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용윤신 기자] # 직장인 A씨는 주유소 가격판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최근 경유가격이 휘발유 가격보다 올랐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난 뒤 최근 출장이 잦아지면서 주유에 들어가는 돈은 부쩍 늘었다. A씨는 "주유소에서 휘발유 가격을 넘은 경유 가격을 보고 잘못 본 줄 알고 여러번 확인했다"며 "유류세를 인하한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가격이 너무 올라 차 끌고 다니기 부담스럽다"고 토로했다.
# 자영업자 B씨는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상 문자를 받고 한 숨을 쉬었다. 최근 5억원 가량 받은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3.09%에서 3.49%로 올랐기 때문이다. 연 0.4% 금리 인상이 되면서 연 200만원의 이자를 추가 부담하게 됐다. 가게 영업이익은 줄어든 상황에서 오히려 월에 17만원 꼴로 이자를 추가로 내게 된 셈이다. B씨는 "물가와 금리가 더 오르게 될 것이라는 뉴스를 봤다"며 "장사도 잘 안되는데 이자부담만 늘어나면서 생활이 더 팍팍해졌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경유, 외식물가 등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팍팍해지고 있다. 정부가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유류세 30% 인하 등 가용 카드를 동원하고 있으나 체감 효과는 낮고, 환율까지 급등해 공업제품·서비스 물가 등 줄줄이 오름세다. 소득은 그대로 내 월급만 안 오른다는 한숨이 나오는 배경이다.
10일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1~2월 누계 실질소득은 339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1.2% 인상에 그쳤다. 물가상승률이 5%에 육박한데 비해 저조한 상승률이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소득은 710만8000원으로 10.2% 인상된 것과도 대비된다.
실질임금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돈의 실질적인 가치를 말한다. 실질임금은 명목임금을 소비자물가지수로 나눠 백분율로 환산해 계산한다. 임금은 일정한데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은 감소하지만, 명목임금은 변화하지 않는다.
10일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300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의 1~2월 누계 실질소득은 339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1.2% 인상에 그쳤다. 사진은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모습. (사진=뉴시스)
사실상 소득은 그대로 인데 반해 최근 물가는 연쇄적인 도미노 현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을 보면 이날 오후 기준 전국 경유 가격은 리터당 1940원을 기록했다. 유류세 인하 전인 1921원보다 19원 높다. 경유가격은 유류세 30% 인하를 적용하기 시작한 이달 1일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난 3일 1904원으로 저점을 찍은 뒤 단숨에 원상복귀했다.
휘발유 가격도 마찬가지로 'V'자형 반등을 보였다. 이날 기준 휘발유 가격은 리터당 1943원이다. 유류세 인하폭 확대 직전인 4월 30일(1975원) 대비 32원 낮지만 지난 5일 저점을 찍은 뒤 역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원·달러 환율도 불안한 모습이다. 이날 오전 9시 11분 기준 달러 대비 원화 환율(서울 외환시장) 은 전날 종가보다 3.3원 오른 달러당 1277.3원이다. 환율은 2.0원 오른 1276.0원에 거래를 시작하자마자 1277.9원까지 올라 3거래일 연속 연고점을 경신했다. 2020년 3월 23일(고가 기준 1282.5원) 이후 2년 1개월여 만에 가장 높다.
미국의 물가 상승장기화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정책으로 인한 시장의 우려가 커지면서 '안전자산'으로 평가되는 달러 가치가 오른 영향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 교수는 "기업의 입장에서 가격을 올렸을 때 수요가 떨어질 것 같으면 환율 반영을 하지 않겠지만 지금은 그런상황이 아니다"라며 "환율 상승이 즉각 가격에 반영되면서 국내 유가도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유제품 뿐 아니라 석탄, 천연가스 가격등이 줄줄이 오르면서 3월 수입물가지수는 전달 대비 7.3% 오른 148.8로 집계됐다.
이는 석달 연속 상승이다. 등락률은 지난 2008년 5월 이후 13년 10개월 만의 최고치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 유탄을 맞은 석탄, 원유 및 천연가스 가격 급등으로 광산품 지수는 213.53을 기록했다.
원재료비, 운영경비 상승 등으로 국내 물가도 영향을 받는 모습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지난 4월 개인 서비스 물가는 1년 전보다 4.5% 올랐다. 2009년 1월(4.8%) 이후 13년 3개월 만에 가장 상승률이 높았다.
개인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 2∼8월에는 1.0∼1.1%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이후 점차 상승 폭을 키워 지난해 11월 3%대로 올라선 뒤 올해 2월에는 4%대로 올라섰다.
지난달 18일부터는 2년1개월 만에 사적 모임 인원·영업시간 제한 등 사회적 거리두기가 전면 해제되면서 수요 측 인플레이션 압력도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 4.8%에 대한 개인 서비스의 물가 기여도는 1.40%포인트다. 공업제품(2.70%포인트) 다음으로 물가 상승 기여도가 높았다.
고물가와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서민들은 빚 부담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가계대출 잔액을 보면, 1756조원으로 변동금리 비중은 약 76%에 달했다. 이를 바탕으로 계산하면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때 가계의 연간 이자 부담은 약 3조3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 교수는 "차기 정부에서 추경으로 30조원이 넘는 돈을 푼다고 하는데, 물가 인상은 불보듯 뻔한 상황"이라며 "물가가 오르면 서민들이 먼저 타격을 입게 되는 만큼 재정을 풀더라도 서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잘 조절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조언했다.
올해 임금 인상과 관련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 2월 8.5%로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한국노총 측은 "임금 인상 요구율 8.5%는 202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 3.1%와 소비자물가상승률 전망치 2.2%, 최근 협약 임금 평균 인상률 약 3%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10년 만에 물가 상승이 최대 폭으로 증가한 영향으로 노동자의 가구 생계비가 급증했고 코로나19로 억눌려온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도 높아진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용윤신 기자 yony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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