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배한님·조승진 기자] 배구선수 김인혁과 BJ잼미 사태로 혐오 댓글·콘텐츠의 심각성이 다시 주목받으며 관련법 제정 논의도 재점화됐다. 2019년 발의 후 서서히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났던 '설리법' 등도 재조명받고 있다. 그러나 기존에 발의된 법안에 해외 플랫폼을 규제할 뚜렷한 방안이 담기지 않은데다, 처벌 수위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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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 문턱 넘지 못한 '악플방지법'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악플방지법은 두 건으로,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과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이 각각 2020년 8월과 10월에 발의한 '전기통신망법 개정안'이 있다. 전 의원안은 온라인상 혐오·차별표현 등 모욕에 대한 죄를 신설하는 내용이 핵심이고, 박 의원 안은 이용자식별부호 및 인터넷 프로토콜 주소(IP)를 표시하는 '인터넷 준실명제'를 도입하는 방안이다.
두 법안 모두 위헌 소지 및 외국 기업 규제 등의 문제로 상임위인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발이 묶여있다. 20대 국회에서도 임기 만료로 폐기된 악플방지법이 21대 국회에서도 2년 가까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법안소위까지는 통과했지만, 개인정보 보호를 주장하는 측과 피해자 보호를 주장하는 양측 의견이 팽팽히 부딪쳐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박 의원 안에 담긴 인터넷 준실명제는 지난 2012년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판단한 본인확인제와 유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플랫폼 환경에서 이용자의 부담만 높이는 방향으로 악플방지법이 설정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플랫폼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내부고발자 지적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의 내부 운영 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인터넷 준실명제로 개인정보를 노출해 선량한 이용자만 피해를 보게 한다"며 "인공지능(AI) 기술을 이용해 혐오 발언을 하는 이용자를 걸러내고 경고하는 방식으로 운영 지침을 마련하도록 방향이 설정돼야 한다"고 꼬집었다.
유럽·호주 등, 입법 통제 강화
지난해 10월 영국에서 진행된 페이스북 규탄 시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의 내부고발자는 두 회사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콘텐츠를 제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사진/AP·뉴시스
온라인 혐오 콘텐츠나 댓글 문제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국에서는 일찌감치 입법적 통제에 나섰다. 상대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중시하는 영국 등 영미법계 국가들은 과거 민사 소송 등 방식으로 온라인상 악성 혐오 표현을 규제해왔다. 그러나 더이상 같은 방식으로는 디지털 혐오를 막기 힘들다는 판단에 형벌을 직접적인 규제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영국과 호주는 온라인 사용자에게 사용자의 안전한 서비스 이용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 규정을 부과하는 '온라인 안전법'을 운영하고 있다. 프랑스는 '인터넷 자율규제기구'를 통해 플랫폼 기업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구글·페이스북·트위치 등 외국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독일은 '네트워크시행법'을 통해 이용자가 200만명이 넘는 소셜미디어에 특정 대상을 혐오하는 콘텐츠가 올라오면 플랫폼 사업자가 24시간 내로 차단할 것을 의무화했다.
국내법에도 현행법에도 온라인 혐오 발언을 처벌할 근거는 있다. 온라인 혐오 발언은 형법상 명예훼손죄·모욕죄·정보통신망법에 따른 사이버명예훼손죄 등이 적용될 수 있다. 피해 당사자인 경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를 통해 임시조치(블라인드) 신청도 할 수 있다.
국내 플랫폼도 자체적으로 악성 혐오 콘텐츠를 막기 위해 힘쓰고 있다. 양대 포털인 네이버·카카오는 사회적 책임 강화를 외치며 댓글 정책을 강화했다. 2020년 배구 선수 고유민 사망 이후 연예 뉴스에 이어 스포츠 뉴스 댓글까지 잠정 폐지했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도 혐오 표현 감지 및 삭제·사이버불링 방지 안전 기능 등을 도입했다.
외국 기업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문제
그러나 외국 기업의 빠른 협조를 이끌어내기 어렵고, 기업의 자율규제에도 한계가 있어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기업과 달리 유튜브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 외국 기업은 정부 요청에 즉각 응답하지 않고 있어 혐오 발언자의 정보 확보 협조도 쉽지 않은 형편이다. 때문에 외국 플랫폼 기업의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외국 기업도 자체 정책을 통해 혐오 표현을 제재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강력한 처벌법이 없는 한국에서는 관련 활동이 미진하다고 지적한다.
방심위 통신심의 특위위원을 맡고 있는 김진욱 변호사는 "방심위에서 수시로 모니터링해 악성 댓글의 삭제 조치 내지는 접속 차단 등을 하고 있고 국내 포털의 경우 임시 조치가 자주 활용되고 있다"면서도 "외국 기업이 국내의 법제도에 빠르게 반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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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도 외국 기업 포섭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한다. 정책위원회에서 혐오 콘텐츠나 댓글 삭제·차단 규칙을 만들고 있지만, 구글·페이스북 등 외국 기업은 KISO 회원사로 가입하지 않아 정책 적용을 받지 않는다. 외국 기업은 자체적으로 '글로벌 정책'을 운영하고 있다며 국내 자율정책 기구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다.
박엘리 KISO 정책팀장은 "혐오 표현이나 악성 댓글과 관련해 외국에서는 인종차별 등 문제로 예민하기 때문에 기업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 팀장은 "올해 특별 분과를 설치한 것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외국 기업을 포섭하기 위함"이라고 덧붙였다.
악플러들도 잘못 인지…수사·처벌 약해 근절 안돼
'약한 처벌'로 온라인 혐오 문제가 반복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혐오 콘텐츠의 피해자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태가 이어지자, '자살 교사'나 '방조'로까지 처벌을 강화해 예방 효과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상훈 전 서울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은 "악플러들도 자신들이 잘못된 짓을 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데, 경찰 수사나 입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탓에 악플이 근절되지 않고 있다"며 강력한 처벌이 수반돼야 악플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 진단했다. 배 교수는 이어 "예전에 비해서는 악플러들이 활동할 공간이 넓어진 탓도 있지만 이런 사이트들이 트래픽이나 광고 수익 등의 이유로 방조하고 있다"며 혐오 표현 제재에 소극적인 플랫폼에 대한 처벌 수위도 높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한님·조승진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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