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대통령실 제공)
[뉴스토마토 장윤서 기자] 지난 7일 열린 한일 정상회담 결과가 연일 논란입니다. 강제동원 문제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가 개인적 감상을 언급한 것을 사죄라고 볼 수 있는지,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이 검증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두고 ‘해석 배틀’이 붙은 겁니다. '사실상 핵공유' 논란과 같은 상황입니다. 정부가 과대 포장하면 상대국이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건데요, 대통령실이 국내 비판 여론 잠재우기에만 치중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3월 한일 정상회담 이후 52일 만에 서울에서 두 번째 한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정부는 ‘12년 만의 셔틀외교 복원’이라고 의미를 부여, 적극 홍보했습니다. 윤 대통령도 지난 9일 국무회의 첫 발언에서 “기시다 총리가 일본 총리로서는 12년 만에 대한민국을 양자 방문했다”며 “한일 셔틀외교가 12년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양국 정상이 오가는 데에는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같은 자랑과 별개로,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해석이 분분합니다. 가장 논란이 된 대목은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의 역할 문제입니다.
양국 정상은 한국 전문가를 포함한 후쿠시마 오염수 시찰단을 파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일본은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오염수를 APLS(알프스·다핵종제거)를 거쳐 정화한 뒤 올 여름쯤 후쿠시마 앞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일본은 정화 처리로도 걸러내지 못한 삼중수소 농도가 안전기준 미만으로 떨어질 때까지 오염 처리수를 바닷물로 희석해서 내보내겠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 등은 삼중수소로 인한 암 유발 위험을 제기하며 ‘여름에 무조건 방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 유코 여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손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대통령실 제공)
"검증 아냐" 일본 반박에 무안해진 대통령실
대통령실은 안정성을 철저히 검증·평가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9일 “오염수 검증은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하고 있지만 오염수 정화 설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점검과 조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또 외교부도 같은 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제출한 현안 보고 자료에서 “(시찰단이)오염수 처분 관련 시설을 점검하고 자체 과학적, 기술적 분석에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이 즉각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 시찰단이 IAEA처럼 오염수의 안전성을 평가하거나 확인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실 설명과 정반대로 단순 시찰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양국 간 사실관계 공방은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때 벌어진 '사실상 핵공유’ 논란과 유사한 상황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한국의 환경과 먹거리 안전과 밀접한 만큼 국내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에 급급한 땜질 대응이라는 비판도 제기됩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동기자회견을 마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시다 방한, 후쿠시마 오염수 때문…윤 대통령 뒤통수 맞았다"
한국 시찰단의 면면을 볼 때, ‘단순 시찰’이라는 일본 주장에 힘이 실립니다. 정부는 수산물 영향평가를 담당하는 해양수산부 산하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 등에서 선출한 내부 전문가 파견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이 중 KIOST는 지난 2월 ‘후쿠시마 오염수 영향이 사실상 미미하다’는 연구 결과를 냈다는 점에서 철저한 검증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립니다. 또 시찰단의 활동 기간이 오는 23일부터 최대 3박4일에 불과해 철저한 검증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시찰 세부 일정 역시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 관계자 면담, 방류 시설인 해저터널 시찰 등이 주요하게 논의되고 있어, 검증보다 시찰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뉴스토마토>에 “기시다 총리가 애초 계획보다 일정을 앞당겨 한일 정상회담을 한 핵심 이유는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때문”이라며 “시찰단 파견으로 한국도 방류에 동의했다는 그림을 만들고, IAEA 최종 보고서를 통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를 깔끔히 매듭 짓겟다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양 교수는 “윤 대통령은 기시다한테 뒤통수를 맞았다”며 대만 시찰단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고 충고했습니다. 대만 시찰단은 시찰을 마친 뒤 국내 반대 여론에도 불구, 파견 한 달 만에 방류는 물론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재개까지 발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지난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시다 “가슴 아프다” 발언도 해석 배틀
과거사 문제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시다 총리는 정상회담 직후 공동기자회견에서 개인적 견해를 전제로 “많은 분들이 과거에 아픈 기억을 되새기면서도 미래를 위해 마음을 열어주신 데 대해 감명을 받았다”며 “저도 당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분들이 힘들고 슬픈 경험을 하신 데 대해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강제동원 피해자를 지칭한 발언이냐고 묻는 질문에 확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애매모호한 기시다 총리의 발언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습니다. ‘사죄’는 아니라는 게 중론입니다. 개인적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한일 양국에서 제기될 수 있는 비판을 최소화하겠다는 정치적 노림수였다는 겁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백보 양보해서 1/10만큼 진전된 발언이라고 해도,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았는데 우리 정부가 기시다 총리 발언을 포장하고 감싸주는 게 맞나”라고 지적했습니다.
장윤서 기자 lan4863@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