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엄지손가락에 거스러미가 보였습니다. 손톱 옆에 가시처럼 살갗이 일어난 겁니다. 그냥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오른쪽 손가락을 동원해 기어코 뜯었습니다. 따끔은 잠시. 손가락이 퉁퉁 부어 오릅니다.
사흘을 참다참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병원에 갔습니다. 회사 주변 피부과를 검색해 갔지만, 문전박대입니다. “여기는 미용전문이지 그런 진료는 볼 의사는 없다”는 겁니다. 몇군데를 검색해 점심시간 내내 돌아서 겨우 “그런 진료도 본다”는 병원을 찾았습니다. 무슨 환자가 그리 많은 지. 한참 기다려 겨우 의사를 만나 살갗을 찢고 고름을 빼냈습니다.
진료와 처치에 걸린 시간은 5분 남짓. 하지만 예약없이 간 터라 병원에 머문 것은 1시간이 넘었습니다.
세계 어디든 마찬가지겠지만, 한국에서 아이 키우기 힘듭니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 진료 문제도 한몫 할 겁니다. 콧물 감기에 소아과 진료를 갈 경우 짧게는 반나절, 길게는 한나절은 후딱 잡아 먹습니다.
아이를 대신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프면 맞벌이의 경우 둘 중 하나는 반차나 연차를 내야 합니다. 한번 아프고 말면 그만인데, 감기가 잘 떨어지지 않는 경우는 부모가 돌아가면서 연차를 써야 합니다. 회사에 미안한 건 기본이겠지요.
출산율이 심각하다지만, 소아과에 가면 아이들이 바글바글합니다. 3시간 기다려 3분 진료. 그래도 그 곳에 가야 합니다. 돌아보면, 동네에 소아과가 없습니다.
인내를 배우는 병원 대기
병원에 가면 대기시간이 깁니다. 주말에는 ‘오픈런’을 해도 접수 후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건 다반사입니다. 예약 잡기도 쉽지 않습니다. 당장 아픈 판인데, 예약을 잡으면 일주일 이후 오라고 하니, 그저 후딱 가서 자리잡고, 대기줄이 빨리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서울에 거주하니 몇 시간 안에 진료를 볼수 있습니다. 지방은 병원 한번 가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지난해 6월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주관한 ‘2023년 의대협회 정책포럼’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사인력 10명 중 8명(75.6%)은 서울과 경기, 인천, 대전, 대구, 광주, 울산, 부산 등 도시에 있습니다. 농어촌에는 의사인력 3.9%만이 있습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3명(한의사 제외 땐 2.0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3.5명)의 65.7%(한의사 제외 57.1%) 수준입니다.
OECD 회원국 평균보다 2배 이상 높은 1인당 의료이용량을 반영하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OECD 평균 26.3%~28.6% 수준입니다. 즉, OECD 국가 평균에 비해 의사수가 30%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들
최근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의사 및 관련단체도 할 말이 많을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들에게 ‘환자를 제일 먼저 생각하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들먹이는 것은 ‘순수한 사치’일 지도 모릅니다.
의사단체 주장처럼 정부가 세밀한 계획없이 밀어붙이는 면도 분명 있습니다. 그렇지만 병원 좀 마음 편하게 갈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12월 보건의료노조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89.3%는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밝혔습니다. 85.6%는 의협이 진료 거부나 집단휴업에 나서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전국 성인남녀 1002명 대상·2024년 2월13~15일)에서도 의대 증원이 긍정적인 점이 많다고 한 응답자 비율이 76%에 달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선생님’ 붙는 직업은 교사와 의사밖에 없습니다. 판사와 검사, 변호사 등도 ‘사’가 붙지만 선생님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그만큼 의사와 교사는 우리 사회가 존경한다는 의미가 큽니다.
의사 선생님들, 제자리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사람 목숨, 사람 아픈 것 가지고 투쟁에 나서는 건 아닙니다.
오승주 사회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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