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지난 2년 간 '팬데믹 블랙홀'로 대중음악계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같은 공간에서 대중과 밀착 소통해야하는 대중음악, 공연 시장은 올해도 취약했다. 공연 매출은 지난 2년간 90% 감소했고 음향·조명·악기를 비롯한 공연업계·중소 레이블과 기획사는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
'뉴노멀 시계'는 점점 더 빨라졌다. 대면 제한에 따라 확장현실(XR), 메타버스 등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공연이 진화를 거듭했다. 영국 글래스톤베리, 일본 후지록페스티벌은 '첨단의 페스티벌' 가능성을 보여줬다. 한국과 유럽을 연결한 한 공연장에선 원격으로 조종 가능한 피아노도 무대에 올랐다. 최근에는 NFT 물결을 중심으로 음악 콘텐츠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팬데믹으로 공연 시장이 막힌 상황, 음악 산업계의 대전환기인 셈이다.
코로나가 거의 모든 이슈를 잠식했지만, 훗날 한국 대중음악사에 새겨질 굵직한 순간들도 여럿 있었다.
방탄소년단(BTS)이 열어 젖힌 문을 투과한 K팝은 이제 세계 주류로 부상 중이다. 앨범이 나오면 미국 음악 방송을 안방처럼 넘나들고 빌보드 차트 상위권까지 오르는 광경은 더 이상 일회성이 아니다. K팝 음반 판매량은 전년 대비 42.9% 늘고 수출도 사상 첫 2억달러를 돌파했다.
미국 투어에 이어 KEXP 라이브 출연까지 성공한 악단광칠, 워멕스 2021 쇼케이스에 2년 연속 참가한 동양고주파 소식은 올해의 '작은 태풍'이었다. 10년 만에 정규 3집 '시편(psalms)'을 낸 정재일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오징어게임' OST로 올해 내내 주목받았다. 세계 음악 매체들은 파란노을, 포그 같은 한국의 슈게이징 팀들도 원석 캐듯 발굴해냈다. 조동진부터 김광석에 이르기까지, 동아기획과 학전소극장을 무대로 올리며 한국 대중음악사 기록(아카이빙)의 중요성을 돌아본 원년이기도 했다.
빛과 그늘의 차가 어느 해보다 컸던 2021년. 올 한 해 대중음악계 소식을 10개의 키워드로 정리, 분석해본다.
팬데믹 2년이 남긴 것…공연 매출 90% 급감
대중음악 공연 시장은 팬데믹 여파로 초토화의 해를 보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에 따르면 2019년 하반기 1865억4300만원에 이르던 매출액은 2020년 상반기(249억8600만원), 2020년 하반기(283억3300만원), 올해 상반기(118억8500만원) 흐름을 보였다.
대중음악 공연 전체 매출이 코로나 이후 90% 수준으로 급감한 것이다. 올해 하반기 지표는 아직 집계가 덜됐지만 '위드코로나'로 45일 여간 반짝 회복세를 보이다 12월 다시 내림세를 보였을 것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좁은 공간에서 대중과 ‘밀착 소통’ 한다는 인식과 정부의 규제로 올해 대중음악 공연은 원활한 진행이 어려웠다.
방송 등의 활동이 있는 대형 기획사 소속 가수들과 달리 공연 활동이 주가 되는 국내 장르 음악가들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다. 공연으로 번 수익으로 다음 앨범 제작비를 마련하는 식의 ‘현금 흐름’ 자체가 끊겨 버려서다. 음향·조명·악기를 비롯한 공연업계·중소 레이블과 기획사도 고사 직전에 몰려 있다.
이에 올 한 해 내내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이하 음공협),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Liak)를 주축으로 정부 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댄 자리들이 여럿 열렸다. 대중음악 공연에 대한 정부의 부당 차별 반대, 경영위기업종 아닌 영업제한 업종 분류 요구, 공평한 지원과 손실보상 적용 등에 대한 의견이 나왔으나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긴급 기자회견. 사진/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뷰민라·자라섬…유일했던 대면 음악 페스티벌
코로나 시대의 안갯속에서도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을 만들려는 시도는 두 차례 있었다.
6월에는 '뷰티풀 민트 라이프 2021(뷰민라·26,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88 잔디마당)'가 열렸다. 당시 정부의 거리두기 개편으로 콘서트 입장 가능 인원이 4000명까지로 조정되면서 뷰민라는 첫 실험 무대가 됐다.
인근 케이스포돔(옛 체조경기장)을 임시 방역센터로 썼다. 주최 측은 체온 측정과 QR 체크인 외에 별도로 자가 신속항원진단키트까지 준비하며 방역에 만전을 기했다. 이틀간 각각 4000명씩 입장한 관객 가운데 양성 판정을 받은 이 없이 무사히 마쳤다.
10월에는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2021(자라섬·5~7일 경기 가평군 가평읍)'이 열렸다. 정부의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에 따라 '백신 패스'가 적용된 첫 대규모 대중음악 공연이다. 체온 측정, 백신 접종 증명서 확인, 문진표 작성 등 검역 절차를 거치면 1m 간격으로 좌석 번호가 적힌 은색 돗자리가 펼쳐졌다. 3일간 페스티벌 입장객은 5000여 명.
수만명대 관객들을 동원하던 코로나 이전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두 축제 모두 성공적인 발판을 만들었다는 평가다. 정부의 세세한 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가이드라인을 만들며 코로나 시대 음악 페스티벌의 표준을 만든 사례들이다.
1m 간격으로 돗자리를 떼고 앉은 자라섬 페스티벌. 사진/뉴시스
원격 조종 피아노까지…세계를 잇는 비대면 공연
대면 제한에 따라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공연은 진화를 거듭했다.
국내에선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가 선두주자다.
확장현실(XR) 무대와 블루투스 연동 아미밤, 6개의 멀티뷰 화면, 비주얼 이펙트 뷰(VEV·오프라인 LED 효과의 오프라인 구현) 등의 기술을 글로벌 플랫폼 위버스에 적용한 비대면 공연으로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올해 방탄소년단이 여기서 연 'BTS 맵 오브 더 솔 원(MAP OF THE SOUL ON:E)', 'BTS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PERMISSION TO DANCE ON STAGE)'에는 각각 약 200여 국가에서 100만 명이 접속한 기록을 썼다.
방탄소년단 온라인공연 ‘BTS MAP OF THE SOUL ON:E’. 사진/빅히트뮤직
기상천외한 비대면 공연도 있었다. 12월 공연기획사 플러스히치는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원격 조종 피아노를 무대에 올렸다. 재즈 피아니스트 지오바니 미라바시, 레미 파노시앙이 파리에서 연주하면 한국 공연장에 연결된 야마하 디스클라비어 피아노가 시차를 두고 울리는 식이다. 통상 연주자에 가려져 있던 건반들은 관객들 앞에 고스란히 형체를 드러낸 채 유령이 연주하듯한 느낌을 줬다.
해외에서도 창의적인 기획들이 쏟아졌다. 5월 영국 글래스톤베리는 비대면 공연의 새 경지를 보여줬다. 부감숏이 영국 서머싯의 광활한 초원을 훑고 지나갈 때, 그 안에 파란 레이저와 조명이 미스터리 서클처럼 일렁일 때, 고대 유적의 돌무더기에서 연기들이 피어오를 때, 미래의 음악 페스티벌은 지구상에 있었다.
8월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은 수십개 카메라를 동원한 실시간 라이브 송출로 오프라인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력했다. 9월 6개 대륙에서 24시간 동안 생중계되고 총 11억 달러(1조3000억원)의 자선금을 모은 '글로벌 시티즌 라이브'는 '라이브 에이드'의 현대판이라 불리며 성황을 이뤘다. 온라인 공연이 기후변화, 코로나 백신의 공평한 분배, 빈곤 등 지구촌 문제에 목소리를 내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12월 공연기획사 플러스히치는 한국과 유럽을 연결하는 원격 조종 피아노를 무대에 올렸다. 프랑스 파리에서 연주하면 야마하의 건반이 유령처럼 눌리며 시차를 두고 그대로 곡을 재현한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메타버스 콘서트 활발…소통의 가상 세계
팬데믹으로 대면 콘서트가 어려워진 음악계에서는 메타버스에 아바타로 등장한 뮤지션들이 가상의 관객들과 소통하는 흐름도 두드러졌다.
메타버스는 가상·추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다. 현실 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 가상세계를 말한다.
세계 대중 음악계에서는 지난해 미국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가상 공연을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한다. 당시 스캇은 아바타로 등장해 세계 최초로 게임 '포트나이트' 안에서 온라인 월드 투어 '아스트로노미컬'을 구현했다.
올해는 아리아나 그란데, 릴 나스 엑스 등이 스캇의 뒤를 이어 메타버스 공연을 열고 신곡을 홍보했다.
국내에서는 10월 래퍼 화지가 최초 메타버스 힙합 콘서트를 열었다. 무대 대신 직접 설계한 3층짜리 가상 건물에 서니 ‘아바타’로 접속한 관객들이 이모티콘 세례를 쏟아냈다.
블랙핑크, 트와이스, ITZY 등 아이돌 그룹도 제페토 내에서 아바타를 만들고 전용 뮤직비디오를 제작해 팬들과 소통을 펼쳐왔다.
SM엔터테인먼트는 기획사 차원의 세계관까지 메타버스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 '광야(KWANGYA)'라는 가상 공간을 두고 소속 아티스트들의 콘텐츠를 접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에스파의 히트곡 '넥스트레벨'과 '새비지'를 시작으로 공연, 앨범, 전시까지 아우를 계획을 내놓고 있다.
그룹 에스파는 멤버가 8명이다. 실제 멤버 4명과 이들을 본뜬 가상의 멤버 4명으로 구성돼 있다. 사진/SM엔터테인먼트
NFT 사업 활발…'슈퍼 IP'와 결합
NFT(대체불가토큰) 사업 진출 소식도 활발한 해였다.
하이브는 블록체인 업체 두나무와 손잡고 NFT(대체불가토큰) 사업에 공식 진출을 선언했다.
내년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엔하이픈·세븐틴·투모로우바이투게더 등 아티스트 IP 기반 콘텐츠와 상품이 NFT 형태로 제작될 예정이다.
최근 음악산업계가 NFT에 주목하는 것은 스트리밍 시대 개별 콘텐츠로서 가치가 떨어졌던 음악을 다시금 희소성을 지닌 '자산'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다.
LP, CD, 카세트테이프 등 실물 음반 가치가 떨어지는 시대에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이 음악을 공유의 매개로 바꿔왔지만, NFT는 이를 다시 소유 가능한 개념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팬들이 수집하는 포토카드가 디지털상에서 영구적으로 소장 가능한 형태가 되고 수집, 교환, 전시가 가능하게 되는 식으로 팬 경험이 넓어지는 미래가 열린다. 하이브는 아티스트 IP를 활용해 내년 웹툰, 웹소설 시장에도 뛰어들 예정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NFT 비즈니스가 대중화되고 있다. 팝스타 위켄드는 음악과 아트워크 등을 NFT 형태로 경매해 22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달성했다. 록밴드 뮤즈 매튜 벨라미는 제프 버클리의 기타로 녹음한 곡을 비롯해 신작 미니앨범(EP)의 3개 트랙을 NFT로 발매한 바 있다.
최근에는 기획사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가수들이 잇따라 NFT 방식의 콘텐츠 실험에 나서고 있다. 최근 일렉트로닉 밴드 글렌체크는 한정판 NFT 111개 내놓아 2분만에 완판했다. 공연 입장권 등 리워드를 포함시켜 뒀다. NFT의 희소성이 투자자들을 유입하며 새로운 공연, 음악 문화를 열고 있다.
방탄소년단 IP를 활용해 제작될 웹 콘텐츠. 사진/빅히트뮤직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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