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 도서관에 마련된 제20대 대선 개표상황실에서 출구조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임유진 기자] 대선 최종 승패와 상관없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책임론이 불가피해졌다. 대선 대전략으로 제시했던 세대포위론을 비롯해 호남 30% 득표도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 대한 개인적 앙금을 내세워 계속해서 비토를 놓으면서 단일화 시너지보다 역풍을 낳는 단초도 제공했다. 대선에서 패배할 경우 지도부 총사퇴 등 후폭풍은 불을 보듯 뻔해졌다.
이 대표는 윤석열 후보가 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다음날 '비단주머니'를 제시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이 유비에게 닥칠 위기를 예감하고 조자룡에게 "어려울 때 꺼내보라"며 건네준 3개의 비단주머니를 본 딴 것이다. 비단주머니 속에 담긴 기묘한 계략 '금낭묘계'였다.
첫번째 비단주머니는 세대포위론이었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지지 기반인 40대와 50대를 2030과 전통적 지지층인 60대 이상을 결합해 포위하겠다는 전략이었다. 조직도, 자금도 없던 자신이 전당대회에서 내로라하는 주자들을 꺾고 당대표로 선출된 힘이 2030에 있다고 본 이 대표는 지난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를 확인하며 이를 대선에 적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문제는 이대남(20대 남성)에 대한 집착이었다. 이대남 표심만을 의식, 젠더를 갈라치기한 끝에 2030 여성 표심을 이재명 후보에게 쏠리게 만들었다. 이 대표의 조언을 받아들인 윤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강화, 병사월급 200만원 등 이대남 공약에만 집중했다. 윤 후보는 대선을 하루 앞둔 8일 세계여성의날임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 '무고죄 처벌 강화' 등의 한 줄짜리 공약 문구를 재차 올리는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했다.
결국 이는 패착이 됐다. 9일 지상파 3사 출구조사 연령별 예측치를 보면 20대 이하에서 이재명 47.8% 대 윤석열 45.5%였다. 20대 남성은 윤석열 58.7% 대 이재명 36.3%로 이대남 전략이 맞아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20대 여성에서 이재명 58.0% 대 윤석열 33.8%로 결과가 뒤집혔다. 2030에서 크게 뒤지던 이 후보는 이대남에 집착하는 윤 후보의 빈틈을 파고들며 젊은 여성 표심을 적극 공략했고, 이를 바탕으로 20대에서 대역전을 이룰 수 있었다. 20대 여성 결집이 없었다면 윤 후보가 무난하게 20대 승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 대표가 공을 들였던 서진전략도 실패했다. 이 대표는 이번 대선에서 호남 득표율을 20%에서 25%, 다시 30%로 재차 상향 조정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가 호남에서 20% 안팎의 지지를 얻자 이에 한껏 고무됐다. 이 대표는 이날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호남 판세에 대해 "20%는 당연히 넘을 것이고 30%를 받을 수 있다고 본다"고 낙관했다. 사전투표 첫날인 지난 4일 광주 전남대에서 투표를 한 뒤에는 "호남에서 윤 후보의 득표율 30%를 달성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호남은 이 후보의 압승이었다. 지상파 출구조사 지역별 예측치를 보면 광주 이재명 83.3% 대 윤석열 13.7%, 전남 이재명 83.7% 대 윤석열 13.3%, 전북 이재명 82.6% 대 윤석열 14.4%였다. 그간 윤 후보가 여타 여론조사에서 20%대의 지지율을 이어가던 것과 정반대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호남 득표율 목표치를 놓고 큰소리를 친 모습이 호남에서 반감을 샀을 거란 지적이 나왔다.
이 대표는 아울러 윤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간 야권 단일화에 대해 처음부터 부정적 입장을 밝히며 실현을 힘들게 했다. 당 출신 국회의장단 등 원로들까지 나서 단일화를 촉구했지만 이 대표는 요지부동이었다. 안 대표가 낮은 지지율과 군소정당의 한계, 선거비용 보전 문제 등으로 완주하지 못할 것이라며 연일 깎아내리기도 했다. 특히 안 대표의 단일화 제안 직후 이 대표는 '부처님 손바닥 안 손오공' 사진과 함께 "역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말로 안 대표를 사실상 조롱했다. 심지어 "안 후보가 조건 없이 후보직을 자진사퇴하고 윤 후보를 지지선언하는 것만이 유일한 단일화"라고도 했다.
결국 사전투표를 하루 앞두고 단일화는 성사됐지만 시너지보다는 역풍에 직면해야 했다. 특히 호남에서의 높은 사전투표율은 이에 대한 반발이었다. 안 대표 지지층을 이루던 2030과 중도층도 표심을 분산하며 단일화 효과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임유진 기자 limyang8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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