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들먹일 때부터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친기업 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니요. 방법은 자본시장 제도를 선진화시키는 겁니다. 그동안 개선 시도는 있었지만 번번이 대기업 반발에 막혔습니다. 그걸 친기업 정부가 하겠다는 겁니다.
그런데 전개가 묘합니다. 당정은 코리아디스카운트 원인이 상속세 탓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총수일가가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 사익편취하거나 주가를 의도적으로 누른다는 논리입니다. 이는 여론의 상식에도 부합합니다. 하지만 해법이 이상합니다. 상속세를 없애겠다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친기업 정부 다운 해결책입니다.
미국은 시장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법과 자본시장 제도를 강화했습니다. 그런 외국계 투자자가 보기에 제도가 미비한 한국이 못미더운 겁니다. 그러니 디스카운트가 생길 수밖에요.
상속세 탓에 부정수단이 존재한다고 칩시다. 상속세를 없앤다고 수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단을 근절할 제도가 작동하지 않으니 부정한 동기를 품기도 쉽습니다. 상속세가 없다고 사익편취할 유인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단적인 예로, 3, 4세 승계 과정에서 계열분리나 경영권 다툼이 있습니다. 여기에 지분확보할 재원이 필요하고 부정행위에도 손이 갑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총수일가가 사익편취할 유인이 상속세뿐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애초 상속세를 없애주려고 디스카운트 얘길 꺼냈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재계도 여느 때보다 상속세 목소릴 높입니다.
물론 상속세를 없애려면 거대 야당이 있는 국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법 전문가는 이번 세법개정안에 밸류업, 스케일업 등으로 포장된 상속세 계책이 담겨 있다고 말합니다. 코리아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내세운 밸류업이 상속세 인하 결론에 맞춰 짜여졌다는 겁니다. 특히 모두 시행령 개정 사안이라, 국회도 거치지 않습니다. 때문에 여론이 둔감해지면 시행되기도 쉽습니다.
배당, 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 주체는 기업인데 그걸 잘했다고 개인주주에게 세제 혜택을 줍니다. 지분이 가장 많은 최대주주가 가장 많은 세제 혜택을 누릴 테죠. 더욱이 기회발전특구에서 가업상속공제를 받으면 상속세가 사라집니다. 물론 가업상속공제는 중견기업까지 대상이죠. 그 중견범위를 확장하는 내용도 이번 세법개정안에 담겼습니다. 재계도 가업상속공제를 대기업까지 확장하라고 목청을 높입니다.
대통령은 국회를 통과한 법안들에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선출한 국회를 피해 시행령으로 부자감세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4대 재벌은 전경련(현 한경협)에 복귀하고 회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삼성전자 준법감시위에서 김병준 한경협 고문을 지목하며 정경유착을 우려했지만 회비를 내는 결론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검찰시절 뇌물죄를 수사하던 재벌 총수들은 함께 부산에서 떡볶이를 먹었습니다. 정경유착을 낙수효과로 덮을 심산일까요. 그 낙수효과 나마 있으면 다행이겠습니다.
이재영 산업1부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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