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도의 밴드유랑)크라잉넛 한경록 '풍차'는 멈추지 않는다
한영애부터 부활·최백호까지…100여팀 문화 예술인 출연 '경록절'
"인디신 건전한 문화…코로나 상황에 지지 않을 것"
2022-02-04 00:00:00 2022-02-04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대중음악신의 ‘찬란한 광휘’를 위해 한결같이 앨범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구슬땀을 흘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TV, 차트를 가득 메우는 음악 포화에 그들은 묻혀지고, 사라진다. ‘죽어버린 밴드의 시대’라는 한 록 밴드 보컬의 넋두리처럼, 오늘날 한국 음악계는 실험성과 다양성이 소멸해 버린 지 오래다. ‘권익도의 밴드유랑’ 코너에서는 이런 슬픈 상황에서도 ‘밝게 빛나는’ 뮤지션들을 유랑자의 마음으로 산책하듯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세르반테스 ‘돈키호테’와 모험단들이 동화책 저편에서 세상 밖으로, 움직이는 실재로 튀어나올 때가 있다. 그들에게 인생이란 낭만을 믿고 돌진하는 것, 꿈이란 부딪치고 깨져도 풍차처럼 아름다운 것. 
 
“말도 안 되는 모험(‘경록절’)을 또 저질렀구나 싶죠. 무모하게 벌이고 늘 수습하기 바쁘지만 돌아보면 재밌기도 하고 뿌듯해요. 하하하.”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위치한 문화 공간 ‘제비다방’. 고소한 커피 향이 가득하던 이곳에서 만난 크라잉넛 한경록(캡틴락)이 호쾌하게 말했다.
 
오늘날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고 손가락질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 문화라는 질서는 어쩌면 무모하고 저돌적인 상상을 지닌 자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법이다. 
 
장미로 수놓아진 그의 재킷과 이마에 두른 두건은 돈키호테 휘장인 중세 갑옷 같았다. 천장이 우물처럼 뻥 뚫려 빛이 새어 나오는 지하 공연장을 뒤로 하고 그는 올 초부터 다듬어온 톨레도의 검을 들어보였다. 
 
서울 마포구 상수동 '제비다방'에서 만난 크라잉넛 한경록.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음악 인생 27년 만에 처음 겪는 일이지만 코로나 사태에 지고 싶지 않아요. ‘유희는 조금 쉬어도 되지 않느냐’는 시선도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이것이 생계인 뮤지션들에게는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문제거든요. (‘경록절’을 성공적으로 치러) 인디음악과 라이브클럽이 얼마나 건전한 문화인지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경록절’은 크리스마스 이브, 할로윈과 더불어 홍대 3대 명절이라고도 불리는 연례 축제다. 2007년 한경록의 생일파티로 시작해 음악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무브홀 같은 홍대 공연장에서 열렸으나, 코로나19 장기화 여파에 상황이 바뀌면서 기획 방식도 바뀌었다. 
 
스케일이 더 커졌다. 국경과 장르의 벽을 허물었다. 지난해 18시간에 걸쳐 국내외 총 83팀이 출연한 대형 온라인 페스티벌은 성황을 이뤘다. 산울림 김창완, 영국의 전설적 펑크록 밴드 섹스피스톨스 원년 멤버 글렌 매트록 등이 출연했다. 
 
올해는 기간을 총 3일(2월9~11일)로 늘리고 100여 팀의 출연진을 섭외했다. 첫 개최 후 15년 이래 최대 규모다. 기획 기간 진행한 텀블벅 펀딩은 예정 모금 금액을 넘어 1247만원을 달성했다. 
 
“미래가 앞당겨진 것 같은 ‘언택트’ 시대를 준비하다 보니 새로운 가능성들이 열리더라고요. 뮤지션과 관객이 직접 만나는 공연이 플랫폼 하나로 가능해진 셈이잖아요. 다양한 취향들을 공유할 수 있고 아티스트와 직접 소통도 가능한 면이 인디신에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한국 대중음악에 굵직한 자취를 새긴 음악가들이 다수 출연한다. 한국 포크록, 블루스록을 대표하는 한영애는 크라잉넛과 합동 무대를 꾸민다. 
 
한영애와 크라잉넛이 올해 '경록절'에서 선보일 합동무대. 사진/캡틴락컴퍼니
 
1976년 ‘해바라기’ 멤버로 가요계에 데뷔한 한영애는 1986년 엄인호, 이정선, 김현식, 김병호 등과 신촌블루스를 결성해 활동했다. 동시에 연극배우로서도 병행하며 솔로 앨범도 냈다. 90년대 2집 ‘바라본다’와 4집 ‘불어오라 바람아’는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바 있다. 
 
“한영애 선배님 노래에는 연극적인 요소가 있어요. 현대 예술이자 포스트모더니즘이죠. ‘누구없소?’, ‘건널 수 없는 강’, ‘이별 못한 이별’, ‘따라가면 좋겠네’... 중고교 학창시절 그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정말 많이 듣고 자랐거든요. 제 안에 한영애 선배님이 있는 셈이죠.”
 
시나위, 백두산 등과 80년대 그룹사운드 열풍을 주도한 밴드계의 전설 부활(김태원, 박완규, 채제민, 최우제)은 자체 제작한 독무대 영상으로 관객들과 만난다. ‘음유시인’ 최백호는 대표곡 ‘낭만에 대하여’를 열창하며 축제의 화합을 이끌 예정이다. ‘스트리트우먼파이터(스우파)’ 출연 댄스그룹 코카앤버터, 밴드 이날치, 래퍼 가리온 등 장르 불문(록, 힙합, 트로트, 댄스 등) 팀들도 뒤섞인다.
 
“경록절은 문화에 진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드는 행사라 생각해요. 자본력이 크다고 해서, 인기가 많다고 해서 이런 축제가 뚝딱 만들어지지는 않거든요. 이 기록들이 후대에 남아 ‘코로나에 지지 않았네, 록큰롤은 이 때도 멈추지 않았구나’ 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면 좋을 것 같아요.”
 
‘스트리트우먼파이터(스우파)’ 출연 댄스그룹 코카앤버터. 사진/캡틴락컴퍼니
 
올해 행사에는 라이브 공연 외에도 출연진들의 콩트, 브이로그, 먹방, 홈쇼핑 콘셉트 등이 준비된다. 계곡, 책방, 차안 같은 곳부터 우주나 미래 같은 가상공간까지 출연진 별 개성 넘치고 흥미로운 촬영 배경도 볼거리다.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 사태 이후 휴업을 하거나 문을 닫은 홍대 인근 라이브 공연장들도 직접 찾아가 소개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미국에서는 ‘그래미어워드’ 같은 유서 깊은 대중음악시상식이 위기에 직면한 현지 공연장을 조명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제게 홍대는 여전히 ‘예술 놀이터’에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라이브 클럽들이 변방으로 밀려나고 코로나 사태 이후 뮤지션들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점점 더 사라지고 있지만요. 예술가들이 꾸미는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사라지지 않도록, 문화를 바라봐 주는 시선들이 조금 더 열리길 바라요. 라이브 공연 업계 종사자들도 결국은 자영업자이자 소상공인이고, 음악과 문화는 먹고 사는 것만큼 삶에 중요한 자양분이니까요.”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는 길, 건물 꼭대기 제비 문양에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언제쯤 봄을 물고 오려나. 이 시련도 끝은 있겠지.’
 
덜컹거리는 로시난테에 올라탄 돈키호테는 오늘도 내달린다.
 
“놀이동산처럼 다양한 놀 거리가 있는 곳이라면 좋겠어요. 어드벤처도 있고, 정원도 있고, 판타지 존도, 사이버 존도 있는. 이번에도 끝나면 알게 되겠죠.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하하”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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