22 06:00:00
인간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는 온갖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고 앗아가는 중대사고와 재난도 끊이질 않는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만 보더라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나라를 지켜야 할 군대 내에서 성범죄가 일어난다. 가해자의 동료와 상관들은 이를 숨기기 바쁘고 피해자를 보호하기는커녕 외려 압박한다. 이를 견디다 못해 피해 여군이 극단적 선택을 한 뒤에도 이들은 반성할 줄 모른다. 도시 재개발 사업에는 온갖 비리가 횡행한다. 급기야 마구잡이 건물 철거로 건물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진다. 하필이면 그때 그 앞을 지나가던 버스가 건물 더미에 깔린다. 버스 안 승객은 영문도 모른 채 숨져간다. 황망하기 짝이 없다. 일터는 어떤가. 땀을 흘리며 노동의 보람을 맛보는 곳이 더는 아니다. 그곳은 매일 피를 흘리는 죽음의 현장이다. 병원은 생명을 구하는 곳이 아니라 무자격자가 수술하는 범죄의 장소다. 불법 의료로 생명을 잃는 일이 벌어져도 이를 증명하기 쉽지 않아 처벌조차 어렵고 재범은 불 보듯 뻔하다. 이런 병원의 아수라를 막기 위해 수술실에 폐쇄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드높다. 하지만 의사단체는 결사반대를 외친다. 의료사고 유가족들이 한을 품고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겻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치유하기 힘든 이런 일을 겪은 유가족은 물론이고 시민사회단체와 노동단체 등은 강력 범죄와 중대사고·재난이 터질 때마다 관련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요구에 따라 내년부터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지난 1월 국회에서 만들어졌다. 이 법은 노동자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 재해가 발생할 경우 대표이사 등 경영 책임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하여 사망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부상자나 질병자가 발생한 중대재해의 경우에도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 법은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노동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제정됐고 그 방법으로 경영 책임자까지 더 강력하게 형사처벌하는 것을 택했다.
 
범죄와 중대사고·재해로 희생을 당한 이들의 유가족들이 가해자와 관련자를 강력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하지만 해당 범죄와 중대사고·재해 관련자를 강력 처벌한다고 해서 과연 유사 범죄와 사고·재해가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만족할 만큼 사라지거나 줄어들 수 있을까. 강력한 처벌이 물론 예방에 보탬은 될 것이다. 강력한 처벌은 열이 펄펄 날 때 잘 듣는 해열제에 지나지 않는다. 고열이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원천적으로 없애기에는 역부족인 대책이다. 대증요법으로 세계적 산재공화국으로 불리는 우리 사회의 고질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병원에서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더라도 곧바로 다시 의사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사회다. 수억 내지 수십억 원의 뇌물을 받은 정치인이 형기를 마치고 나와 사면복권 된 뒤 다시 정치에 뛰어들고 대권에 도전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노동자와 국민의 생명보다는 오롯이 돈을 왕창 벌기 위해 불법 하도급을 주고 그 때문에 많은 인명 피해를 낸 기업인이 있더라도 그는 얼마간의 옥고를 치른 뒤 다시 쉽게 같은 업종에서 또 돈을 번다. 수백억 내지 수천억 원에 이르는 탈세를 하거나 배임죄를 저지른 재벌 총수도 솜 방방이 처벌을 받고 기업 살리기를 명분으로 사면 받아 박수 받으며 경영에 복귀한다.
 
이 때문에 사고나 재해와 관련해 강력한 형사처벌이 능사는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사고·재난 때 판단 잘못으로 구조구난에 실패한 해양경찰과 소방대원 등 현장 요원과 현장 책임자들에게까지 강력한 형사처벌을 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많다는 지적을 하는 전문가들도 많다. 열정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구조·안전 부서에 가거나 그런 조직에 들어가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범죄와 중대사고·재난을 원천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강력한 형사처벌보다 외려 이들이 영구적으로 관련 업종에서 일하거나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필요하고 중요하다. 예를 들어 면허를 대여하거나 무자격 수술을 하도록 용인한 의사, 알면서도 법을 고의적이며 상습적으로 지키지 않거나 불법하도급으로 인명피해를 낸 기업주 등에 대해서는 자격·면허를 영구박탈하고 해당 부문에서 발조차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이런 새로운 패러다임이 지금 필요하다.    
 
안종주 사회안전소통센터장·보건학 박사 jjahnpark@hanmail.net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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