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손 끝에서 피어나는 연주는 투명한 피톤치드를 연상시킨다. 나무 악기로 만들어 내는 공명의 울림과 고운 미성, 그리고 잠깐의 여백.
지난해 2월, 그를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컬음)의 본 이베어 같다고 생각했다. 장작을 태우는 소리처럼 따뜻한 질감의 1947년산 마틴 어쿠스틱 기타와 업라이트 피아노인 야마하 U3의 뭉뚝한 소리의 배합들. 단출한 구성만으로도 음악이 지닌 치유의 힘을 설파한 온라인 공연을 보고서다.[
(리뷰)팬데믹 시대, 제레미 주커·첼시 커틀러의 ‘음악 정원’]
그리고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저녁 무대. 뿅뿅 대는 노드 신디사이저를 주무르며, 그루비한 리듬을 타는 그를 보며 스펙트럼이 넓은 뮤지션이라고 다시 생각했다.
무대에 앞서 서면으로 만난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레미 주커는 "본 이베어(Bon Iver) 외에도 최근 들어서는 디존(Dijon), 톰 미쉬(Tom Misch), 리지 맥알파인(Lizzie McAlpine)의 음악을 많이 듣고 있다"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음악을 통해 제 자신과 제가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할 생각"이라고 했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저녁 무대에 선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레미 주커. 사진=프라이빗커브
"좀 더 정교하고 의미 있는 가사와 곡을 쓸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어요."
1996년생 쥐띠. Z세대 음악가의 대표 주자. 음악가인 부모님 밑에서 자란 그는 자연스레 고교시절부터 '베드룸 팝'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는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음악가로서 이례적인 이력이다.
"과학이 제가 가진 흥미 중 하나라면, 음악은 제 열정이에요. 고등학교 때는, 과학을 좋아하는 제 모습을 보고 제가 그쪽을 전공하기를 바랬던 생물 선생님이 계실 정도였어요. 개인적으로 뭔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보는 걸 좋아하다 보니, 음악작업을 할 때에도 기술적인 면에 집중하는 편인 것 같아요. 논리와 창의력 간 적절한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2015년 데뷔 EP 음반 'Beach Island'로 정식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EP 음반 'Summer,' 수록곡 'Comethru'는 대표곡이다. 방탄소년단(BTS) 뷔가 언급해 국내에서도 유명해졌다. 제레미는 "뷔를 포함한 BTS 멤버들 모두 좋다. 그 중 누구와 콜라보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저녁 무대에 선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레미 주커. 사진=프라이빗커브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첼시 커틀러와 협업한 음반 'Brent 1(2019)'과 'Brent 2(2021)'로는 따뜻한 포크풍 선율이 약동하는 어쿠스틱 곡들도 연작으로 선보였다. 진동 같은 세부적 소리의 결들까지 미세하게 신경 쓴 레코딩에선 이베어 같은 괴팍한 음향인의 아우라가 아른 거린다. 사랑의 본질을 꿰뚫으려는 짙은 가사도.(수록곡 ‘emily’와 ‘parent song')
"‘LOVE’라는 단어 자체가 참 신비로워요. 고작 네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일 뿐인데, 수많은 경험과 감정을 함축하고 있잖아요. 사람마다 워낙 사랑을 다양하게 받아들이다 보니, 사랑에 대한 제 관점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같아요."
평소 정신건강과 음악의 상관 관계에도 관심이 많다는 제레미는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누구나 어려운 순간은 겪기 마련이니,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음악을 만들 때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 편"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가사들을 핸드폰 노트(Notes)에 적어 뒀다가, 스튜디오에 가면 거기에 다양한 멜로디를 얹어보곤 하죠."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저녁 무대에 선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레미 주커. 사진=프라이빗커브
앞서 제레미는 2019년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바 있다. 이번 '슬라슬라' 무대로 3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그는 "팬데믹 이후, 여러 곳을 방문하면서 사람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어 정말 기쁘다"며 "격리하는 동안 제 라이브 무대와, 팬들에게 어떤 공연 관람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지에 대해 많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한국 팬들이 왜 유독 'comethru'와 'talk is overrated' 두 곡을 좋아해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고 감사해하고 있어요! 음악과 투어를 통해 뮤지션으로서 꾸준히 성장하고 싶어요. 최종적으로는 제 음악을 통해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닿고 싶어요."
지난 10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잔다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슬라슬라)' 저녁 무대에 선 미국 싱어송라이터 제레미 주커. 사진=프라이빗커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