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피해자 위해 우려' 외면한 '신당역 살인사건' 참변
법원, 증거인멸·도주우려만 보고 영장 기각
현행법상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는 고려사항
전문가들 "고려사항 명시했으면 적극 고려했어야"
2022-09-16 15:52:55 2022-09-16 21:38:29
 
[뉴스토마토 김수민 기자] 불법 촬영과 스토킹 등 혐의로 기소돼 재판받던 30대 남성이 피해자가 근무하는 지하철역에 찾아가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지난해 피의자를 상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기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가 독자적 구속 사유로 명시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16일 경찰에 따르면 A(31)씨는 14일 오후 9시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내부 화장실에서 여성 역무원 B(28)씨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망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A씨와 입사 동기로 2019년부터 지속적으로 스토킹에 시달렸다고 한다. A씨는 불법 촬영 영상을 유포하겠다며 B씨를 협박하고 만남을 강요한 혐의로 두 차례 B씨로부터 고소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A씨는 2019년 1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B씨에게 문자메시지, 카카오톡 등을 이용하여 350여 차례 만나달라는 연락을 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B씨에게 고소당하자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13일까지는 합의를 종용하며 20여 차례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전달한 것도 드러났다.
 
지난해 10월7일 처음 고소됐을 당시 경찰은 이튿날 A씨를 긴급체포하고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현행법상 피의자 구속 사유는 주거부정, 증거인멸 우려, 도주 우려로 한정돼 있다.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 등 보복 가능성은 구속영장 발부 시 고려사항에 해당한다.
 
그러나 스토킹 범죄는 특별한 전조 없이 스토킹에서 살인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또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는 피해 정도가 다소 경미하다고 보여질 가능성이 커 영장 발부가 상당히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스토킹 범죄의 특수성을 고려해 피해자에 대한 위해 우려 등 보복범죄 가능성을 구속 사유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윤미 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스토킹 범죄는 강력 범죄의 뇌관이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며 "범죄의 특수성과 패턴을 고려해 현재는 고려사항일 뿐인 '피해자에 대한 위해 또는 재범 우려'를 구속 사유로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토킹 범죄를 대하는 법원의 소극적 태도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당연히 '피해자에 대한 위해' 등을 구속 사유로 새롭게 명시해야 한다"면서 "(그 전이라고 해도)고려사항이라고 돼 있으면 사유로 고려하는 등 형사사법기관 종사자들이 스토킹 범죄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기존에 있는 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의 안일한 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여러 강력사건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차장검사 출신인 최기식 변호사(법무법인 '산지')는 "스토킹 범죄 공판의 결심에서 징역 9년형이 구형됐다면 가해자가 엄청나게 집요하고 강하게 협박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검경이 당연히 피해자에게 붙어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형을 구형받은 만큼 법정구속의 가능성이 높고 위기를 느낀 가해자의 위험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그런 사정이라면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스크린해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위원회 등 기구를 가동했어야 했다"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또 "지하철 역사는 그 특성상 피해자의 동선이 노출되기 쉬운 곳"이라면서 "경찰이 피해자를 24시간 보호할 수 없다면 피해자 동료들에게 협조를 구해 피해자가 혼자 노출되는 일을 막았어야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같은 비극의 재발을 막으려면, 스토킹 범죄에 대한 사회안전망의 전면적인 점검과 개혁이 매우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당역 화장실 앞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 희생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수민 기자 su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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