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부산 영도 앞바다를 눈앞에 그리듯 찰랑이는 하이햇과 청량한 기타 리프.
이내 슬레지해머로 내리꽂듯 휘몰아치는 드라이브(이펙터) 사운드가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괴성 가득한 보컬 사운드가 벼락처럼 내리친다.
‘소년의 노래는 그쳤다...(중략)...기타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아’
밴드 소음발광이 내놓은 2집 ‘기쁨, 꽃’은 올해를 장식하는 음반 중 하나다.
시종 휘청거리고 소란스럽고 부서지고 깨지지만 삶을 부여잡는 청춘들의 향기가 아른거린다.
“죽지만 말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같이 분노해주고 울어도 줄 테니, 죽지만 말자고..행복하게 살자가 아니라, 그냥 살자고..”
밴드 소음발광, 왼쪽부터 김보경(드럼), 강동수(보컬·기타), 김기태(기타), 김기영(베이스) . 사진/오소리웍스
22일 화상으로 만난 멤버 강동수(보컬·기타)가 말했다.
2016년 부산에서 결성한 밴드는 2019년 첫 EP ‘풋’으로 대중음악계에 출사표를 던졌다. 지난해 정규 1집 ‘도화선’을 낸 이래 강동수를 중심으로 김기태(기타), 김보경(드럼), 김기영(베이스) 4인조로 활동하고 있다.
2집은 전작보다 한층 확대된 음악적 스펙트럼이 엿보인다. 펑크를 뼈대 삼아 포스트 하드코어, 익스트림 메탈을 탑처럼 쌓아올리고 비치 보이스 ‘펫 사운즈’ 같은 선샤인 팝 컬러로 전체를 채색했다. 1980~90년대의 스크리모, 포스트 하드코어, 2000년대의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까지 밴드가 동경해오던 음악의 요소를 아우른다.
지난해 KEXP 출연 이후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부산 출신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의 김병규(기타)가 총괄 프로듀서로 참여해 앨범 전반 톤을 다듬었다. 2집부터 합류한 김기태도 라디오헤드, 마이블러디발렌타인 풍의 기타 공간계(쉬머 리버브) 음을 입혀 전작과 다른 느낌을 줬다.
밴드 소음발광. 사진/오소리웍스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어떻게 하면 펑크를 팝처럼 만들 수 있을까, 였던 것 같아요. (병규씨의 조언과 기태씨의 기타 덕에) 우리의 거칠고 시끄럽기만 하던 사운드가 잘 정제된 것 같습니다.”
행복과 평화라는 말을 쉽게 쓰는 사회가 기만처럼 여겨질 때가 있었다. 추락하면서도 살아내야만 하는 삶은 한 없이 위태로운데...(‘낙하’)
그럼에도 ‘현재’라는 것의 의미, ‘살아가고 있음’에 대해 돌아보고(‘춤’) 싶었다. 굳이 기쁘지 않은 삶이라도 “함께 살아내자”고 외쳐야(‘기쁨’) 자가 치유가 될 것 같았다.
“평화라는 말이 가진 자들의 기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누군가는 흩어져 살아야 할 바람 같은 존재고, 외줄 타기를 하듯 아등바등 살아야 가능할지도 모르는 것인데...”
반짝이는 팝 멜로디와 펑크 에너지 덩어리를 결합한 이율배반적 악곡 사이로 광기 어린 보컬은 시종 내달린다.
“살면서 느낀 감정 그대로를 옮겨보려 했어요. 그간 먼저 세상을 떠난 친구도 있었고, 개인적인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청춘을 대변 한다기보다는 그냥 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불평을 쏟아낸 일기장이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잖아요.”
소음발광 2집 '기쁨, 꽃'. 사진/오소리웍스
아이돌 중심의 K팝만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음악 매체들이 한국 지역 곳곳에 암약하는 음악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 출신 밴드 세이수미는 영국 유명 레이블 댐나블리와 계약하고 활발한 해외활동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워싱턴 주 시애틀의 유서 깊은 공영 라디오 방송의 간판 음악 프로 ‘Live on KEXP’에도 출연했다.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시작된 ‘서프록’이란 장르가 태평양 너머 부산에서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 대중 음악계가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다.
소음발광 역시 세이수미와 같은 행보를 걸을지 모를 일이다.
“세이수미를 보며 음악을 꿈꿨습니다. 서울에 비해 인구도 10분의 1밖에 안되고 열악한 환경일 수 있지만 부산에는 낭만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아하면 끝까지 밀어 붙이는 외골수 기질, 록스타를 꿈꾸는 낭만가들이 아직은 많은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멤버들에게 이번 앨범을 특정 공간에 빗대달라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동굴. 이유는 없어요.”(김보경)
“컨테이너. 바닥부터 시작하는 느낌과 날 것, 차가운 느낌이 있으니까요.”(김기태)
“부산 현대 미술관. 퍼포먼스로 미술과 콜라보를 제안 받은 기억이 있어요. 소음발광은 개념 미술로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또 소음발광은 부산 밴드이므로.”(김기영)
“영도. 2집은 거친 바닷바람이 연상돼요. 거칠고 투박하지만 개인적으로 어쩐지 뭉클해지는 곳. ‘이모도나스’에서 도넛을 사 먹으며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네요.”(강동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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