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송정은 기자] 원자재 가격 인상 등으로 공사비가 지속 상승하는 가운데, 자금력이 풍부한 대형 건설사가 시공하는 아파트 위주로 후분양 선호 현상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건설경기 침체가 길어지자 수익성 악화를 우려해 조합 등에서도 준공 이후인 2~3년 뒤로 분양 시점을 늦추고 있는 겁니다. 여기에 하자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알려지면서 후분양제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건데요. 다만 자금여력이 있는 일부 대형사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소건설사들은 자금 압박에 후분양제를 선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점진적으로 후분양제로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서울 영등포구·동작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사진=송정은 기자)
서울 시민 약 80% "후분양제 도입 필요해"
4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와 한국주택금융공사(HF)가 발간한 '후분양제 개선을 위한 제도개선 연구'에 따르면 2006년 발산8단지를 시작으로 2021년 말까지 후분양으로 공급된 아파트는 총 8만7416가구에 달합니다.
후분양 아파트는 SH 등 공공사업자를 중심으로 공급량이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SH는 지난 2022년 초 서울시민들의 주거선택권을 강화하기 위해 기존 건축공정률 60~80% 공급에서 90% 공급으로 후분양을 강화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SH 측은 당시 "선분양은 공급자가 제공하는 조감도나 견본주택만을 참고하여 청약한다"며 "후분양은 청약자가 직접 시공현장을 살펴볼 수 있고 실물에 가까운 아파트를 확인 후 청약을 하기 때문에 합리적인 선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SH에 따르면 실제 분양시장에서도 후분양 도입을 필요로 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래프=뉴스토마토)
SH는 2023년 6월 1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웹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73.6%가 후분양 아파트 주택 구매의향이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또 전체 응답자의 79.6%가 후분양 아파트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최근 분양시장에서도 서울 강남권 등 우수한 입지를 지닌 지역을 중심으로 후분양 아파트가 늘고 있습니다. 최근 청약이 진행된 서울 서초구 ‘래미안 원펜타스’, 강남구 ‘래미안 레벤투스’ 모두 후분양으로 공급됐는데, 청약 경쟁률이 세자릿 수를 넘었습니다. 후분양임에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돼 시세차익을 기대할 수 있었기에 거둔 성적입니다. 강남 외에도 강서구의 '더 트루엘 마곡 HQ', 동작구의 '상도푸르지오클라베뉴'도 후분양을 선택했는데, 예상보다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후분양 아파트는 분양 중 중도금이 감소하기 때문에 중도금 이자비용 등을 절감시킬 수 있다"며 "입주 시기에 근접해 분양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에 입주 시점 주택가격 하락에 따른 소비자 피해를 방지할 수 있고 소비자는 자금 마련 계획을 보다 합리적으로 수립할 수 있는 장점도 지닌다"고 설명했습니다.
'자금 마련' 중소건설사·수분양자 부담…점진적 확대 고민해야
다만 후분양제가 가진 구조적 단점도 있습니다. 바로 '자금마련'입니다. 건설사는 선분양을 통해 미리 공사자금을 확보해 사업안정성을 제고하고 금융기관도 중도금 대출로 건설금융을 간접적으로 확대할 수 있습니다. 반면 후분양제에서는 선분양에 비해 단기간에 자금을 마련해야하는 부담이 생깁니다. 수분양자 역시 단기간에 중도금을 마련해야 하는 압박이 있습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선분양제는 건설업체가 분양자들로부터 선금과 중도금 등을 수령해 공사자금을 조달하는 일종의 무이자대출방식"이라며 "후분양제는 건설업체가 PF대출 등을 통해 직접 자금을 충당해서 공사를 선진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소요되는 금융비용이 분양가에 반영되고 분양시점에는 주변 시세에 맞춰 분양가가 조정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래서 최종 분양가가 선분양제에 비해 높아질 우려도 있고 이는 구매자가 부담해야 하는 몫이다"라며 "혹시라도 분양시점에서 미분양이 다수 발생한다면 선투입된 자금으로 인한 금융비용까지 더해져 해당 건설업체의 사업손실은 더욱 커진다. 자금 여력이 없는 건설사가 선택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송정은 기자)
여기에 PF 리스크 우려가 여전한 상황에서 후분양제는 중소건설사에게 더 큰 압박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고준석 연세대 경영전문대학원 상남경영원 교수는 "PF 대출 약 135조 중에 3.6%가 연체 중인 상황"이라며 "자체적 자금 조달을 해서 후분양제로 시공할 건설업체들이 과연 얼마나 될 지 의문이다. 후분양제 확대를 꼼꼼히 점검해봐야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은 후분양제 도입 확대는 필요하지만 선분양제와 혼용을 통해 건설사들이 점진적으로 도입해 후반양제 시행에 따른 시장 충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권대중 서강대 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선분양의 경우 계약금 내고 중간에 중도금 50~60% 내고, 나머지 잔금 내는 기간 동안 2~3년 동안 여유가 생긴다. 반면 후분양제는 그렇지 못해 무주택자가 내 집 마련하는 데는 부담이 클 수 있는 단점도 존재한다"며 "후분양을 하게 되면은 후분양자가 부담스럽지 않도록 주택 구입 대출 모기지를 한 40년 이상 길게 운영할 수 있는 방안 도입도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은형 위원은 "후분양제가 확대 시행된다면 수익성이 높은 다수의 사업안을 발굴하고 이를 근거로 공사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고 운용하는 능력이 건설업계의 필수역량으로 부각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송정은 기자 johnnys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영관 산업2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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