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석동현(왼쪽부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놓고 그간 쉴 새 없이 치고받았던 여야가 대규모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초당적 협력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639조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와 민생법안 통과를 놓고 신경전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30일 154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 관련해 다음달 1일 오후 2시 행정안전부, 경찰, 소방청 등 관계부처 기관들로부터 현안 보고를 받기로 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긴급 비대위 회의를 열고 "정부·여당은 사고 수습, 사상자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이번 사태 관련해 초당적인 협력을 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여야는 31일 내년도 예산 심사에 돌입하자마자 신경전을 펼쳤다. 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이 XX' 발언 등을 문제 삼으며 정부 예산안을 꼼꼼히 따진 반면, 국민의힘은 새해 예산안이 이전과 달리 규모가 적다며 엄호에 나섰다. 이번에 상정한 소관 예산안은 이후 소위원회를 거쳐 내달 4일 의결될 방침이다.
31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진 외교부 장관, 권영세 통일부 장관,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등 정부측 참석자들과 윤재옥 위원장을 비롯한 외교통일위원들이 '이태원 압사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외교통일위 소속 김경협 민주당 의원은 "국회를 향해 '이 XX' 발언까지 하고, 지금 국회에 예산을 통과시켜 달라는 얘기인데 최소한 국회를 모독했으면 사과해야 하지 않느냐"며 지난달 미국 순방 도중 "국회에서 이 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이(날리면) X팔려서 어떡하나"고 말한 윤 대통령을 정조준했다. 민주당은 이에 윤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끝내 거절했고, 결국 민주당이 불참한 반쪽짜리 시정연설로 이어졌다.
이에 박진 외교부 장관은 "대통령의 사적 발언, 혼잣말 같은 사적 발언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맞섰다. 김 의원은 마이크가 꺼진 상태에서도 "'이 XX들'은 승인해달라고 하면 조용히 말없이 승인해 줘야 하냐"며 "간단한 문제가 아니질 않느냐. 대통령의 국회를 대하는 태도 문제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대한 모독이자, 국민에 대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국 의회면 사과하지 않았겠느냐"며 "너무 뻔뻔한 게 아니냐"고 꼬집었다.
같은 당의 윤호중 의원은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최한 '글로벌펀드 제7차 재정공약회의'에서 공여로 약속한 1억달러(약 1422억원)가 외교부 일반예산으로 잡힌 것에 대해 "국제질병퇴치기금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일반예산으로 전환됐다. 그전에 질병퇴치기금 수익구조를 개선하는 게 맞지 않냐"고 지적했다. 이에 박 장관은 "질병퇴치기금 수익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나 어떻게 될 지 확실치 않다"며 "예산(책정)이 안정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반면 이명수 국민의힘 의원은 "예산이 작년과 변화가 없다"며 "제가 해외공관에 나가 보니까 환차손 때문에 애로를 겪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규모가 적다"고 외교부와 통일부 예산안에 동조했다.
이종섭(왼쪽) 국방부 장관과 엄동환 방위사업청장이 31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여야는 오후 열린 국방위 전체회의에서도 정부 예산을 놓고 다른 태도를 보였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예산안을 보니 방위사업청이 대전으로 부분 이전을 하고 종합건물을 짓자고 하는데 부분 이전을 누가 결정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방사청에서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하자, 김 의원은 "부분 이전은 179억원 혈세가 낭비된다. 부분 이전에 반대한다"고 했다.
반면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3축 예산을 이번 예산안에 태워야 한다. 또 지연되면 천추의 한이 될 수 있다. 이것으로 인해서 방어력 구멍이 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며 "이번에 소위원회가 열리기 전에 어떤 식으로든 보고를 해주면 착수할 수 있는 돈을 태우겠다는 말씀드린다"고 했다. 이에 이 장관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여야는 민생법안을 놓고도 여전히 대치 중이다. 특히 원자재가격 변동분을 납품단가에 연동시키는 납품단가연동제,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게 하는 양곡관리법, 파업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청구를 예방하려는 '노란봉투법'은 여야의 대립 속에 국회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현재 합의의 여지가 보이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법안 표류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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