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치료제 톺아보기)②혈장치료제, 아쉬움 안고 퇴장
GC녹십자, '지코비딕' 조건부 허가 좌초…개발 중단 선언
글로벌 코로나19 혈장치료제 얼라이언스 임상도 실패
해외 기업과 연계 '신종 감염병' 치료제 개발 단초 마련
2021-12-28 06:00:00 2021-12-28 06:00:00
GC녹십자 연구원이 코로나19 완치자 혈장을 활용한 혈장치료제 연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동지훈 기자] 코로나19 치료 수단 중 하나였던 혈장치료제가 국내외에서 진행된 다수의 임상시험 결과 개발이 중단되면서 진한 아쉬움을 남긴 채 퇴장했다. 다만, 국내 개발사와 해외 기업과의 연계가 있었던 만큼 향후 신종 감염병이 발생시 혈장치료제 개발에 나설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28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따르면 국내에선 17건의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이 진행되고 있다.
 
식약처가 홈페이지를 통해 제공하는 코로나19 치료제 임상 현황은 1차 평가변수 미충족 등의 이유로 개발이 중단된 사례가 제외됐다. GC녹십자(006280)가 개발했던 혈장치료제 '지코비딕(개발명 GC5131A)'이 대표적이다.
 
혈장치료제는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장을 추출해 다양한 항체가 포함된 면역 단백질을 분획해 만든 고면역글로불린 제제다. 치료제 원료가 되는 혈장만 다를 뿐 혈장 분획을 포함한 모든 과정은 다른 혈장치료제와 같다.
 
GC녹십자는 지난해 7월29일 식약처에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해 같은 해 8월 임상 2a상 승인을 받았다. 임상 대상자는 영상학적으로 폐렴이 확인됐거나 고령 및 기저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코로나19 환자 60명이었다. 첫 환자 투약은 지난해 9월19일 이뤄졌다. 이후 GC녹십자는 15개 기관에서 임상을 진행해 올 1월 모든 환자에 대한 투약을 마쳤다.
 
조건부 허가는 임상 2상 자료를 바탕으로 의약품 시판을 승인하는 제도다. 조거부 허가를 받으면 의약품 개발사는 시판 후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이 결과를 식약처에 제출해야 한다. 조건부 허가에 실패하면 임상 3상을 거친 뒤 정식 품목허가 절차를 밟거나 개발을 중단한다.
 
식약처는 조건부 허가 여부를 가리기 전에 코로나19 치료제·백신 안전성·효과성 검증 자문단(이하 검증 자문단),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최종점검위원회 자문을 거친다. 이 절차는 순차적으로 이뤄지며, 한 곳에서라도 통과가 안 되면 조건부 허가는 무산된다.
 
임상에는 총 63명이 참여했다. GC녹십자는 대조군(17명)과 투약군(지코비딕 2500㎎ 15명, 500㎎ 15명, 1만㎎ 16명)으로 나눠 임상을 진행했다.
 
GC녹십자는 임상 투약 종료 이후 약 3개월 만인 4월30일 투여 용량을 1만㎎으로 하는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다.
 
식약처는 조건부 허가 신청 35일 만인 5월11일 검증 자문단 회의 결과 시험군과 대조군의 효과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며 후속 임상을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당시 식약처는 "11개 탐색적 유효성 평가지표에서 시험군과 대조군의 효과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라며 "검증 자문단은 임상 대상자 수가 적은 데다 대조군·시험군 환자가 고르게 배정되지 않았으며, 기존 코로나19 치료제를 활용한 표준치료의 효과를 배제할 수 없는 등의 한계가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임상의 설계와 목적이 치료효과 입증을 위한 허가용이 아닌 후속 임상을 위한 과학적 근거로 사용하도록 계획됐으나 GC녹십자가 허가 신청 자료로 임상 결과를 제출했다"라며 조건부 허가 반려 이유를 설명했다.
 
GC녹십자는 검증 자문단 회의 결과 발표 직후 "식약처의 이번 권고사항이 혈장치료제의 한시적 역할의 일몰을 의미한다면 품목 허가를 위한 당면 과제에 급급하지 않겠다"라며 개발 중단 의사를 내비쳤다.
 
GC녹십자 연구원이 코로나19 혈장치료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GC녹십자
조건부 허가 좌초에도 국내에서의 지코비딕 처방은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통해 한동안 이어졌다. 치료목적 사용승인은 다른 치료 수단이 없거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증 환자 등의 치료를 위해 허가받지 않은 의약품 또는 임상이 진행 중인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지코비딕은 조건부 허가 실패 이후에도 여러 차례 치료목적 사용승인을 받아 누적 건수 49건을 기록했다.
 
코로나19 혈장치료제 개발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같은 결과를 맞았다. GC녹십자 등 여러 기업이 참여한 글로벌 코로나19 혈장치료제 얼라이언스(CoVIg-19 Plasma Alliance, 이하 얼라이언스)가 주도한 임상이 실패로 끝난 것이다.
 
얼라이언스에는 GC녹십자를 포함해 다케다, 바이오테스트, 옥타파마 등이 참여했다. 얼라이언스는 GC녹십자 임상 2상 결과 발표에 앞서 미국 등 10개국에서 약 600명을 대상으로 혈장치료제와 '렘데시비르' 병용 임상 3상을 진행했다. 임상 결과 치료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해 얼라이언스 임상은 실패로 끝났다.
 
얼라이언스 임상 실패와 GC녹십자 개발 중단으로 코로나19 혈장치료제가 등장할 가능성은 사실상 없어졌다.
 
다만 코로나19 상황에서 국내 조건부 허가 신청까지 이어진 점, 해외 기업과의 연계를 통해 다국가 임상이 진행된 점이 향후 신종 감염병 등장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제약바이오업계 관계자는 "혈장치료제는 완치자 혈장을 이용해 만든 제제이고 앞서 개발됐던 사례도 있어 기대가 컸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실패로 끝났다"라면서도 "팬데믹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 여러 기업과 손잡고 공동 개발을 추진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번 코로나19 혈장치료제 개발 성과는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조건부 허가까지 진입했다는 것"아라며 "앞으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이 창궐하면 국내 기업이 중심이 되는 글로벌 개발까지 기대할 수 있게 됐다"라고 평가했다.
 
동지훈 기자 jeeho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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