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김석기 사무총장 등이 지난달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손실액….'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화물연대) 총파업이 연일 들불처럼 번지고 있지만, 당정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강대강 대치 전선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여당이 노사 간 대화보다는 '불법 낙인효과'를 앞세워 겁박을 일삼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가 업시개시명령을 내린 이상 "화물연대와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며 업무복귀 외에 선택지를 없앤 게 대표적이다.
그사이 경제적 손실은 연일 커지고 있다. 정부가 추산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사태에 따른 손실액은 지난 일주일간 1조6000억원에 달한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에서 "화물연대의 집단운송거부로 물류대란, 수출 차질 등이 발생하면서 산업계 전반에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달 24일 시작된 화물연대 총파업이 이날 기준으로 9일째라는 점을 감안하면, 2조원 가량의 손실액이 발생한 셈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불법 파업'이라고 목소리만 높일 뿐 뚜렷한 안전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화물연대가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품목 확대는 법 개정 사안인 만큼 국회의 역할이 중요한 상황에서 여당은 용산 눈치만 보며 '법과 원칙'을 되풀이하는 모양새다.
당정은 화물연대 총파업을 이틀 앞둔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부랴부랴 긴급 당정협의를 열고 △안전운임제 일몰제 3년 추가 연장 △시멘트·컨테이너 외 품목 확대 불가 등을 협의했다. 화물연대의 일몰제 폐지 및 품목 확대 요구는 일절 반영되지 않았다. 지난 6월 총파업 이후 5개월간 손 놓고 있다가 정반대의 안을 내놓은 셈이다. 아울러 국민의힘은 같은 날 화주 책임을 삭제한 내용의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사실상 안전운임제를 무효화하려는 게 아니냐는 반발을 샀다.
화물연대를 향한 국민의힘의 비난은 날로 격해지고 있다. "국가 물류를 볼모로 삼은 정권 퇴진 운동"(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노조가 죽어야 청년이 산다"(주호영 원내대표) 등이 대표적이다. 민주당과 화물연대를 "불법 깐부"(장동혁 원내대변인)라고 지칭하며, "민주당과 민주노총이 주축이 된 대선불복 좌파연합이 체제전복 기회만 노리고 있다"(정진석 위원장)는 색깔론 공세까지 나서기도 했다. 레미콘 업계와 건설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한 당정 간담회를 지난달 28일과 29일 이틀 연속 개최하며 경영계 목소리를 대변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는 연일 강경 대응하는 대통령실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화물연대 파업을 '사회재난'으로 규정한 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을 가동했다. '쟁의행위로 인한 국가핵심기반의 일시정지는 재난에서 제외한다'는 재난안전법 시행령 제44조와 배치되는 것으로, 이례적인 결정이다. 지난달 29일 윤석열 대통령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면서 노정 갈등은 극에 달했다. 대통령실 내부에서 파업으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직접 화물연대와 대치하면서 여당으로선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민의힘이 법 개정을 주도할 수 있는 힘도 없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소위는 지난 2일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및 품목 확대 등이 담긴 화물자동차법 개정안을 민주당 단독으로 상정해 논의를 시작했다. 이에 국토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의회 폭거', '민주당은 민주노총의 하청'이라며 반발했다. 노조 파업에 대한 사용자의 무분별한 손해배상을 막는 노란봉투법 논의에서도 국민의힘은 속수무책이다.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을 '불법파업 조장법', '민주노총 방탄조끼'라며 강력 반대하고 있지만, 지난달 3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노란봉투법이 상정되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국민의힘은 뾰족한 타개책 없이 김도읍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본회의 상정을 막아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설사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을 믿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과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까지 뒤엉키면서 여당의 협상력 부재는 더욱 눈에 띈다. 국민의힘의 중진 의원은 "유례없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여당이 매우 어려운 처지긴 하다"면서도 "목소리만 크지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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