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강석영 기자] '김무성의 길이냐, 유승민의 길이냐.'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출마를 고심 중인 나경원 전 의원이 10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직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나 전 의원이 대통령실의 ‘찍어내기’를 돌파하고 당대표에 출마한다면, 최고의 시나리오는 2014년 7월 새누리당 전당대회의 재현이 될 전망입니다.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를 등에 업은 서청원 의원을 제치고 당대표에 당선됐습니다. 반면 최악의 시나리오는 유승민 전 의원의 길입니다. 현 정부와 반대되는 길을 걷다가 오래도록 배신자 낙인이 찍히는 것만큼은 피해야 합니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2일 오후 대구 수성구 범어동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대구·경북 신년교례회에서 신년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직에서 물러난 나경원 '결단의 시간'
나 전 의원은 이날 대통령실 김대기 비서실장을 통해 "대통령님께 심려를 끼쳐드렸으므로 사의를 표명합니다”라고 전달했습니다. 다만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와 관련해선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주변에 피력했습니다.
나 전 의원의 고민이 길어지는 이유는 ‘윤심(윤 대통령 의중)’입니다. 최근 저출생 대책을 두고 대통령실과 갈등을 빚다 결국 사퇴까지 이어졌습니다. 표면상으론 나 전 의원이 정부와 기조를 맞추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면엔 ‘친윤(친윤석열) 후보’인 김기현 의원을 밀어주기 위해 대통령실에서 교통정리를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입니다.
윤심과 멀어졌다고 당권에서도 멀어진 것은 아닙니다. 2014년 새누리당 전당대회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구도는 박근혜 청와대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던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서청원 의원과 ‘비박(비박근혜)계’ 핵심 김무성 의원의 대결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빨간 옷을 입고 전당대회 현장을 찾는 등 사실상 지침을 내렸다는 평가에도 승리는 김 의원에게 돌아갔습니다. 대통령에게 지나치게 권력이 집중되는 상황을 막기 위한 당원들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분석입니다.
그러나 나 전 의원이 김 전 의원의 길을 가긴 어렵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 전 의원은 원조 친박이었고, 전당대회 당시 대통령에게 대립각을 크게 세우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실에서 나 전 의원을 대놓고 찍어내는 상황에서 김 전 의원처럼 중간자적 역할을 선택할 수는 없다는 취지입니다. 결국 대통령실에 굽힐 것인지 아니면 맞설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유승민 길 갈 땐 총선도 담보 못한다
나 전 의원이 ‘반윤(반윤석열)’의 대표 주자로 설 경우 유승민 전 의원이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실의 부정적 기류 속 나 부위원장의 당권 도전 자체가 반윤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유 전 의원처럼 현 정부에 맞서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다면 보수정당에서 쌓아온 지분마저 잃을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이 당 대표 출마를 포기할 가능성도 점쳐집니다. 이날 사퇴 의사를 밝히기 전 윤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과 만났다는 점에서 교통정리가 됐다는 분석입니다. 나 전 의원이 앞으로 다선 의원에 그칠 것인지, 대선 주자로 설 것인지, 자신의 정치 생명을 어디에 걸지에 따라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 전 의원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를 두고 당 안팎의 잡음이 커지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집권여당과 대통령의 ‘혼연일체’를 강조했습니다. 정 위원장은 이날 충남 예산군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충남도당 신년인사회’에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과 윤석열 대통령은 한 몸이라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국민의 윤석열 정부, 국민의힘 정부를 탄생시킨 것 아닌가”라고 말했습니다.
강석영 기자 ksy@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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