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지윤 기자] 연금개혁 방안을 논의해온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연금특위)가 최종 개혁안 도출에 실패하면서 윤석열 정부의 연금개혁이 '구호'로만 그치는 양상입니다. 연금개혁 시기와 방향은 장외 메아리로 맴돌 뿐, 오히려 이념 논쟁에만 날을 세우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여야 간 입장 차는 단 '2%포인트'로 소득대체율을 43%까지만 올릴 수 있다는 국민의힘과 45%는 돼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 입장이 맞서고 있습니다. 21대 국회가 폐원하는 29일 전 개혁 논의가 이뤄질지 미지수인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소모적 논쟁은 멈춰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특히 일각에서는 재정 투입 시기를 놓칠 경우 미래 세대가 '국내총생산(GDP) 10%'를 짊어져야 하는 만큼, '3115(국민연금 보험료 3% 인상, GDP 1% 재정 투입, 기금 운용 수익률 1.5%포인트 개선)' 개혁안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개혁 구호만, 이념 칼끝만
연금개혁은 윤석열 대통령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입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대통령 직속 공적연금개혁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습니다. 또 대선후보 토론회에선 "정권 초기에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개혁에 시동을 건 시기는 2022년 5월이었습니다.
지난 1일 열린 비상 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에서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연금 개혁 관련 기사 스크랩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대통령 직속 개혁 기구는 설치되지 않고 그해 7월 국회 연금특위가 출범했습니다. 3년 차를 맞는 동안 개혁이 제자리걸음이라는 핀잔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올해는 시민대표단 500명이 참여하는 '연금개혁 공론화 위원회(공론화위)'를 꾸려 여론을 살핀 결과, 지난달 4차례 걸쳐 공개토론회를 진행한 시민들은 '소득 보장론'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측은 '미래세대 재정 부담'과 '공론조사 과정 오류'를 이유로 또다시 반대 입장을 표했습니다.
윤 대통령이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 "연금개혁을 22대 국회로 넘기자"고 말한 뒤 막판 여야 막판 합의 가능성은 사라졌습니다.
국민연금법상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하는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발표했지만 구체적 수치 없이 24개 시나리오만 제시했을 뿐입니다.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 사회복지학자로 진보 성향에 가까운 소득 보장파와 재정학자가 주축인 보수 성향의 재정 안정파는 연금개혁이 '시대적 과제'임을 알면서도 서로를 향해 총질하기 바빴습니다.
연금특위 민간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우창 카이스트 금융공학 교수는 "역사적으로 성공한 연금개혁 사례를 보면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처럼 최고 의사결정자인 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거나 독일이나 캐나다와 같이 주무부처 장관이 전국을 돌면서 시민을 설득해 나가는 것인데 지금 정부는 두 개 다 아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노무현 정부 때를 돌이켜보면 거의 탄핵 직전이었던 임기 말 지지율이었다"며 "그럼에도 당시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고향 같은 진보 진영에서 죽을 때까지 욕을 먹을 걸 알면서도 재정 안정에 힘을 실은 개혁을 밀어붙였다"고 말했습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금 규모의 현 연금개혁 제도와 ‘3115 개혁’ 뒤 비교. (그래픽=뉴스토마토)
서로가 알지만 말 못 하는 '재정 투입'
국민연금 개혁이 시대적 과제로 떠오른 배경엔 '저출생 고령화'가 있습니다. 인구구조가 역피라미드 형태로 급격히 변하면서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이 앞당겨졌기 때문입니다.
기금이 고갈되면 언젠가는 그러고 싶지 않아도 연금을 지급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보험료율을 35% 내외로 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2월 발간한 ‘국민연금 구조개혁 방안’ 보고서에서도 연금개혁이 1년 지체될 때마다 늘어나는 52조원 재정 부족분을 국가가 일방 재정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누구도 '재정 투입'은 쉽게 말하지 못합니다. 보험료율 1998년 이후 30년 가까이 조정하지 못한 것처럼 세금을 끌어쓰는 재정 투입은 국민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햔재 공적연금 재원을 가입자 보험료와 기금만으로 마련하는 나라는 사실상 우리나라뿐입니다.
한국 정부의 공적연금 재정 투입 규모는 지난 2019년 기준 연간 정부 지출의 9.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8.1% 절반 수준에 그쳤습니다. 아이슬란드를 제외하고 OECD 국가 가운데 공적연금 지출 비중이 가장 낮았습니다. 국민연금에는 연간 정부 지출은 약 0.2%(1조원)에 불과했습니다.
국고 지원이 미뤄질수록 결국 재정 부담은 늘어납니다. 기금 고갈 뒤 국고 지원이 시작되면 국가 재정은 수익을 내기도 전 곧바로 퇴직자 연금 급여로 쓰입니다. 이미 국민연금의 5% 수준인 공무원연금은 내년 약 10조원 연금 급여 보전금이 국고에서 나가게 됩니다.
국회 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위원인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연금개혁 불발 규탄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미래세대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재정 투입을 찬성하는 쪽은 "국민연금 보험료 3% 인상, GDP 1% 규모 재정을 국민연금에 투입하는 동시에 기금 운용 수익률을 1.5%포인트 개선하면 소득대체율 50%를 목표로 두더라도 기금을 영원히 유지할 수 있다"고 분석합니다. 이른바 '3115' 개혁입니다.
김우창 교수는 "지금 재정 투입 시기를 놓치면 미래 세대는 GDP 10%씩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며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통상 연금 기금이 바닥을 찍을 만큼 완전 망한 뒤 연금개혁이 이뤄진 다른 나라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기에 지금이라도 소모적 논쟁은 멈춰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세종=임지윤 기자 dlawldbs20@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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