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엔씨소프트(036570)가 시행착오 끝에 사업 다각화 행보를 접고 본업인 게임에 집중하는 한편, 인공지능(AI) 시너지 역량을 키우려 합니다. 전세계에서 벌어지는 AI 전쟁에서 게임 회사만이 가진 경쟁력을 어떻게 살리는지에 따라 엔씨의 미래 가치가 달라질 전망입니다.
엔씨소프트 판교 사옥. (사진=엔씨소프트)
엔터 사업 포기하고 본업에 집중
엔씨는 올해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포기하고 본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엔씨는 올해 5월 엔터테인먼트 자회사 '클렙(KLAP)'의 보유 지분 66.67%를 기존 주주에게 전량 매각했습니다. 클렙은 2020년 7월 엔씨가 8억원을 출자해 세운 자회사로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 서비스용 콘텐츠 기획과 제작을 담당했습니다.
엔씨는 2021년 1월 클렙을 통해 모바일 K팝 팬덤 플랫폼 유니버스를 134개국에 서비스했는데, 이용자가 매달 이용료를 내면 연예인이 직접 메시지를 보내는 식이었습니다. 경쟁 서비스는 하이브 '위버스'와 SM '버블'이었습니다.
클렙은 김택진 엔씨 대표의 동생인 김택헌 엔씨 수석부사장이 대표를 맡아 엔터테인먼트 사업과 AI, 게임의 시너지를 도모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적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클렙은 2021년 매출 115억원, 영업이익 17억원을 기록했지만 2022년 매출 107억원, 영업손실 4억원으로 내리막을 걸었습니다. 결국 지난해 12월 김택헌 전 대표가 클렙에서 물러났습니다.
엔씨는 올해 1월 SM 계열사 디어유에 유니버스를 매각했고, 클렙 대표이사를 맡았던 이찬규 엔씨 재무관리실장도 5월 사임했습니다. 엔씨는 클렙 지분 전량 매각 목적이 엔터테인먼트 사업 정리와 게임 사업 집중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바르코 대표 사진. (사진=엔씨소프트)
새 돌파구 지목된 AI…게임·제약·금융·교육 공략
새 돌파구는 그간 연구해온 생성형 AI를 통한 수익 창출입니다. 엔씨는 지난달 공개한 AI 언어모델 통합 브랜드 '바르코'로 디지털 휴먼 제작과 게임 개발 생산성 향상이 가능하다고 설명합니다.
엔씨는 고성능 언어모델인 '바르코 LLM(거대 언어 모델)'을 8월 출시했습니다. 기초, 인스트럭션, 대화형, 생성형 등 네 개 모델로 나뉩니다. 중소 업체와 개인이 자연어 처리 기술을 구독형으로 사용하는 식입니다.
특히 엔씨가 내년 상반기 상용화할 '바르코 스튜디오'가 관심을 끄는데요. 바르코 LLM 기반 생성 AI 플랫폼 3종인 이미지 생성툴(VARCO Art), 텍스트 생성 및 관리툴(VARCO Text), 디지털휴먼 생성 및 편집, 운영툴(VARCO Human)입니다. 게임 개발에 필요한 기획과 아트 등 분야에서 효율성을 끌어올리는 게 엔씨의 목표입니다.
엔씨가 바르코 스튜디오를 자체 게임 개발에 쓰는 첫 사례는 콘솔 신작 '프로젝트 M'으로 관측됩니다. 프로젝트 M은 게이머가 얻은 정보에 따라 이야기 전개가 달라지는 상호작용 기반 액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엔씨는 지난 4월 이 게임 개발에 AI가 쓰인다고 밝혔습니다.
엔씨는 바르코 LLM 기반으로 AI 연구와 사업에 나서고 교육과 금융, 바이오 분야 등 파트너들과 협업해 전문 지식을 결합한 도메인 전용 모델도 선보일 계획입니다.
엔씨 관계자는 게임과 AI를 통한 큰 그림에 대해서는 "게임이라는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서"라며 "100명이 만들던 걸 10명이 할 수 있을 정도로 생산성 측면에서 많은 바람이 불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습니다.
이어 "오랜 기간 공 들여 만들려는 게임을 더 적은 인력으로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면 전체적인 품질이 올라갈 것"이라며 "이미 만든 이 기술을 게임에만 쓰지 않고 다른 곳에도 쓸 수 있도록 투 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엔씨소프트는 ‘프로젝트 M’에 AI 기술을 적용해 상호작용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사진=엔씨소프트)
게임 경쟁력, 범용성으로 이어져야
그러나 마냥 장밋빛 전망을 하기엔 아직 이른 상황입니다. 학계에선 게임에서의 자연어를 다른 분야에 적용하는 능력과 창의적 인재 확보·관리 능력이 엔씨의 AI 사업 성장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강장묵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게임은 종류별, 참여자별로 고유한 언어 모델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전제했습니다.
이어 "거대 범용 모델로 가는 네이버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과 비교하면 LLM 경쟁력에 한계가 보이겠지만, 네이버가 규모 면에서 경쟁이 안 되는 데도 도전하는 이유는 한국어라는 도메인 경쟁력 때문"이라며 "언어 사용 환경이 어떤 특수성을 갖느냐가 중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강 교수는 "게임 내 언어 참여자 간 신조어와 축약어 등 우리 사회와 문화, 언어 등을 잘 반영한 학습 모델이 갖는 경쟁력을 낮게 봐선 안 된다"면서도 "게임에서의 자연어를 일반 범주 서비스로 전환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사업 확장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강 교수는 "미국의 국력이 IT에서 나왔듯, 이제 LLM이 차세대 성장판"이라며 "MS 언어 모델이 성장의 저력이 된 것처럼 게임 시장에서 언어 모델로 내일을 준비하면, 기업의 미래 가치가 높아져서 우상향 할 수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아울러 "창의적 인재를 많이 뽑고 그에 맞는 기업 문화를 유지해야 '대박' 날 사건이 생길 것"이라는 단서도 덧붙였습니다.
엔씨도 이같은 점을 염두에 두고 LLM에 공을 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앞서 엔씨는 바르코 사전학습 데이터에 법률과 특허, 한국어 일상 대화 모음집과 한국어·영어 뉴스 등이 포함됐다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게 어느 정도 수준까지 다양성을 띄고 또 구체화될 수 있을지가 관건입니다. 엔씨는 바르코 LLM 관련 투자액은 물론 전체 AI 투자 규모를 밝히지 않고 있는데요. 국내 다른 기업들의 경우엔 조 단위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네이버는 지난달 2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 콜(다중전화회의)에서 2017년부터 AI 누적 투자액이 1조원 이상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범종 기자 smil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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