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서태지.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밴드 시나위 베이시스트 출신인 서태지는 양현석·이주노와 함께 결성한 서태지와아이들로 1992년 데뷔했다.(무대 기준 3월14일, 앨범 기준 3월23일) 당시 데뷔작은 한국어는 랩이 불가능하다는 편견을 깨고 힙합과 브레이크 댄스 대중화를 이뤄낸 역사적인 음반으로 평가된다.
이후 매 앨범 발표 때마다, 장르를 변용하는 자가복제 거부로 한국 음악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왔다.
서태지는 혁명이었다.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말한다는 것은 시대의 감각을 마주하는 일이며,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굴곡을 관통하는 것과 같다.
음반 사전심의제도 철폐, 방송가 사전제작 시스템 도입, 사운드의 선진화.... 보편적 담론에서는 오늘날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세계를 휩쓰는 K팝의 뿌리이자 원형 모델로 평가되지만, 그것은 단면에 지나지 않는다.
‘아이들’ 시절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뤄온 담론으로부터 살짝 비켜서서, 본격 밴드로 나아간 앨범들까지 전체를 관조적으로 조망한다면, 한국 대중음악과 사운드에 대한 선진적인 질문, 그리고 혜안이 다시금 간헐천처럼 솟구칠지 모른다.
서태지는 수천수만 화학 작용이 결합된 미래다. 스스로는 “서태지 시대가 90년대에 끝났다”고 하지만 그는 여전히 ‘90’S ICON(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 수록곡)’에 박제되지 않는다. 자유, 도전, 창조라는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서태지 세대들은 지금도 문화 현장 곳곳 창조의 꽃을 틔우는 ‘이날의 영웅들’로 성장했다. 세계는 여전히 회중시계를 지닌 토끼를 쫓듯 그의 ‘다음 음악’을 궁금해 한다. 슈퍼 하이웨이를 질주하는 몽롱하고 기나긴 단꿈처럼... [참고 기사,
(권익도의 밴드유랑)서태지와 아이들 유산 “K팝의 원형”]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말한다는 것은 시대의 감각을 마주하는 일이며, 지난 30년 간 대한민국 대중음악의 굴곡을 관통하는 것과 같다. (사진=서태지컴퍼니·서태지아카이브)
Take 연작, 미국에서 건너온 ‘음악 편지’(서태지 5집 1998년 7월 7일)
4집 ‘은퇴선언(1996년 1월31일)’ 이후 돌연 미국행을 택했던 서태지는 기나긴 잠적 끝에 한국으로 새 음반 소식을 보내온다.
‘은퇴 번복’에 대한 비판과 ‘창작고통의 탈출을 이해한다’는 옹호가 맞부딪히는 상황에도, 앨범은 사전 예약만으로 100만장이 팔려나가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스스로 설계한 음표를 홀로 구현한 셀프타이틀 음반은 첨단을 걷고 있었다.
‘Produced by TAIJI, Written by TAIJI…’
작곡, 프로듀스부터 악기 연주까지 모두 홀로 완성했다는 몇 되지 않는 표식에, 'Take One, Two, Three…’라는 미스터리한 제목을 이어붙인 연작은 영롱한 보라빛 케이스만큼이나 신비로웠다.
3D로 구현한 우주선과 빨간 머리의 캐릭터를 담은 ‘Take One’ 뮤직비디오 역시 확성기에 대고 외계어처럼 발음을 흘리는 그의 음성과 맞아 떨어져 기묘한 느낌을 줬다. ‘같은 시간 또 다른 세상’이 바로 거기 있었다.
얼터너티브 록을 근간으로 한 28분 러닝타임의 음반 수록곡들은 기타, 키보드, 베이스, 컴퓨터 샘플링, dj 스크래치 사운드를 결합해 만들어졌다. 인류의 외계 유입설, 낙태, 타국에서 이방인으로서의 감정 같은 여러 갈래의 해석들을 낳았으며, 브리지 곡들에만 달려 있는 제목(‘Maya·Radio·LORD)’과 마지막 2분간 겉돌다 터져 나오는 히든 트랙으로 팬들은 이 ‘미국에서 건너온 음악 편지’ 속 단서들을 찾아갔다.
다수의 대중을 위한 음악보다,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음악, 그리고 ‘수천수만의 다른 서태지(팬덤)’를 찾아가는 그에게서는 한결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당시 서태지. 사진=서태지컴퍼니
‘미친 매니아들의 세상’ 사운드의 선진화(서태지 6집 2000년 9월 8일)
2000년 8월 29일, 서태지가 은퇴 선언 이후 4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 사회를 재차 술렁이게 한 날이다.
검정색 긴 머리와 뿔테 안경 사이로 비치는 흰 얼굴, ‘ㅅ’자 무늬가 반복적으로 찍힌 티셔츠를 입은 그를 보기 위한 수천여명의 팬들과 수백명의 기자들로 김포공항은 삽시간에 마비상태가 됐다.
둔중한 뉴 메탈을 전면에 내세운 6집 앨범을 며칠 뒤 발표했다. 프랙털 이미지와 옛 한글을 활용한 음반 속지와 빨간색 케이스, 여기에 빨간색 레게머리로 변신한 서태지는 당시 발라드와 댄스 일색이던 한국 대중음악계에 다시금 충격파를 던졌다.
두터운 기타리프, 굵직한 리듬, 그러나 이를 뚫고 나오는 대중적 멜로디, 날카로운 서태지의 랩핑은 파괴적이면서도 귀에 쏙쏙 꽂혔다. 특히 방송 무대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자유분방한 청년들과 얽히고설키는 타이틀곡 ‘울트라맨이야’는 무언가에 미친 이들이 결국 세상을 밝게 만들 것이라는 선언(‘미친 매니아들의 세상/밝은 미친 세상’)으로, ‘매니아 문화’를 대중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탁상공론적인 정책과 권위주의가 사라지지 않는 한 대도시가 파멸에 이를 수 있음을 경고하고(‘대경성’), 온라인 공간에서의 인신공격이나 인격모독을 날카로운 언어들로 비판(‘인터넷 전쟁’)하는 사회·철학적 가사는 오늘날과도 맞아떨어질 정도로, 시대를 앞서 갔다.
앨범 발매 해당년도와 이듬해까지 ‘태지의 화(話)’ 전국 투어, 한국 가수 최초 일본 ‘섬머소닉’ 페스티벌 참석, 한일 위성으로 진행한 록 페스티벌 ‘ETPFEST’를 이어갔다. 2002년부터는 인디레이블 ‘괴수인디진’ 안에 넬과 피아, 디아블로, 코어매거진를 영입했고, ‘ETPFEST’ 규모를 키워 X재팬 히데 추모 공연을 비롯해 X재팬 파타를 주축으로 한 밴드 도프헤즈, 머틀리크루 드러머 타미 리 등의 무대를 열었다. 당시 세계적인 하드코어 밴드 콘을 프로듀싱한 척 존슨과 ‘아이들’ 시절부터 드럼 녹음을 맡아온 조시 프리스(나인인치네일스, 스팅 등 앨범 참여) 등이 참여한 ETP 라이브와 6집 재녹음 ‘리레코딩’ 앨범(2003년 2월 발표)은 사운드 선진화를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태지 6집 활동 당시 빨간 레게머리. 사진=서태지아카이브·서태지컴퍼니
감성 코어의 ‘멜로디 샤워’(서태지 7집 ‘Issue’ 2004년 1월 27일)
5집과 더불어 서태지 스타일의 음색과 록 사운드가 가장 조화롭다는 평가받는 앨범이다.
서태지 스스로는 컴백 당시 다큐에서 “6집이 사운드 샤워라면 7집은 멜로디 샤워”라며 ‘감성코어’라는 명칭으로 앨범을 소개했다.
기타의 굵고 파괴적인 디스토션을 살리되, 최대한 코드진행의 단순화를 추구한 앨범 전체 수록곡들은 한 곡처럼 유기적으로 흘러간다. 거친 질감 속에서도 서태지 특유의 빼어난 멜로디 라인과 일반 기승전결을 따르지 않는 다이나믹한 악곡 구성이 앨범 전체를 휘감아, 실험성과 대중성을 모두 잡아냈다.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코드 진행의 인트로가 페이드인(fade-in) 되며 점차 선명해지다가, ‘Heffy End’로 연결되고 이는 또 다시 ‘Nothing’-‘Victim’, ‘DB-Live Wire’, ‘로보트-Down’ 같은 각 곡 구간별 접합을 이루다가 ‘0(Zero)-Outro’의 페이드 아웃(fade-out)’ 되는 식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느낌을 주는 구성을 취했다.
스토커의 잘못된 사랑 방식(‘Heffy End’)과 여아 성 감별 낙태와 여성에 대한 사회적 억압(‘Victim’), 음악이 통제당한 사회와 독립에 대한 상황적 가정(‘Live Wire’), 아무런 감정도 없는 로봇이 된 어른 세계(‘로보트’), 음악성은 없고 상업성만 남아버린 음악 비즈니스에 대한 일갈(‘F.M Bussiness’) 같이 음반은 제목 그대로 사회적인 시대성을 고찰할 수 있는 여러 현상들을 서사적인 문학 문체로 그려, 단편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줬다.
당시 서태지는 탑(서태지밴드 기타리스트), 헤프(서태지밴드 드러머)를 비롯해 I.N.A(X재팬 히데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이자 프로그래머) 등 전문가들과 함께 앨범을 완성했는데, 이는 5, 6집까지 홀로 만들던 제작 방식을 벗어나 사운드 스케이프를 확장하는 배경이 됐다.
MP3 보급이 가속되던 당시 CD 시장이 몰락한 여파로 앨범은 약 50만장이 팔렸지만, 그 해 국내 전체 음반 판매량 1위 기록을 세웠다. 앨범 활동 당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연을 비롯해 콘과 후바스탱크, 제브라헤드 등이 출연한 ‘2004 ETPFEST’를 성공적으로 열었다. 자유 분방하고 내츄럴한 음악 색깔과 어울리는 긴 샤기컷 스타일과 정장스타일과 캐주얼한 아이템을 매치하는 유로트래쉬 패션 등도 인기를 끌었다.
서태지 7집 'Issue' 활동 당시의 모습. (사진=서태지컴퍼니)
자연과 미스터리, 그리고 ‘네이처 파운드’(서태지 8집 ‘8th Atomos’ 2009년 7월1일)
서태지 전체 커리어의 최대 노작(勞作)이자, 음악적으로 명반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작품이다.
록 사운드 근간에 잘게 쪼개지는 드럼 비트와 파편처럼 튀어대는 일렉트로니카 전자음들이 음반 커버에 그려진 작고 탱글탱글한 물방울들을 연상시킨다. 화성적으로는 재즈에 많이 쓰는 이른바 텐션(코드 옆에 숫자 9, 11 등을 붙여 만드는) 코드를 많이 활용했다. 자연과 미스터리를 소재로 삼은 앨범에 대해 서태지는 자신이 새롭게 창조한 장르인 ‘네이처 파운드’라 명명했다.
2008년 7월29일 싱글 앨범 ‘Part Moai’를 시작으로 2009년 3월10일 두 번째 싱글 앨범 ‘Part Secret’, 그리고 마지막 2009년 7월1일 정규 앨범 ‘8th Atomos’로 활동 사상 처음으로 총 세 번에 걸쳐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전과 앨범과 달리, 대부분을 한국에서 해결한 ‘메이드 인 코리아’(정규 음반 때 마스터링만 뉴욕 스털링사운드 테드 젠슨이 담당)다. 괴수인디진 소속 밴드 피아의 양혜승이 자신의 소유인 오렌지카운티 드럼으로 서태지 스튜디오(Techno-T)에서 전곡을 녹음(연습 3주·실제 녹음 10일)했는데, 이때 서태지가 컴퓨터 미디로 찍은 원곡의 비트에 최대한 가깝게 리얼 드럼으로 전환했다. 탑(기타)과 김석중(키보드)은 서태지와 함께 공동 편곡 작업에 참여했다.
속세를 벗어나 이스터섬 모아이 석상을 마주하며 시작되는(‘모아이’) 앨범의 여정은 인간의 감정을 느끼게 된 로봇(‘휴먼드림’)과 지구 종말론(‘틱탁’), 웜홀을 관통해 다른 시공 화성에서 만나는 운명적인 사랑(‘줄리엣’) 등 기존 주류 대중음악에서 다루지 못했던 상상을 유기적으로 엮은 세계관이었다.
당시 충남 보령에 만든 미스터리 서클과 서울 강남 한복판에 만든 UFO 무대, 강원도 흉가 녹음 같은 이색적인 프로모션도 화제였다. 마릴린 맨슨과 더유즈드(2008년), 나인인치네일스와 림프비즈킷(2009년) 등을 섭외해 전개한 ‘ETPFEST’와 톨가 카쉬프가 지휘하는 영국 로열필하모닉과 함께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한 오케스트라 협연도 큰 관심을 끌었다.
8집 활동 당시 '서태지 심포닉' 지휘자 톨가 카쉬프와 서태지. 사진=서태지컴퍼니
몽환적인 신디사이저로 빚어낸 ‘잔혹 동화’(서태지 9집 ‘Quiet Night’ 2014년 10월20일)
5년 만에 돌아온 이 정규작에서는 록이 근간이던 5집 이후 사운드들과 달리, 아날로그 신디사이저 사운드의 몽환적인 질감으로 앨범 전체를 채색해, 전작들보다 가사와 음향적 측면에서 판타지적 상상력 발현을 극대화했다.
서사는 일반적으로 마냥 편안하고 아름답기만 하다고 인식되는 동화라는 일반적인 틀을 낯설게 보는 데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추억이 깃든 소격동이란 동네를 통해 80년대 서슬 퍼런 사회상을 비춰보고(‘소격동’) 울지 않는 아이를 리스트업 해 선물을 준다는 산타라는 존재를 악한 존재로(‘크리스말로윈’) 비틀고 우리 시대의 권력과 선악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게 한다. 서태지 특유의 감감적이면서도 날카로운 사회 철학적 통찰력과 농담이 짙게 배인 가사들이다. 그 스스로는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잔혹 동화 콘셉트’라 설명했다.
21세기 전자 사운드로 서태지 특유의 유려한 멜로디를 동화처럼 빚어낸 ‘소격동’ 선공개곡은 인기 가수 아이유가 불러 화제도 됐다. 당시 평단에서는 세계 전자음악 신에서 두드러지던 신스팝 경향을 자기 식으로 소화하고 장난감을 조립하듯 변용해 새로운 창작물로 내놨다는 평가가 잇따랐다.
스스로를 ‘한물 간 아이콘’이라 자조하는 곡 ‘90’s ICON’을 비롯해 기존보다 자전적인 내면의 이야기를 털어 놓고(‘잃어버린’, ‘비록’) 곧 태어날 자신의 딸과 아빠가 된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 점(‘성탄절의 기적’)이 돋보였다.
이 음반 활동 시기 전후로 서태지는 뒤늦게 알려진 이혼과 재혼 사실이 전국을 강타하는 이슈의 중심에 있기도 했지만, 예능 프로그램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담담하게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모습을 보였다.
이듬해인 2015년에는 인천에서 열리는 대중음악 페스티벌 ‘펜타포트’에 섰으며, 25주년을 맞은 2017년에는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그룹 방탄소년단(BTS)과 합동 무대를 꾸몄다.
서울 잠실에서 열린 데뷔 25주년 기념 공연 당시 서태지와 방탄소년단. 사진=서태지컴퍼니
데뷔 30주년 의의…퀄리티 높은 음악과 문화적 스트롱맨
서태지와 교류했던 음악가들이나 평론가들은 대체로 5집 이후 활동을 두고 작곡과 작사 뿐 아니라 프로듀스, 녹음, 연주, 믹싱까지 홀로 진행하는 ‘셀프 프로듀싱’과 ‘막대한 사운드 투자’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
이대화 음악 저널리스트(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는 “6집 ‘울트라맨이야’ 활동 때를 돌아보면 격렬한 록 음악으로 한국 음악계에 그 정도의 인기와 영향력을 발휘한 사례가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자기 음악 속에서도 퀄리티 높은 음악 들려주려는 노력과 투자가 다른 아티스트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서태지 만의 차별점”이라고 짚었다.
8집 드럼 녹음에 참여했던 양혜승은 “태지형이 7집 녹음 당시 작업 중인 일본 스튜디오로 초대해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국내에서 일반적으로 쓰던 릴 테이프 녹음 방식 대신 최신 컴퓨터 녹음을 진행하는 것을 처음 보고 배웠다”며 “그때 태지형은 이미 악기 연주 뿐 아니라 녹음과 프로그래밍, 믹싱 같은 음향 전문 지식까지 초 엘리트 수준이었고 I.N.A씨(X재팬 히데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 등과 교류하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문화적 영향력’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부터 그 이후까지 30주년 전체를 조망할 때 늘 거론된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랩과 댄스, 메탈, 얼터너터티브, 스페이스록 등에 이르기까지 서태지의 음악은 기성의 가치와 기존 질서를 전복하는 것, 즉 앞으로 달려가면서도 (과거 세대와의) 충돌을 전제로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짚는다.
그는 “문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사회적 타격을 가질 수 있는 소셜 파워였다는 점을 서태지는 줄곧 상기시켜왔다”며 “문화가 갖고 있는 파워, 문화적 스트롱맨을 실증했다는 점에서 30주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평했다.
서태지는 도심형 록 페스티벌 ETPFEST를 이끌어 오는 등 한국 대중음악 공연 문화 대중화와 사운드 선진화에 투자와 노력을 기울여왔다. 사진=서태지컴퍼니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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