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새나·조승진 기자] 지난 1991년 8월14일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 가운데 처음으로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했다. 이 증언이 도화선이 돼 위안부 문제를 국내외에 알리고 피해자 보호·지원 방안을 마련하는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성폭력을 공개적으로 폭로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성희롱', '성폭행' 등 성폭력 피해 개념이 막 등장하던 시기였다. 김학순 할머니도 공개석상에 나와 일본군의 만행을 알리고, 피해 생존자들이 하나둘 목소리를 내기까지 수십년이 걸렸다. 김 할머니는 긴 시간이 지나서야 폭로하게 된 이유로 우리 사회가 자신과 같은 피해자를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이라며 "그동안 분하고 답답해도 숨어서 눈물을 흘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은 지난 1991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가 국제사회에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를 고발한 날을 기억하기 위해 지정된 날이다. 사진/뉴시스
김 할머니의 첫 증언 이후 현재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14명밖에 남지 않았다. 지난 25년간 아시아 각국을 다니며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만나온 '겹겹 프로젝트'의 안세홍 대표는 "10여년 전 미국과 유럽에서 전시와 강연을 진행할 때만 해도 '한국은 왜 일본과 싸움만 하느냐', '일본을 왜 그렇게 싫어하느냐' 등 위안부 문제를 한일간의 싸움으로만 보는 분위가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사실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공론화와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중국도 일본군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반감이 크지만 피해자에 대한 대대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은 언급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역사를 인권 문제로 확대하는 길을 요원치 않은 실정이다. 위안부 만행을 저지른 장본인인 일본은 여전히 과거사를 부정하며 사죄할 의사가 없다. 안세홍 대표는 "일본 내 우익성향이 커지면서 위안부·전쟁 문제에 대한 일본 내 활동이 위축됐고, 정치인들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공격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인권과 평화로 소녀를 기억하다' 전시회에 평화의 소녀상들이 자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전국평화나비네트워크 김민주 대표도 "지난 정권에서 한일합의 이후 새 정부가 들어선 이후 김복동 할머니 만나면서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해결된 게 없다"고 지적했다. 이 단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 대학생 모임이다.
특히 우리나라 야당 인사들의 왜곡된 인식에 대해 지적했다. 김 대표는 "야당 대권주자인 윤석열 후보는 위안부 문제는 그랜드 바겐(일괄타결방안) 방식으로 접근한다고 발언했는데, 역사적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되는 이유도 위안부 피해 문제는 여성 인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민주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단순히 과거화된 역사적 문제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일본군의 만행은 전쟁으로 인한 폐해뿐만 아니라 여성 인권과 연관돼 있다"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문제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의 이하영 대표는 "김학순 할머니의 공개 증언은 한국 최초의 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며 "(할머니의 증언 이후)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보호와 지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도 여전히 많은 피해자들이 입을 열지 못한다. 아직 갈 길은 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안부 피해자들도 식민지와 전시상황이라는 특수성이 있었지만 여성에 대한 성착취라고 하는 공통의 피해와 이슈가 있다"며 "위안부 사건과 문제가 단순히 과거가 아니라 현재도 연결되고 이어지고 있는 문제"라고 밝혔다.
'그날의 기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그림. 사진/뉴시스
권새나·조승진 기자 inn137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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