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한마디에 일대 혼란…전문가들 "국민 불안 야기 적절치 않아"
윤석열 대통령, '공교육 교과과정 내 수능 문제 출제' 언급
교육 현장이 쉬운 수능 의미로 받아들이자 정부 부랴부랴 수습 나서
교원단체 "경솔했다"…입시 전문가 "중간 난이도 문항 늘어날 듯"
2023-06-19 15:42:39 2023-06-19 18:12:48
 
 
[뉴스토마토 장성환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을 5개월가량 앞두고 '공교육 교과과정 내 수능 문제 출제'를 언급해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윤 대통령 발언 이후 교육부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함과 동시에 수능 문제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 감사 계획을 밝히면서 교육 현장이 수능 난이도 하향의 의미로 받아들이자 대통령실과 정부 측은 "그런 의미가 아니다"라고 진화에 나서 더욱 갈피를 잡기 힘든 상황입니다.
 
교원단체들은 윤 대통령의 발언이 그 진의와 상관없이 국민들 마음만 불안하게 할 수 있어 적절하지 않았다고 비판했습니다. 입시 전문가들의 경우 윤 대통령 발언으로 최근의 어려웠던 이른바 '불수능'보다는 올해 수능 난이도가 쉬워질 수 있으나 수능의 목적과 특성상 최소한의 변별력은 갖출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대통령 발언으로 교육계 혼돈…"날벼락 맞은 기분"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5일 대통령실에서 열린 브리핑을 통해 "대통령께서 수험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능과 관련해 변별력은 갖추되 학교 수업만 열심히 따라가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출제하고, 학교 수업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은 배제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교육부는 다음 날인 16일 지난 6월 모의평가 난이도 조절 실패의 책임을 물어 대학 입시를 담당했던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을 대기 발령 조치하고 후임으로 심민철 디지털교육기획관을 임명했습니다. 윤 대통령 발언 하루 만에 대입 담당 국장이 교체된 것입니다.
 
게다가 총리실과 함께 평가원 감사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혀 올해 수능은 예년보다 쉬워질 것이라는 관측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러자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대통령 발언은 쉬운 수능, 어려운 수능에 대한 언급이 아니다"라고 부랴부랴 진화 작업에 나섰습니다. 윤 대통령은 수능 난이도가 아닌 방향성을 지시했다는 것입니다.
 
이 부총리는 19일 국회에서 열린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 및 사교육 경감 관련 당정협의회'에서도 "공정한 수능은 결코 물수능(쉬운 수능)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또한 이날 당정은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의 수능 출제를 배제하고, 지난 문재인정부에서 폐지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자사고)·외고·국제고 등을 존치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대통령 발언으로 인해 교육 현장은 혼돈을 겪고 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SNS 등을 통해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날벼락을 맞은 기분", "그럼 지금까지는 평가원이 수능 문제를 학교 교육과정 밖에서 출제했다는 거냐", "수능 방향과 기조를 대통령 말 한마디에 결정하는 게 맞냐", "대통령 발언 때문에 수능 문제가 쉬워져서 '물수능' 되면 이로 인한 혼란과 피해는 어떻게 할 거냐" 등의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공교육 교과과정 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 출제'를 언급하면서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진은 윤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수능, 지금까지도 공교육 교과과정 안에서 문제 나와"
 
교원단체들도 윤 대통령이 발언의 파급력 등을 고려해 신중했어야 한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형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수능 문제가 변별력을 위해 너무 어려워지고 있는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기는 한데 대통령 말 한마디로 쉽게 바꿀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며 "모든 일에는 절차와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과 같은 방식은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고 꼬집었습니다.
 
한성준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도 "대통령 발언의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들이 불안해 할 수 있는 내용을 언급한 부분은 경솔했다"면서 "대통령이 교육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 정말 사교육비를 줄이고 싶다면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고,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입시 전문가들은 지금까지 수능에 나왔던 고난이도 문제가 공교육 교과과정 밖에서 출제됐다는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합니다. 수능은 공교육 교과과정 안에서 문제를 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아울러 윤 대통령과 정부, 여당이 한목소리로 수능 킬러 문항(고난이도 문항) 배제를 강조한 만큼 중간 난이도 문항으로 변별력을 확보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오종운 종로학원 평가이사는 "공교육 교과과정 내 문제 출제와 난이도는 엄연히 다른 문제"라며 "이번 일로 수능의 전체적인 난이도는 쉬워질 수 있으나 최소한의 변별력은 확보해야 하므로 중간 난이도 문항 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을 듯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 소장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수능 문제를 어렵게 내긴 힘들어 보인다. 이로 인해 '물수능'을 많이 예상하겠지만 변별력은 갖춰야 하는 만큼 킬러 문항이 없어진다면 준킬러 문항으로 약간 어렵게 문제를 낼 수 있다"면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불안해져서 사교육 시장으로 더 몰릴 가능성도 있다"고 의견을 표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공교육 교과과정 내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문제 출제'를 언급하면서 교육계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 학원에서 수험생들이 공부하고 있는 모습.(사진 = 뉴시스)
 
장성환 기자 newsman9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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