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건설부터 LH까지 ‘순살’ 논란이 큽니다. 원재료를 빼먹는 건 오래된 비자금 수법 중 하나입니다. 빼먹기 쉬운 원재료 중 철근이 걸린 게 아닌지 국민에게서 의심이 번집니다.
철근이 빠졌으면 2가지 원인을 추정 가능합니다. 건설사가 철강사에 주문했는데 뒤로 빼돌렸거나 애초에 주문하지 않았거나 입니다. 논외는 있습니다. 설계사의 실수입니다. 그런데 조사 중에 파악한 순살 건물이 벌써 10여개를 넘어갑니다. 여러 사례 설계사가 동일인물일 수 없는데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결과적으론 회사 책임을 축소하는 가장 좋은 선택지일 테죠.
사측 고의라면 주문하고 뺐을 경우 빼돌린 철근을 어딘가에 되팔았을 것입니다. 과거엔 그렇게 비자금을 남겼습니다. 애초 주문하지 않았다면 구매했다고 장부에 분식했을 법합니다. 그렇게도 비자금을 남깁니다.
두가지 모두 직원 개인 일탈로는 불가능합니다. 개인이 철근을 되팔기가 어려우니까요. 철근을 중고판매 사이트에 올릴 순 없는 노릇입니다. 이 경우 건설사를 넘어 철강업체까지 공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빠진 철근이 한두개가 아니니 장부도 조작했을 수 있습니다. 매출원가나 재고자산에는 빠진 철근이 가상으로 존재할 테니까요. 그게 합리적 의심입니다.
허위주문한 장부조작도 개인만으론 불가능해 보입니다. 철근을 빼돌릴 실무와 회계담당자 간 손발이 맞아야 하고 장부는 윗선에서도 꼼꼼히 확인합니다. 어쩌면 철강업체로부터 구매했다는 허위내역 증거도 남겨야 합니다. 과거에 비추면 철강업체는 담합 적발도 많았지만 수요처인 건설사와 거래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허위장부를 돕는 일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업계 관행과 상식선에 기초한 추론입니다. 사실을 확인하려면 회계감리가 필요합니다.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 경찰수사만으로 그치지 말고 금감원이 나설 차례입니다. 요즘 금감원의 수완이 좋다고 재계에서 소문이 자자합니다. 정말 그런지 금감원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능력발휘할 사안입니다.
국민연금도 역할이 있습니다. 철근 사태로 인한 재공사로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됐습니다. 그 손해분을 회복하기 위해 주주대표소송을 거는 것은 국민연금 몫입니다. 유독 금융권, KT, 포스코 등 소유분산기업 인사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조해온 국민연금입니다. 이는 연금운용수익에 미칠 영향이 애매합니다. 되레 낙하산 논란으로 악영향이 우려됩니다.
엄한 일에 매달리지 말고 연금수익과 직결되는 회사 손해분 회복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게 더 수탁자책임에 어울립니다. 연금이 언제 바닥나니 하는 얘기가 국민은 지겹습니다. 해법은 단순합니다. 주주 권리인 배당 확대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일환으로 회사 손해분을 보전해 배당이익을 지키는 일도 국민연금 역할입니다.
그렇게 순살사태 책임 소재도 회사 이사에게 물어야 합니다. 회사 손해가 발생한 과정에서 이사 의무를 해태한 것에 대한 법리적 판단은 아직 미결입니다. 동국제강 담합 사건에 대해 일반주주들이 걸은 과징금분 주주대표소송은 하급심에서 이사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책임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일반주주들이 최종 승소해도 과징금은 회사에게 돌아갑니다. 대승적 결과를 위해 일반주주들이 희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힘겹게 싸우는 동안 국민연금은 왜 손놓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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